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차” 홍콩 방송, 대만 간식 ‘궁비빙’ 소개했다가 분량 통편집

류지윤
2020년 10월 3일 오후 3:19 업데이트: 2020년 10월 3일 오후 5:39

홍콩 방송이 대만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했다가 해당 영상이 통편집되는 곤욕을 치렀다.

홍콩 방송 TVB는 지난달 22일 산하 J2 채널을 통해 여행 프로그램 ‘아이완커즈쯔요신'(愛玩客之自遊神)의 대만 자이(嘉義) 야시장 편을 내보냈다.

‘아이완커’는 대만 매체인 산리(三立)가 제작하는 인기 여행 프로그램이다. ‘아이완커즈쯔요신’은 자유여행(自遊)만 따로 다루는 시리즈다.

이날 방송에서는 대만 중부 자이의 고유한 길거리 음식인 ‘궁비빙(共匪餅·공비병)’이 소개됐다.

자이의 맛있는 길거리 간식으로 소개된 궁비빙 | 인스타그램 @hana_wuwu

궁비빙은 밀가루 반죽에 계란과 야채 소를 넣고 기름에 튀기듯 지져 만든 간식이다. 바삭한 식감과 후추향이 일품으로 짠맛과 단맛으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문제는 궁비빙의 이름에 들어간 ‘궁비'(共匪·공비)란 단어다.

‘궁비’는 ‘공산당 도적떼’의 줄임말로 국민당이 공산당과 중국 본토 주도권을 다투던 시절 공산당 게릴라를 부르던 속어다.

궁비빙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가게를 찾은 한 손님이 “공산당 게릴라(궁비)가 떡을 팔고 있다”고 농담한 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TVB가 방송한 대만 산리방송의 ‘아이완커’ 대만 자이편 화면 캡처

중국 공산당을 도적떼라고 꼬집은 ‘궁비’는 중국에서 공산당 당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민감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날 홍콩 TVB 방송에서는 궁비빙이라는 단어가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자막으로 여러 차례 전파를 탔다.

방송을 본 홍콩 누리꾼들은 해당 장면만 캡처한 영상을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고 나도 한입 먹어보고 싶다” “꼭 먹어봐야겠다” 등의 댓글을 남기며 열띤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건은 “TVB의 반역”으로도 이름 붙여졌다. TVB가 ‘홍콩판 CCTV’로 불리는 대표적인 친 공산당 방송국이었기 때문이다.

방송 후 논란이 일자 TVB 측은 온라인 다시보기에서 곧 해당 영상을 삭제했지만, 중국 당국의 손길이 닿지 않는 유튜브에는 해당 분량이 삭제되지 않은 영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아래 링크, 궁비빙은 38분 39초부터).

TVB의 방송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9일 방영된 드라마 ‘워후이쟈'(愛回家之開心速遞) 제993편에서는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했던 손동작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사무실 청소를 다룬 해당 장면에서는 컴퓨터 모니터에 노란색 장갑 한 쌍이 걸쳐져 있다.

장갑 한쪽은 다섯 손가락 전부를, 다른 한쪽은 한 손가락만 치켜든 모습이다.

홍콩 TVB에서 지난달 9일 방영된 드라마 ‘워후이쟈'(愛回家之開心速遞) 제993편에서는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했던 손동작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 영상 캡처

다섯 손가락만 전부 펴진 것은 이상하다고 볼만한 부분이 없지만 다른 한쪽은 네 손가락을 일부러 접어 넣지 않으면 쉽게 나오지 않는 모양새다.

이는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시민들이 홍콩 정부에 “5대 요구사항” 이행을 촉구하며 다섯 손가락을 펼쳐 들었던 것을 연상시킨다.

한 손가락만 치켜든 장갑은 홍콩 시민들의 또 다른 구호였던 “(5대 요구사항 중)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와 연결된다.

단순한 해프닝이라 볼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홍콩 언론들은 드라마 방영 이후 TVB가 해당 회를 촬영한 감독 한 명을 해고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빈과일보는 소식통을 인용해 “TVB가 홍콩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해당 감독에게 자진해서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