아프리카, 미중 격돌 새 전장으로…에티오피아 5G 입찰서 미국 승리

2021년 05월 24일 오후 1:15 업데이트: 2021년 05월 24일 오후 3:12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에티오피아 통신 시장 쟁탈전에 미국의 재정 지원을 받는 컨소시엄이 중국 지원을 받는 경쟁 기업에 승리를 거뒀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22일(현지시각) 영국 통신사 보다폰그룹 컨소시엄이 남아프리카공화국 MTN그룹과의 경합에서 승리해 에티오피아 무선 통신망 구축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보다폰그룹은 향후 10년간 총 8억5천만 달러를 에티오피아 4G와 5G망 구축에 투자하겠다는 제안서를 써내 사업권을 따냈다. 이는 지금까지 외국인이 직접 투자한 금액으로는 최대 규모다.

MTN그룹이 제시한 투자 규모는 총 6억 달러였다.

보다폰그룹이 중국 자본을 받은 MTN그룹의 투자 규모를 훨씬 상회하는 금액을 써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가 있었다.

미 국제개발금융공사는 보다폰그룹에 5억 달러 규모의 막대한 실탄을 제공했다. 중국을 세계 5G망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다.

미 국제개발금융공사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들이 중국의 저금리 융자에 대응할 수 있도록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9년 12월 설립됐다. 차이나머니 퇴출이 설립 취지인 셈이다.

미 국제개발금융공사는 보다폰그룹에 낮은 이자로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통신망을 구축할 때 이 자금으로 화웨이나 ZTE 등 중국 업체 장비를 구입해선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즉, 에릭슨이나 노키아, 삼성전자 등 중국이 아닌 국가 기업의 장비를 구매하라는 것이다. 에릭슨 등의 장비는 화웨이, ZTE보다 가격대가 높다.

미국은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이 중국 공산당의 지시를 받아 데이터를 훔치는 등 스파이 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여긴다. 화웨이와 ZTE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입찰 경쟁을 벌였던 아프리카 최대 통신사인 남아공 MTN그룹은 화웨이와 ZTE의 오랜 고객이다. MTN그룹은 이번 입찰 과정에서 “중국 실크로드 기금과 함께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크로드 기금은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가들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중국 정부 주도의 투자기금이다. 중국외환관리국, 중국 수출입은행 등이 주요 주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에티오피아의 이동통신 입찰은 5G 보급부터 칩 제조 등을 포함하며, 지정학적 의미가 크다”면서 미중 대결의 전선이 아프리카의 과학기술 분야까지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에티오피아는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이면서도 지난 20년간 중국과 무역거래를 확대해오는 이중 외교를 펼쳐왔다.

미 존스홈스킨스대학 국제관계학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2000~2018년 에티오피아는 중국에 137억 달러를 빚졌으며 이 중 30억 달러는 화웨이와 ZTE 이동통신 인프라 구축 사업에 썼다.

반면 미국은 아프리카의 뿔이자 홍해 연안 국가인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알카에다, IS 같은 테러단체 제거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입찰전은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아프리카 전선에서 미국이 거둔 첫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앞으로 새로운 금융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해외의 전략적 자산을 동맹국 정부나 기업이 유치하도록 더 힘쓸 것으로 전망된다.

/하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