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안보 우려에 中 부자들 줄섰던 ‘골든 비자’ 폐지

한동훈
2023년 02월 24일 오후 3:00 업데이트: 2023년 02월 24일 오후 3:06

신청 승인 사례 90% 이상이 홍콩·중국 투자자
EU 위원회는 돈세탁 우려에 지난해 폐지 권고

아일랜드가 중국인 부자 1500명 이상에게 거주권을 부여한 ‘골든 비자’ 제도를 결국 폐지했다.

골든 비자 폐지 소식은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을 통해 지난 15일(현지시간) 알려졌으며, 이 제도가 조세 회피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번 조치의 배경이 됐다는 사실이 추가로 전해졌다.

아일랜드 정부는 외국 자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최소 200만 유로(27억5천만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EU 이외 지역 국민을 대상으로 비자를 발급하는 제도를 시행해왔다.

이 제도는 200만 유로 이상의 개인 자산을 보유하고, 아일랜드의 공익 목적 자선사업에 50만 유로를 기부(환불 불가)하거나, 아일랜드 당국이 승인한 투자 펀드에 100만 유로를 투자하고 3년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해당 조건을 충족한 이들에게는 거주 및 학습, 취업에 제한이 없는 거주권이 주어지고, 신청자의 법적 배우자와 18세 미만 자녀, 24세 이하 미혼 자녀를 포함한 가족에게도 같은 거주권이 부여된다. 또한 투자자 본인이나 가족이 5년간 아일랜드에 거주하면 시민권 신청도 가능하다.

아일랜드 당국은 시민권을 취득하면 추후 전 세계 약 180개국 이상 국가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다는 점도 비자 제도를 홍보하며 장점으로 내세웠다.

이 제도는 2010년 촉발된 아일랜드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련됐다.

아일랜드 법무부의 사이먼 해리스 장관은 “이 제도로 12억5200만 유로(약 1조7천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아일랜드에 경제·사회적 이익을 창출했으나, 안보상의 우려 때문에 이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앞서 유럽 위원회는 지난해 중국인 투자자들이 이 제도를 이용해 EU 구성원으로서의 비자 취득이 급증하자 스파이 침투 등 안보 리스크와 돈세탁, 탈세 등 부정한 목적에 악용될 수 있다며 제도 폐지를 요구한 바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골든 비자 제도 도입 이후 신청 승인이 난 투자자 중 홍콩과 중국 투자자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아일랜드 법무부가 지난해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이 제도를 통해 거주권을 얻은 중국인 자산가는 1500명 이상에 이른다.

영국도 유사한 골든 비자 제도를 운영 중이었으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장이 고조된 지난해 2월 이를 폐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불법으로 영국 내 자산을 취득하고 부패, 안보 우려 등이 이유로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