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낸 궁중요리연구가 한복선, “詩에 한국 전통음식문화 버무렸죠”

2013년 05월 15일 오후 3:12 업데이트: 2022년 08월 5일 오후 4:16

강연과 요리책으로 한국음식을 알려온 궁중음식 연구가 한복선(韓福善·64) 씨가 이제는 우리 음식문화를 시(詩)로 풀기 시작했다. 지난 3월 계간 ‘문파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한 한 씨는 4월 자신이 쓴 시 70수를 담은 첫 음식시집 ‘밥하는 여자’(에르디아 刊)를 내놨다

우리 전통음식문화의 층층을 시집으로 펴내며, 운치 있는 방식으로 식문화를 알리기 시작한 한복선 씨. | 에포크타임스

‘썩고 상한 찬 음식 가리고
반듯한 것 정갈한 것 먹고
생강 보면 육손 날까 염려 되니 보지 말고
술 취한 아버지 아기 만들면
백맥이 흩어진 아이 갖는다 했다’(태교 음식 中)
처럼 문헌으로도 확인되는 우리 전통음식문화 이야기부터

‘진달래 녹말 입혀 끓는 물에 데친
매끄러운 꽃국수
발그스름 새콤한 오미자국에
홀홀한 분홍국수로
흐드러져 피어 있다’(꽃국수 中),

‘찬물에 밥 말아서
오이지와 먹으면
한여름 짭짤한 땀 맛
밥의 달큰함과 함께
고소함이 남는다’(오이지 中),

‘땅속에서 올라온 솔잎 뿌리 흙 맛
달콤한 벌들의 꿀맛
자연의 깊음과 아름다움
노란 꽃가루 꿀차다’(송화밀수 中) 등 음식의 맛과 멋을 상상하게 하는 묘사가 한가득이다.

‘치과 치료를 한 남편을 위해/만든 연하고 향기로운 굴전/음식은 배려 친절이다’(굴전 中) 등 자신의 생각을 담은 간단한 몇 마디에 수십 년간 ‘밥을 해온’ 한 씨의 내공이 드러난다

‘쇠고기 저며 썰어 파 마늘 양념해서/달달 볶다 물 부어 고기 장국 우러나면/무 껍질째 나박나박 썰어 넣고/청장으로 간을 하면/깊은 맛 땅속 맛 난다’(뭇국 中)처럼 몇 구절로 쓴 요리법을 한 번 읊으면 눈앞에 시원한 뭇국이 떠오른다.

‘자연의 이치’라 할 수 있는 우리 전통음식의 사상적 배경부터 옛 식문화, 한 씨의 경험을 곁들인 매 음식의 맛과 멋, 그리고 직접 그린 가지·복숭아·꽃·나비·소반과 식기 등 민화가 한데 어우러졌다. 120여 쪽 작은 시집에 음식문화의 면면이 다층적으로 펼쳐졌다. 시가 문화를 압축한 장르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전통음식문화를 알리기 시작한 한복선 씨에게서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시집을 내서 놀랐다. 내용이 한국 전통음식문화의 여러 면모를 압축적으로 담은 것 같더라

“그런 셈이다. (웃음) 스스로 ‘음식 인문학 책’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한국전통음식 연구가로서 어떤 의미인가

“그동안에는 말로 아는 것을 풀었다면, 나이가 든 이제는 떠도는 내 영혼의 말을 불러들이듯 차분히 정리하고 싶더라. 시가 별안간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이 시들은 음식에 관한 모든 상황, 여러 가지 인문적인 것을 어우러지게 하고 시의 아름다움을 함께 넣었다.”

―평소에 음식하고 가르치는 일이 주였을 텐데, 언제부터 시를 썼나

“주로 요리책을 써왔던 내가 시를 쓴지는 1년 반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소스는 그동안 머릿속에 담고 있던 것이고, 그걸 오케스트라처럼 파트별로 조합해서 음악을 만들듯이 시로 썼다. 어떻게 조합하고 어디에 강조를 두는지에 따라 하나의 시가 탄생했다.”

―스스로 경험한 부분도 많이 보인다. 지금은 사라진 식문화들

“궁중음식, 약선음식, 가정음식 등등 음식 조리법 뿐 아니라 관련 이야깃거리를 세지를 잡고서 편편마다 넣었다. 또 마지막 행에 가면 추억거리나 하고픈 이야기를 넣기도 했다. 첫 번째 시가 ‘식(食)’인데, 먹는 행위에 관한 이치를 얘기한 거다. 음식은 자연이고 사람은 다시 자연으로 간다는 서로 간의 관계. 동양적인 사고가 많이 들어있다. 또, ‘밥상 예절’에서는 우리나라의 음식 예절을 다 아는 얘기지만 짚었다. 남편이 아플 때 ‘굴전’을 해준 것에서, 음식을 한다는 것이 친절과 배려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풀기도 했다.”

