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국가 안보 우려 속 對中투자 심사 강화…미국도 동참

이멜 아칸(Emel Akan)
2019년 12월 29일 오전 11:39 업데이트: 2020년 01월 2일 오전 11:42

외국 자본의 자국 투자에 대한 심사규정을 강화하는 국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안보에 대한 높아지는 위협에 대비하는 것으로 특히 중국 국영기업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다.

무역·투자·개발에 대한 이슈를 다루는 정부 간 협의체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전 세계 ‘외국인 직접투자’의 12%가 국가 안보 우려 때문에 투자 차단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몇 년 동안 외국 기업들이 투자하고자 하는 해당 국가에서 심사 절차의 범위와 깊이, 그에 상응하는 공시 의무를 확대하는 등 투자 심사가 까다로워져 거부당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2016년부터 2019년 9월까지 계획됐던 외국기업 인수가 차단 또는 취소된 경우가 최소 20건이며, 그중 16건은 중국 투자자와 관련이 있다. 차단된 거래의 총 가치는 1625억 달러(약 188조6000억 원) 이상에 달했다.

최근 외국인 투자심사를 강화한 나라는 호주·캐나다·이탈리아·뉴질랜드 등이며, 국가 안보와 관련해 외국인 투자심사가 늘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탈리아에서 2018년 안보와 관련한 소송 건수가 2015년에 비해 255%가 급증했고, 미국에서는 2018년 심사 건수가 2015년에 비해 160%나 많았다.

투자심사 범위는 예전에는 국방 및 방위산업에 국한했지만, 인공지능·로봇공학·반도체·5세대 이동통신(5G)·바이오테크놀로지·위성·항공우주 등의 핵심 기술과 노하우로 확대됐다. 또한 자국민의 개인정보나 민감한 데이터를 외국 기업에 흘러가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선진국 및 신흥국 모두 국가 안보 위협에 대응해 투자 기업 선별 방법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약 8년 동안 최소 13개국이 기존 외국인 투자법을 개정해 새로운 규제 체계를 세웠다.

보고서는 각 나라가 외국인 투자 단속을 강화하는 이유와 사례를 제시했다.

각 국가는 자국의 최첨단 기술 및 노하우가 한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기 때문에 자국의 테두리 안에 남아있기를 원하며, 외국 국유기업과 국부펀드 형태의 투자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단속을 강화했다. 특히 국영기업을 이용해 각 나라의 주요 기술을 얻어내려는 중국인 투자자를 경계했다.

예를 들면, 2018년 5월 캐나다 정부는 중국 국유기업 중국교통건설(CCCC인터내셔널 홀딩)이 자국의 1위 건축 및 발전설비업체 에이콘을 15억 달러에 인수·합병(M&A)하려는 계획을 불허했다. 캐나다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고, 국가 번영을 창출할 외국인 투자를 위한 문은 활짝 열려 있지만, 국가안보를 희생하지는 않는다”며 불허 사유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9월, 중국계 사모펀드 캐넌브리지의 미국 래티스 반도체 인수를 중지시켰다.

앞서 해외 자본의 미국 기업 M&A 및 투자를 심사하는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는 래티스반도체와 M&A 협상을 하는 캐넌브리지가 중국 정부 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차이나 벤처 캐피털 펀드’가 결부돼 있다는 이유로 인수를 허가하지 말라고 백악관에 권고했다. 이후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지적재산권이 외국 인수자에게 넘어갈 수 있다” “반도체 공급 체인의 통합성이 미국 정부에 중요하며, 정부가 레티스 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 외국인 투자 심사 확대

미국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국 투자에 대처하기 위한 일환으로 투자 심사를 강화하는 법을 제정했다.

외국인 투자 위험 심사 근대화법(FIRMA)은 미 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로 통과돼 2018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최종 입법화됐다.

이 법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의 대미 투자에 대한 범위 확대와 필요시 거래 취소 또는 중지하도록 재무부 산하 CFIUS의 권한을 확대시켰다.

독일 또한 2018년 12월, 독일 기업의 직·간접 인수에 대한 의결권 심사 문턱을 25%에서 10%로 낮춰 외국 기업의 거래를 차단하는 확률을 높였다.

2016년 중국 최대 백색가전 업체 메이디(美的)가 독일 첨단로봇 산업을 선도하는 쿠가AG를 인수한 후 독일 및 유럽에서 보호주의 정서가 높아졌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용 로봇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만큼 쿠가AG는 독일의 자존심이었다.

이후, 중국이 독일의 고급 기술을 사들일 수 있다는 우려를 고조시켰고, 독일 반도체기업 아익스트론을 인수하려던 중국 펀드 회사의 계획은 무산됐다. 당시 중국 기업 푸젠 훙신 투자펀드는 미국 정부의 반대로 인수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훙신의 아익스트론 미국 자회사 인수 계획이 오바마 행정부에 의해 깨지면서 인수 약정 상의 조건을 채우지 못해 독일에서도 인수 계획이 무너졌다.

영국은 지난해 국가 안보 문제로 영국 자산의 외국 인수를 막기 위해 정부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120쪽 분량의 정책을 발표했다. 영국은 주로 중국과 러시아 투자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중국 정부는 제조업 육성 청사진으로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전략을 내걸고 첨단 정보기술(IT)·고급 공작기계 및 로봇·항공우주·신에너지 자동차 등 10대 핵심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중국은 산업스파이·사이버 절도·시장접근 등 다양한 전술을 동원해 외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작사업을 강요하며 그 목적을 실현하고자 했다.

외교관계협의회(CFR)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의도는 미국·독일·한국·일본과 같은 나라들과 첨단 기술 경제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기술로 완전 대체 또는 완전 정복하려는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전략에는 2025년까지 첨단산업 핵심부품 및 기본 소재 70%를 ‘자급자족’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