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 “‘김일성 장군님’ 전투라 교과서에 안 나와” 발언 기간제 교사 계약 해지

보천보 전투는 과장... 김일성이 아닌 중국인이 지휘했다는 사료도 존재

최창근
2022년 07월 7일 오후 6:12 업데이트: 2022년 07월 7일 오후 9:51

세종특별자치시 한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가 1994년 사망한 김일성 북한 주석을 찬양하는 발언을 해서 계약 해지 처분을 받았다.

2022년 3월, 중학교 3학년 과학 수업 시간에 해당 교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군이 승리한 전투는 봉오리·청산리 전투 외에도 하나가 더 있는데 그 전투가 교과서에 안 나오는 이유는 이를 주도한 게 ‘김일성 장군님’이기 때문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 교사가 언급한 전투는 1937년 김일성이 지휘한 동북항일연군이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 보전리 주재소(파출소)를 습격한 이른바 ‘보천보 전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폄하한 발언도 문제가 됐다. 그는 “미국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싶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권력 욕심이 많았던 이승만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미국의 말에 혹해 서울로 귀국했다.” 등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의를 일으킨 교사는 세종시교육청 소속의 정교사가 아닌, 수업이 어려운 교사를 대신해 일주일간 학교지원센터에 파견 나간 대체 교사이다. 학교지원센터는 학교 요청이 있을 경우 단기간으로 기간제 교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세종시교육청은 해당 교사 발언 관련 민원을 접수하고 감사를 실시했으며 지난 5월 결과를 통보했다. 교육청은 “기간제 교사이기 때문에 교육청 차원에서 당사자를 징계·처분을 내릴 근거와 권한이 없다.”며 “감사 결과를 교사의 소속 기관(학교지원센터)에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감사 결과를 통보받은 센터는 ‘계약 해지’를 결정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다. 사유는 ‘성실 의무 위반’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다. 해당 교사의 계약 기간은 지난 3월부터 2022년 2월까지다.

세종시교육청은 “‘김일성 장군님’ 관련 발언은 수업 중 정치·역사·분단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서 흘러나왔다.”며 “구체성이 떨어지고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의견 또한 합리적이라거나 나쁘다는 등 분분해 문제 삼기 어렵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다만 “역사 교과가 아닌 과학 수업 시간임에도 해당 교사가 부적절하게 욕설을 섞어가며 정치·역사 편향 발언을 해 성실·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감사 결과를 설명했다.

감사 과정에서 해당 교사는 민원 내용과 감사 결과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학생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김일성 장군님’ 발언은 사실이지만 북한 측이라는 ‘전제’를 달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북한에서 거행된 보천보 전투 승리 80주년 기념 횃불행진. | 연합뉴스.

문제를 일으킨 1937년 보천보 전투는 북한 정권이 ‘김일성 항일 투쟁 최대 업적’으로 선전하는 사건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6권에는 ‘보천보 전투는 대포도, 탱크도 없이 진행한 자그마한 싸움이었다.’고 기술했다. 역사학계에서는 순사(경찰) 5명이 지키던 작은 마을을 습격한 사건으로 ‘전투’라고 보기 어려우며 김일성이 지휘자였는지도 불분명하다고 본다.

김일성 일대기인 ‘김일성 1912~1945’을 펴낸 재미(在美) 조선족 작가 유순호 씨도 보천보 전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일성 부대, 즉 항일연군 2군 6사 부대가 추격당하는 과정에서 압록강을 넘어 북한 함경남도 보천보를 습격한 사건이다. 전투 규모는 작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당시 언론들이 일제히 김일성의 이름을 보도하면서 파급력이 대단했다. 실제 보천보까지 들어갔던 지휘관은 김일성이 아닌 6사 작전참모장이었던 중국인 왕쭤주(王作舟)였고, 전투 참가자는 중국인 대원들이 더 많았다.”

북한 체제와 김일성 일가 연구 권위자인 서대숙 전 미국 하와이대 교수도 보천보 전투에 관한 북한 측의 주장은 허위 과장이라며 2010년 자유아시아방송(RFA)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당시 보천보 지역은 주민 300여 가구가 살던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북한 측에서는 이 보천보 전투에서 100여 명의 일본 경찰이 죽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곳에 상주하던 일본 경찰은 5명에 불과했다. 따라서 100 여 명이 넘는 김일성 부대가 다섯 명의 경찰을 제압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역사학자들의 생각이다.”

올해 초에도 서울특별시, 광주광역시 등에서 교사의 정치 편향적 발언에 대한 민원이 제기됐다. 다만 해당 교육청은 ‘교육청 차원에서 징계할 사안이 아니다’ ‘징계권이 있는 학교에 주의·경고 조치를 요구했다’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 5월 보도 자료를 내고 “정치 편향 교육은 명백히 위법 사항”이라며 “교육청의 솜방망이 조치는 정치 편향 교육을 방치·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교육기본법에는 ‘교육은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