한복선 씨는 평소에 한국 민간의 전통그림인 민화를 즐겨 그린다. 시집 내려고 그린 것도 아니었는데 평소에 그냥 좋아서 배워 그렸다. 인연 따라 살아온지라, 시 곁에 들어앉히니 원래 시를 위한 그림이었던 것처럼 운치가 배가됐다. (사진제공=한복선, 에르디아)

 

―직접 그린 민화가 분위기를 더하는 것이 화첩같기도 하다

“전통음식이 일상에 응용되는 것처럼, 민화도 일상을 풍부하게 하는 전통그림이다. 큰 재주가 없어도 그리면서 평소 생활 속에서 아름답게 이어갈 수 있는. 살아오면서 관심이 가서 준비해온 것들을 모으니 시집에 어우러지더라. 시집을 내기 위해 삽화를 그리는 개념이 아니라. 다만, 원래 큰 그림인데 표지와 각 파트의 첫 장에만 전체를 넣고 개별적인 시에는 나비, 복숭아, 꽃 등 요소를 따서 작게 넣었다. 절제하느라.”

―제목이 ‘밥 하는 여자’인데, 스스로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나

“밥이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생명’과 관계는 것이지만, 가족 안에서는 함께하는 그 인연을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을 내게 지워준 것이다. 온 가족이 나로 인해 행복이 오고 가는 것. 부엌이 찬(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집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시어가 뭔지도 아직 잘 모르지만, 내 얘기를 편안하게 썼다. ‘고등어 자반’ 같은 경우, 고등어를 팔 때 두 마리씩 묶어 파는 것에서 ‘두 마리가 붙어있으니 더 맛있어졌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 약간은 동시같은 느낌도 있다.”

―이번이 첫 시집인데 앞으로 계획은

“계속 쓰고 싶다. 뭐든지 관찰하게 된다. ‘가만있자. 이걸 시로 한편 쓴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평소에 관심사가 넓어지게 된다. 이번에도 원래 140편을 내서 70편만 실었기 때문에 남은 게 많다. 자식같은 시를 나 스스로 고르라는데 차마 못 하겠어서 출판사에 추려달라고 맡겼다.”

―일상에서 음식을 하면서 느낀 생각을 다수 녹였다는 점에서 주부들도 관심가질 만한 것 같다

“책상에 앉아서 먼 발치를 바라보며 명상하면서, 연필을 손에 쥐고 할 수 있는, 그런 일상을 내 시집에서 감 잡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상추쌈’ 같은 시를 보면, ‘별 거 아니네’ 할 거다. ‘가슴 풀고 먹고 나니 행복한 잠 쏟아진다’처럼 진짜로 기분 좋아 낮잠이 절로 오는 기분, 누구나 느끼는 거잖나.”

―바쁘게 음식만 하다보면 그런 걸 느낄 여유가 없을텐데

“그렇다. ‘나는 허구한 날 밥만 하나’ 그럴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 밥을 하다가도 옆에 종이 한 장 있으면 된장찌개 바글바글 끓는 것을 보고도 시상을 떠올릴 수 있다. ‘내 특장은 풋고추 많이 넣고 고춧가루 넣는 거야’라고 하면서.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주부들에게 주고 싶다.”

한복선 씨는 자신의 첫 시집을 ‘겉절이’라고 표현했다. 얼갈이무를 가지고 지금껏 알고 생각하고 경험해온 것을 양념삼아 버무린 것 같은. 서울 태생이라 음식연구가임에도 직접 농사를 지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스스로 부끄러운 것 중 하나라는 그는, “말은 누구나 할 줄 알지만, 그 안에 진정한 마음이 들어있어야 진짜이지 않느냐”며 엎으려 땅을 파서 흙과 친해지는 그런 진실함이 담긴 시를 장차 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요즘 펄벅의 ‘대지’를 다시 보고 있다고. ‘대지’의 앞부분에 묘사된 흙과 흙집의 정경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온다고 한다.

그래도 갈수록 ‘익은’ 문장이 나올 때쯤이면 지금 같은 ‘풋풋함’은 없을 것이라며, 현재의 겉절이 그대로도 좋을 수 있다고 한다. 60이 넘어 시를 짓기 시작하고, 경험치를 넓히고 있는 한복선 씨는 “또 더 나이 들어 다시 쓴 시가 지금과 뭔지 달라질 것 같다”며 앞으로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