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양회서 “죗값 받아낼 것” 강조…반부패 선봉장 왕치산과 다시 손잡나?

류지윤
2021년 03월 11일 오후 6:55 업데이트: 2021년 03월 11일 오후 7:00

시진핑은 최근 양회에서 부패한 관리들에 대해 “죗값 치러야 할 것”이라고 밝혔고, 왕치산 국가 부주석도 이례적으로 시진핑을 받드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내 권력투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진핑이 다시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정적(政敵)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까지 푸대접받던 왕치산이 섭섭해하는 모습 없이 갑자기 시진핑을 치켜세우는 모습도 겹쳐진다. 반부패 운동 재시동에 대비한 행보로 풀이된다.

시진핑, 20차 당대회 앞두고 사전 작업으로 정적 척결

시진핑은 지난 5일 네이멍구 대표단 회의에 참석해 네이멍구 석탄 비리에 대해 “국민의 심부름꾼이 돼 국가 자원을 가지고 뇌물을 받고, 권력과 돈을 거래한 죗값은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시진핑이 부패한 관리들에 대해 죗값을 받아내리라 다짐한 것은 네이멍구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모든 관료, 특히 정법 분야 전반에 칼을 대겠다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은 1월 24일 중앙기율위원회 5차 전체회의에서 “정법(政法) 시스템의 부패에 대한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쑨리쥔(孫力軍) 공안부 부부장,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 덩후이린(鄧恢林), 상하이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 공다오안(龔道安), 장쑤성 상무위원 겸 정법위 서기 왕리커(王立科) 등 4명의 ‘호랑이’가 잇따라 실각했다.

중공 중앙기율위원회의 지방 암행 조직인 ‘중앙순시조’(中央巡視組)는 지난달 8일 “공안부의 저우융캉, 멍훙웨이, 쑨리쥔 등 숙청의 영향이 미진하다”고 이야기했다. 공안부는 다음날인 9일 “저우융캉 등 여독(餘毒)을 단호히 숙청할 것”이라고 표명했다. 정법계에 대한 대대적인 청소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밖에 금융 분야에 대한 당국의 숙청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 라이샤오민(賴小民) 전 화룽(華融) 자산관리공사 회장을 ‘참수’하며 금융 시스템 관료들에게 경고 신호를 보냈다.

중앙기율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3월 8일 자 공문은 “부패 척결에 있어 고압적인 태세를 유지할 것이며 부패가 있으면 반드시 척결할 것이고, 탐욕을 부렸다면 반드시 숙청할 것”이라며 “부패엔 면죄부가 없고, 부패 척결을 위한 징악(懲惡)에 절대 봐주는 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공 관료사회에 또 한 차례 부패 척결 바람이 불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시진핑이 최근 부패 척결 칼을 다시 꺼내 든 것은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관료 사회를 두려움에 떨게 해 20차 당대회 연임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연임을 노리는 시진핑에겐 올해가 반대 세력을 청산할 마지막 기회다.

2022년은 시진핑의 사활이 걸린 해

이에 앞서 미국 워싱턴 정보전략연구소 연구원 리헝칭(李恆)은 에포크타임스에 “2022년은 시진핑의 생사를 가르는 해가 될 것”이라며 “종신 집권을 실현하거나 워털루 전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 시진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3연임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나아가 당내 반대 여론을 제거하는 것이다.

장쩌민파(江派)를 비롯한 반(反)시진핑 세력도 꿈틀거리며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어 중공 지도부 집단 거주지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는 어두운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3일 장쩌민 후손들이 장쩌민이 죽고나면 당국에 청산될 것을 우려해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장쩌민의 손자 장쯔청(江志成)이 장악한 보위(博裕) 캐피털은 지난 2019년부터 홍콩에 있는 막대한 자산을 싱가포르로 이전했다.

WSJ은 그보다 앞선 2월 16일 ‘중공 관리와 정부 고문 10여 명’을 인용해 시진핑이 앤트 그룹 상장을 중단시킨 것은 장쩌민 가문과 자칭린(賈慶林) 전 정치국 상무위원 가문이 앤트 그룹의 지분을 우회적으로 보유하고 있단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며, 이것이 베이징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중국 금융의 명맥을 장악한 장쩌민파는 2015년 금융 쿠데타를 일으켜 시진핑을 실각시키려 한 적 있다. 두 보도 모두 시진핑∙장쩌민 두 세력의 권력다툼이 재연되고 있음을 보여줘 사생결단의 한판 대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왕치산의 시진핑 치켜세우기, 말로만 복종?

이 밖에 올해 양회에서는 ‘시진핑 찬양’ 바람이 불면서 왕치산 국가 부주석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이 잇따라 시진핑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왕 부주석은 지난 6일 후난 대표단 회의에 참여해 발언하던 중 시진핑을 최소 8차례 언급하며 시 주석 핵심과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진핑은 마오쩌둥 시대의 ‘조타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는데, 이는 내년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성공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시사 평론가 정중위안(鄭中原)은 지난 9일 기고문에서 “이번 ‘충성심 보이기’엔 다들 고비를 넘겼단 의미도 있지만, 중공엔 ‘충성심 보이기’ 전통이 다가 아니라 ‘내분’이란 전통도 있다. 지나치게 충성심을 보이는 자는 말로만 복종을 표시하는 사람이거나 웃음 속에 칼을 품은 사람이다. 왕치산이 양회에서 앞장서 시진핑을 치켜세우는 것은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오랫동안 냉대받아 온 왕 부주석이 이때 앞장서서 시진핑을 치켜세우는 것은 자신의 안전과 이익이 위협을 받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왕치산이 중앙기율위원회를 장악하던 시절, 그는 강력한 부패 척결로 시진핑의 정적을 대거 척결하는 데 공을 세웠다. 하지만 19차 당대회에서 물러난 뒤 실권은 없는 국가 부주석을 맡는 등 소외된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해 이후 왕 부주석과 친분이 있던 홍얼다이(紅二代∙혁명원로 2세) 런즈창(任志)이 시진핑에 대한 비판으로 중형을 선고받고, 중앙기율위원회 시절 부하였던 둥훙(董宏) 역시 낙마해 한때 시진핑-왕치산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차이샤(蔡霞) 전 중앙당교 교수는 앞서 “시진핑과 왕치산의 관계는 매우 미묘하다”며 “왕 부주석의 명망, 경력과 자격, 능력 모두 시진핑보다 훨씬 높다. 시진핑은 왕치산을 쓰면서도 경계한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이용하긴 해야겠고, 또 네가 나를 반대하는 것도 막아야겠다’는 것이 바로 시진핑의 심리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지난 1월 29일 왕치산과 인연이 깊은 HNA 그룹(海航集團)이 파산해 정부에 인수된 것은 왕치산 일가의 이권이 시진핑에게 넘어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