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중립 화장실’ 반대 기자회견…“모두에게 위험한 화장실”

이윤정
2022년 03월 29일 오후 3:27 업데이트: 2022년 03월 31일 오전 10:12

성공회대, 국내 대학 최초 성중립 화장실 설치
학교 측 “성 소수자도 불편함 없이 이용 가능”
시민단체 “성범죄 우려, 성 정체성 확립에 부정적 영향”

최근 국내 대학에도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최초로 설치된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성별이나 성적 지향, 장애 유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성중립 화장실’이라고도 불리는 ‘모두의 화장실’이 지난 3월 16일, 국내 대학 최초로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에서 문을 열었다. 학교 측은 “화장실에 성별 구분을 하지 않아 태어났을 때의 지정 성별과 태어난 후의 성별 정체성이 다른 성 소수자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된 새천년관 지하1층에 들어서자 낯선 화장실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표지판에는 성중립을 뜻하는 세 사람(치마 입은 사람, 한쪽엔 치마를 한쪽엔 바지를 입은 사람, 바지 입은 사람), 아기 기저귀를 가는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이 함께 그려져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인용 화장실이지만 내부는 여러 명이 들어와도 충분할 정도로 널찍했다. 아기를 눕힐 수 있는 기저귀 교환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곳곳에 설치된 핸드레일, 접이식 의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위한 각도 거울, 월경컵을 세척할 수 있는 세면대까지 설치돼 있었다.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 ‘모두의 화장실’ 내부 모습 | 에포크타임스

자유수호포럼과 따보따보(따르고 싶은 보수주의 따뜻한 보수주의)는 3월 28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정문 앞에서 ‘성중립 화장실은 성범죄에 무방비상태’ ‘모두를 위한 화장실 모두에게 위험한 화장실’ ‘성중립화장실 문화사조 반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성공회대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젠더, 성 중립 이데올로기는 신이 부여한 두가지 성을 거부하고 성을 수백 가지 경우로 다양화함으로써 성 정체성의 혼란을 정상적인 현상, 문화로 받아들이게 한다”고 주장했다.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일명 모장실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우선 “모장실 설치 과정에서 과반수의 재학생들이 반대했지만 총학생회가 독단적으로 강행해 올바른 의사결정 과정 없이 밀어붙인 사업”이라며 “민간단체, 특정 정당 등 외부 세력까지 끌어들여 학교를 압박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학생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행동까지 보였다”고 했다.

아울러 “모장실은 성범죄의 위험성이 있다”며 2020년 미국 고등학교 성 중립 화장실에서 발생한 성폭행 범죄를 사례로 들었다.

지난 2020년 3월,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미국 위스콘신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해 18세 고등학생이 체포되고 성중립화장실이 폐쇄됐다고 보도했다. 2018년에는 미국 조지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트랜스젠더 학생들에게 여성 화장실 사용을 허용한 이후 한 트렌스젠더가 5살 여아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앞서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다. 이듬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모든 공립학교에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과 라커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미국에서 성중립 화장실은 성범죄 발생 등으로 사회적 이슈가 됐을 뿐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버지니아주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이 발단이 돼 민주당 중진 하원의원들이 재선 불출마를 선언한 일도 있었다. 지난해 5월 한 남학생이 스커트를 입고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후 민주당을 지지하던 학부모들이 자녀 안전을 우려하며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고 결국 민주당은 패배했다. 그 후 12명의 민주당 하원의원이 2022년 중간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3월 28일 성공회대 정문 앞에서 ‘성공회대 모두를 위한 화장실 반대’ 기자회견이 열렸다. | 에포크타임스

박혜령 자유수호포럼 공동대표는 “모장실은 성중립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새로운 화장실 문화 사조로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장실은 성 정체성에 혼란을 가진 대학생들의 다양한 동성애 행위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고 다음 세대의 올바른 성 정체성 확립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수호포럼 이수지 청년위원은 “성공회대 측에서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하면서 그 대상자인 성소수자를 규정할 때 어린이, 노인, 장애인을 모두 성중립 범주에 넣었다”며 “이것이 상식적이고 지각 있는 분류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위원은 “아무리 내 몸을 내 맘대로 바꿀 수 있는 시대에 산다 해도 우리 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불변의 보편적 기준이란 게 있고 사회 안정을 위해 넘으면 안 되는 수위가 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가르칠 의무가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는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자연의 섭리대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법이라는 올가미로 옥죄어 통제하려는 의도로밖에는 보여지지 않는다”며 성중립화장실의 영구 축출을 촉구했다.

이슬아 따보따보 대표는 “성중립화장실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아닌, 성 정체성에 혼란을 가진 소수의 대학생만을 위한 화장실이므로 올바른 용어가 아니다”라며 “성 소수자의 인권이 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의 의견보다 중요한, 기득권이자 정치적 아젠다가 됐다”고 주장했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 | 에포크타임스

이날 성공회대에서 만난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수업 여파로 캠퍼스 내 학생이 많지 않았다. 점심시간 학내 식당을 찾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3학년에 재학중인 A군은 “남녀 화장실로 구분해도 성범죄는 있다”며 “성소수자, 장애인 등 화장실 이용이 불편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성중립 화장실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B양은 “필요한 시설이라고 생각한다”며 “총학생회에서 계속 감시하고 검사를 한다니까 안전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다.

C양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예민한 문제”라며 “특히 에브리타임(성공회대 익명 커뮤니티)상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컸다. (성중립 화장실) 지을 때 민주적 합의나 절차가 결여돼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고 아예 모두의 화장실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D양은 “개인적으로는 반대하지만 함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은 E군은 “개인적으로는 반대한다”면서 “학교 예산도 충분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더 급한 일에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F군은 국내 대학 최초로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한 것을 두고 “진보적 학풍이 좀 센 학교라서 그런 것 같다”며 “소수자들을 위한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좀 다른 각도에서, 실용적 방향으로 개선하는 방안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은 5년의 논의 끝에 설치됐다. 2017년 성공회대 총학생회가 출마 당시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관심을 끌었지만, 학내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누구나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획기적 시도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지만 남녀 공용화장실과 다름없고 불법 촬영 등 성범죄가 우려된다는 부정적 시각도 존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성공회대 비대위가 다시 공론화에 나선 후 같은 해 11월 학교 처장단 회의에서 모두의 화장실 설치가 확정됐다. 성공회대 측은 지난 3월 16일, 성공회대 강의동으로 쓰이는 새천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건물 지하 1층에 모두의 화장실을 완공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기석 총장은 “화장실 이용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이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존 화장실을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비록 소수의 사람이라도 모두의 화장실을 통해 불편함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28일 성중립화장실 반대 기자회견에 대해 성공회대 측에 논평을 요청했지만, 기사 보도 시점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