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하긴 약하지만 간첩행위 포착되면…美 ‘외국대리인등록법’

이혜영
2019년 04월 29일 오전 10:27 업데이트: 2020년 10월 30일 오후 4:55

지난달 17일, 뉴욕 동부 연방법원은 전 에어차이나 매니저 린잉(林英, 48)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린은 불법으로 중국군 관료들의 수하물을 중국으로 밀반입시키고 중국 관료의 휴대폰 SIM카드가 공항 검색대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왔을 뿐 아니라 FBI가 수사 중이던 간첩 용의자를 중국행 비행기에 태워 중국으로 탈출시키는 데 협조하기도 했다. 린은 이날 법정에서 미국 법무부에 신고하지 않고 중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혐의를 인정했다.

린이 미국에서 중국 정부의 대리인 역할을 했음을 인정한 후,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이 해외 중국인들 사이에서 핫 검색어가 됐다. 린처럼 ‘외국대리인등록법’에 등록하지 않고 중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중국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까.

‘외국대리인등록법’이란

‘외국대리인등록법’은 외국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과 활동내역을 사전에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6개월에 한 번씩 활동 내용과 재정 상태 등을 법무부에 보고하도록 한 법이다. 법무부는 외국 대리인의 발언과 활동을 평가하고 이들의 활동이 미국의 여론, 정책, 법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부도 판단한다. 대변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관련 활동을 했음이 적발될 경우엔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미국은 간첩죄로 처벌하기에 구체적 증거가 부족하거나, 국익에 반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처벌하는 근거로 주로 이 법을 활용한다.

‘외국대리인등록법’은 1930년대 미국 내에서 극심하게 전개됐던 나치·파시스트 등의 외국세력을 견제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던 나치독일의 앞잡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보안장치였다.

1938년 미국의회는 외국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과 활동내역을 국무부에 등록토록 하는 ‘외국대리인 및 정치선전법’을 제정했다가 1942년 실효성 강화를 위해 주무부처를 국무부에서 법무부로 변경하고 명칭도 ‘외국대리인등록법’으로 변경했다.

적용 대상은 외국인 또는 외국 정부의 지시나 요청을 받고 미국 내에서 정치운동을 하거나 홍보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과 미국정부와 관리들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이다.

다음과 같은 경우는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

ㆍ미 국무부가 승인한 외교관 혹은 영사, 대사관 혹은 영사관의 직원

ㆍ순전히 상업적인 성격의 행사나 비정치적 활동에 해당하는 경우

ㆍ종교적, 학문적 또는 과학적, 예술적 추구활동에 해당하는 경우

ㆍ법원이나 미국정부에서 공개한 외국대표자를 법률 대리하는 자(변호사 등)

ㆍ‘로비활동공개법’에 따라 등록한 외국 대리인이나 외국 정부나 정당을 대표하는 자

핵심 요구사항

주요 요구사항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ㆍ외국 대리인이 된 자는 10일 이내에 등록서류를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하고 활동기간 중 외국 의뢰인과 협의한 수입과 지출 등을 기재한 양식을 6개월마다 제출해야 한다.

ㆍ외국 대리인은 홍보자료에 ‘대리인은 외국 의뢰인을 대표하여 정보를 전파한다’는 명확한 성명을 붙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자료의 사본을 법무장관에게 제공하고 공공열람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ㆍ웹사이트나 소셜 미디어에 의뢰인의 정보를 퍼뜨리는 경우에도 ‘외국 의뢰인을 대표하여 정보를 전파한다’는 성명을 표시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배포되는 보고서나 출판물은 사법부에 정기적으로 등본을 제시해야 한다.

ㆍ미국 정부 기관이나 관리 또는 국회의원과 접촉할 때, 외국 대리인은 반드시 신원을 밝혀야 한다. 국회에서 증언할 때는 사법부에 최근 등록된 기록 사본을 제공해야 한다.

ㆍ외국 대리인은 그 모든 활동에 대한 기록을 보관하고 법무장관의 검사를 허용해야 한다.

‘위반하면 벌’ ‘외국인은 추방’

외국 대리인 등록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되는데 최고 1만 달러 이하의 벌금 또는 최고 5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어떤 범죄에 대해서는, 최고 5000달러의 벌금이나 6개월이 넘는 징역형, 또는 둘을 동시에 벌할 수 있다. 외국 국적자는 국외로 추방될 수 있다.

