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정책 바뀔까? 中 공산당 18년만에 ‘브레인’ 교체

한동훈
2020년 11월 1일 오후 3:14 업데이트: 2021년 05월 16일 오후 1:14

뉴스분석

중국 공산당이 당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당 중앙정책연구실 수장을 교체했다.

30일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는 장진취안(江金權·61)이 새로운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으로 소개됐다.

이 직책은 2002년부터 왕후닝(王滬寧·65)이 맡아왔다. 18년 만에 새 인물로 교체된 것이다.

‘브레인’ 교체, 어떤 일 일어나고 있나

왕후닝은 중국 공산당 최고 권력집단인 정치국 상무위원 7인방 가운데 1명이다.

그는 중앙서기처 서기,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도 겸직하다가 이번에 연구실 주임 자리를 내놓게 됐다.

당 중앙정책연구실은 중국 공산당 최고 싱크탱크다.

정치·경제·국제관계 전략을 연구하고 정치이론, 정책 및 문서 작성을 담당한다. 박사급 인재 수백 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의 싱크탱크 수장 변경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번에 신임 주임으로 발탁된 장진취안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당 중앙정책연구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그는 2016~7년 잠시 중앙기율위원회로 옮겨졌다가 2018년 복귀해 부주임으로 왕후닝을 보좌해왔다.

당장 연구실 운영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왕후닝은 어떤 인물?

이번 교체인사에 대해서는 장진취안 본인보다는 물러난 왕후닝에 대해 관심이 모인다.

왕후닝은 상무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학자 출신이다. 푸단대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은 누구도 정치국 상무위원에 발탁되지 못했다. 왕후닝만이 유일했다.

왕후닝은 18년간 당 중앙정책연구실을 이끌며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까지 최고 지도자 3명의 통치이념을 거의 대부분 설계했다.

이 때문에 ‘시진핑 책사’ ‘현대판 제갈량’으로 불리지만 ‘지도자의 생각을 포장하는 데 능한 인물’ ‘간신’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장쩌민의 ‘삼개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에 이어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모두 왕후닝의 작품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왕후닝은 문화대혁명 종료 후 푸단대 국제관계 전공 석사과정에 입학해 29살에 최연소 부교수로 임명되고 채 40세 전에 법대학장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1980년대 젊은 학자로 명성을 얻은 왕후닝은 공산당 내 개혁파였던 자오쯔양 당시 총서기의 눈에 들었다. 그가 제출한 개혁방안을 자오쯔양은 모두 채택했다.

하지만 그는 톈안먼 사태를 계기로 ‘변절’한다. 당시 상하이시 서기였던 장쩌민은 상하이의 학자들을 소집해 민주화를 요구한 신문에 대한 숙청의사를 밝혔다. 참석자 대다수는 이를 반대했지만 왕후닝은 공개적으로 지지해 장쩌민의 극찬을 받았다.

이후 왕후닝은 장쩌민의 후원에 힘입어 승승장구했다. 1995년 중앙정책연구실 정치조장에 임명되고 곧 부주임으로 승진시켰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왕후닝은 장쩌민에게 보답하며 ‘걸작’을 내놓는다. 장쩌민의 통치이념 ‘3개 대표론’이다.

3개 대표론이란 공산당이 다음 세 가지를 대표한다는 이론이다. ①선진사회 생산력 ②선진문화 발전 ③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이다. 각각 기업가, 지식인, 노동자와 농민을 가리킨다.

왕후닝의 3개 대표론은 철저히 장쩌민 맞춤형 이론이었다.

장쩌민은 집권 기간에 거액의 재산을 축적하려 했다. 이를 위해서는 돈 잘 버는 자본가, 기업가와 결탁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부르주아 타도’라는 공산당의 목적과 본질적으로 모순된다.

그러자 왕후닝은 3개 대표론의 첫 번째 ‘선진사회 생산력’이라는 조항을 통해 기업가의 입당을 허용했다. 공산당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부정한 셈이다.

이는 오늘날 공산당이 부패정당으로 굳어지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기업가들을 끌어들여 돈벌이하는 것이 허용되자, 지방관료들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했고 이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맞물려 중국경제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다만 그 결실은 부패관료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말았다.

세 번째인 공산당이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는 조항은, 공산당이 인민을 위하겠다는 주장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은 거의 모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므로 개혁은 필요 없다”며 당내 개혁파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억지 논리로 이용됐다.

2003년 초 출범한 후진타오 정권에서도 왕후닝은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으로 승진하며 중용됐다. 후진타오의 ‘과학 발전관’과 ‘조화 사회론’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2012년 시진핑이 집권하자 왕후닝은 새로운 집권자에게 절대권력 추구를 위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중국몽(中國夢)’, ‘시진핑 사상’, ‘시진핑 핵심’ 등이 모두 왕후닝의 작품이다.

왕후닝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 WANG ZHAO/AFP/Getty Images=연합뉴스

그러나 왕후닝의 전성기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왕후닝은 중앙정신문명건설 지도위원회 주임도 맡고 있다. 이념 공작을 총괄하는 자리다. 중국 내 모든 신문·방송·영화·출판물을 관리하는 중앙선전부를 관할한다.

중국 공산당은 미중 갈등이 고조된 지난해부터 미국을 상대로 선전전(宣傳戰)을 펼치고 있는데, 왕후닝은 선전부를 총괄하는 인물로 그 한 축을 이끌고 있다.

왕후징의 영향 하에 중앙선전부는 지난해 5월 중순부터 한동안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송을 통해 항미 정신을 고취시키는 내용을 방송했었다.

이번 11월 3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앙선전부 산하 관영매체들은 트럼프를 악의적으로 보도하며 미국 내 여론에 직간접적인 영향력 발휘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지난 22일 미국 대선후보 TV토론 직후 관영매체 보도는 트럼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신화통신은 23일 사장이 전격 교체됐다.

관측통들은 ‘선전부가 미 대선을 오판해 잘못된 보도를 지속함으로써 미 대선 이후 미중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공산당 지도부가 판단했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시진핑이 항미원조 정신을 강조하지만, 어디까지나 집권 강화를 위한 대내용이고 대외적으로는 미국에 신중한 접근을 하리라는 것이다.

즉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에서 왕후닝을 물러나게 한 이번 교체인사가 대미 선전전 실패에 대한 문책 성격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