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硏 “3불 넘어 5가지 응당 요구한 중국…조공국 대하듯 무례하고 일방적”

이윤정
2022년 08월 23일 오후 5:54 업데이트: 2022년 08월 23일 오후 6:08

중국 가치만 강요하는 일방주의 외교
중국만큼 한국 무례하게 대하는 국가 없어
이익 공유 기초한 한중관계, 가치 공유는 어려울 듯

8월 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1992년 수교 이후 양국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다만 한중 관계는 저점에 접어 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원인으로는 중국의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외교가 지적된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8월 9일,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5개의 마땅히 해야 할 사항(五個應當)’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민간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8월 22일 발간한 이슈브리프 ‘중국의 5개 응당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에서 ‘5개 응당’ 내용과 관련해 “중국의 입장만 강요하는 일방주의 외교 행태이며 한중관계 30년에 상처를 남기는 크나큰 결례”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주변국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하며 한국인의 70% 이상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중국이 제시한 5개 응당은 다음과 같다. ▲마땅히 독립자주를 견지하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한다(應當堅持獨立自主, 不受外界干擾) ▲마땅히 선린우호를 견지하고 서로의 중대 관심사를 배려해야 한다(應當堅持睦隣友好, 照顧彼此重大關切) ▲마땅히 개방과 공동이익을 견지하고 공급망 안정을 보호해야 한다(應當堅持開放共贏, 維頀産供鏈穩定暢通) ▲마땅히 평등과 존중을 견지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應當堅持平等尊重, 互不干涉內政) ▲마땅히 다자주의를 견지하고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應當堅持多邊主義, 遵守聯合國憲章宗旨原則).

아산정책연구원은 “표면적으로 5개 응당은 양국 관계를 위한 원론적인 입장들로 보이지만 중국의 역사 인식과 세계관이 일방적이고 왜곡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실망스럽다”며 “우리가 5개 응당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중국이 한중관계를 수평적·호혜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이고 시혜적인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중 중국만큼 우리를 무례하게 대하는 국가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5개 응당’ 중 ‘독립자주’에 대해 “한국이 미국의 간섭을 받고 있다는 의미”라며 “우리 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한미동맹을 비판하고 그 해체를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6·25전쟁에 중국이 유엔군에 대항하여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UN이 승인하고 지원한 대한민국은 이미 자주독립의 통일국가가 되었을 것”이라며 “중국이 전혀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늘의 우리에게 자주를 요구하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두 번째 사항인 ‘중대 관심사’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의미한다고 봤다. ‘3불’은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 체계(MD)에 편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중국은 일본에 사드에 사용되는 X-밴드 레이다가 배치될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면서 우리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사드라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을 때는 이를 수용하기보다 우리에게 일방적인 경제보복을 단행했다”며 “사드는 방어무기인데 어떻게 중국의 안보 이익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는 왕이 부장의 말은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참여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해석했다. 특히 ‘칩(chip) 4’를 겨냥해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참여하지 말라고 중국이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을 확대하며 새롭고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미국이 주최한 2022 공급망 장관회의에 참석해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위한 투명성, 다변화, 안전성, 지속가능성 등의 원칙에 합의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 4’ 예비회의에 참여할 것을 공표한 바 있다.

내정 불간섭을 언급한 것은 대만 해협 문제로 풀이된다. 연구원은 “‘내정 불간섭’을 외치지만, 사실 그 이면은 중국의 강압적인 대(對)대만 정책과 중국 내 인권유린에 침묵하라는 요구”라며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인권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중국의 신장-위구르에서의 인권유린,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의 자유항행 방해, 대만 등에 대한 압박을 문제 삼자 중국은 이것이 내정간섭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다자주의를 존중하고 UN 헌장의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요구 역시 미국은 패권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다자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니 중국 편에 서라는 것으로 풀이했다. 그동안 중국의 외교적 슬로건은 한결같이 미국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미국이 패권주의 국가라는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중국의 ‘5개 응당’이 공감을 얻기 힘든 이유에 대해 “이러한 사항들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국가가 중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근거로 △독립자주를 강조하고 다른 국가의 ‘중대 관심사’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한국의 안보를 위해 필수적 억제 조치의 하나인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점 △세계적인 공급망 안정을 외치면서 다른 국가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경제적 거래를 무기화하고 중국 내 불매운동을 조장한다는 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도 UN 안보리가 결의한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가 중국이라는 점 등을 꼽았다.

아울러 “5개 응당이 지니는 심각한 문제점은 ‘일방주의’”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중국은 그동안 자신의 입장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이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보복을 가하는 일방주의 외교 행태를 지속해왔다”며 “중국이 표방하는 가치만이 절대적 선이며 다른 국가들의 안전이나 이익은 중요하지 않다는 중국식 일방주의가 5개 응당 안에 그대로 녹아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어에서 ‘응당’의 의미는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미인데 한 국가가 자신의 정책 노선을 분명히 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비전이나 목표에 쓰일 수는 있지만 다른 국가와의 회담이나 대화에서 제시하는 것은 크나큰 결례”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중국의 5개 응당은 과거 상국(上國)이 조공국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한 시대착오적인 중화사상(中華思想)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한중 관계 30년에 상처를 남기는 행위”라며 “지난 30년간 한중 관계는 이익 공유에 기초해 왔지만, 앞으로는 가치 공유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야 하는데 지금의 중국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는 상호 존중의 한중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대외정책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면서 “중국이 우리의 입장을 진정으로 존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5대 응당이 담고 있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