그 외 외국인대리인 관련 법규

‘외국대리인등록법’ 외에도, 대리인 행위를 규범하는 법률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ㆍ로비공개법(LDA) : 로비활동을 ‘외국대리인등록법’와 분리시키고 국회가 이를 감독한다.

ㆍ형법 제18편 제951조 (외국 정부 대리인에 관한 규정) : 주로 외국 정부 대리인을 규범하기 위한 것으로 외교관 이외의 누군가가 법무장관에게 사전 통보 없이 외국 정부 대리인으로 활동하면, 합법적인 상거래 활동인 경우를 제외하고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 규정은 외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 대리인을 대상으로 비정치적 활동을 다룬다.

ㆍ형법 제18편 제2386조 (특정단체 등록에 관한 규정) : 정치 활동 또는 민간 군사 활동에 종사하거나 외국의 통제를 받고 무력으로 미국을 전복시키려는 특정 조직에 대해 등록을 요구하는 규정이다.

ㆍ형법 제50편 제851조 및 제855조 (특정인 등록에 관한 규정) : 외국 정부나 정당의 지령을 받거나, 간첩·방첩·파괴공작 활동 및 정부전복을 지시받은 자는 법무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851조) 외국 첩보기관에서 훈련받은 사람은 법무장관에게 등록해야 한다.(제855조)

린은 제951조 ‘외국 정부 대리인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린은 법정에서 “법무장관에게 사전 통보하지 않고 외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했다”고 시인하고 10년의 징역형과 17만 달러에 달하는 재산몰수형에 동의했다. 린의 자백은 아마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미 중국인이 951조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으로 사법부가 법 집행을 강화하고 숨어 있는 중국 정부 대리인을 찾아내는 중요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951조는 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지는 않고 있지만 과거 사례는 대부분 간첩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미국 사법부가 2016년 발간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951조를 집행하는 국가안전처(NSD)는 이 조항을 ‘스파이 경량판’으로 지목했다. 951조와 관련된 고소사건은 보통 간첩, 비밀행위, 기타 외국정부의 정보수집이나 조달 등과 관련된 범죄활동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강경해진 미국의 태도

존 디머스 미 법무부 차관보는 린잉 전 에어차이나 매니저가 중국 정부 대리인 역할을 시인한 후,  “(이번 사건은) 중국 정부가 중국 기업 직원들을 이용해 미국에서 불법 활동을 한 단적인 예다”고 지적했다.| Alex Wong/Getty Images

존 디머스 미 법무부 차관보는 “(이번 사건은) 중국 정부가 중국 기업 직원들을 이용해 미국에서 불법 활동을 한 단적인 예”라며 “린잉이 미국에서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 것을 숨긴 것은 범죄행위다”라고 지적했다.

디머스 차관보의 발언은 미국이 중국 공산당의 침투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린잉 사건을 판례 삼아 미국 내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중국 정부의 대리인들을 색출해 법 집행을 강화할 것임을 시사한다.

그동안 중국 공산당은 해외 거주 중국인을 미국 정부, 대학, 연구소, 회사 등에 침투시켜 스파이로 이용해왔다. 이에 미국은 중국 정부의 대리인이 되어 미국에서 불법적인 활동을 하는 중국인들을 체포해 왔다. 그들은 한때 미국 사회의 엘리트로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경제적 조건과 명예를 가졌던 이들이지만, 실형을 선고받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윌리엄 스위니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은 “FBI와 기타 법 집행 부서는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우리가 볼 수 있는 위협은 물론 볼 수 없는 위협까지 찾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밝혔다.

윌리엄 부국장는 “린잉 사건은 특별한 개별사례가 아니며 이 사건은 하나의 범례가 될 것이다. 중국 정부 또는 다른 외국 정부와 합작하여, 미국 법률을 위반하는 자는 결국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전 시드니 주재 중국 총영사관 외교관이었던 천융린(陳用林)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중국인 단체들에게 이제 그 일을 그만두라고 호소하고 평화통일촉진회와 공자학원 등은 서둘러 등록하거나 자수하지 않으면 ‘외국대리인등록법’에 저촉돼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전 세계 중국인들이 정세를 잘 인식하고 중국 공산당을 멀리해야 하며 자신의 미래를 망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