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작은 티베트를 꿈꾸다”

애나 조
2009년 03월 5일 오후 1:12 업데이트: 2019년 12월 13일 오후 5:11

지난해 이맘때쯤 서울 한복판에서 목이 쉬도록 “Free Tibet”을 외쳤던 민수씨. 티베트 옷에 설산사자기를 든 티베트인이었지만,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했던 그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후 1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하늘에 닿을 듯한 설산과 순박하고 활기찬 티베트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곳. 지난해 9월 그는 서울 명동 작은 골목에 국내 최초로 티베트 전문음식점 “포탈라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에게는 격동된 모습은 잦아들고, 티베트 젊은이의 순수함과 패기가 한 층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 “식기 전에 드세요.” 그는 오랜만에 만난 기자에게 정성스럽게 만든 짜이(밀크티)를 내밀었다.

▲ 민수씨는 가장 낮은 자세로 사람을 만나고 싶은 바람에 “포탈라 레스토랑”을 열었다.@이인숙 기자

“어떤 조직이 없이, 어느 누구와 회의를 거치지 않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티베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가게를 열게 됐어요.” 그는 “가장 낮은 자세”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이 공간을 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세계 곳곳에서는 “Free Tibet”이 울려 퍼졌다. 무력으로 티베트인을 진압하는 중공에 대한 항의 시위였다. 한국에서도 티베트인과 티베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평화의 성화 봉송”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진은 최종 목적지를 앞두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깃발을 든 중국 유학생들에게 폭력으로 저지당했다.

▲ 티베트 젊은이의 순수함과 패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민수씨@이인숙 기자

– 작년 평화의 성황 전송행사 때 중국 유학생과 마찰이 있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중국유학생들을 비난했지만, 저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어요. 대사관이 돈을 썼다는 게 다 밝혀졌잖아요. 위쪽에서 잘못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뭘 알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저는 나는 이야기를 할 권리가 있고, 당신들도 이야기할 권리가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단지 인원수가 많다고 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때리고 부수는 건…….

한국 사람한테도 이럴 수 있는데, 그(중국) 안에서는 얼마나 무력을 썼을까. 그게 전 세계에 비춰지는 거죠. 큰 실수하는 거죠. 저는 오히려 더 강해지고, 오히려 하고 싶어지고, 그런 마음이 생겼어요.

– 티베트가 독립을 원하는 가장 절실한 이유가 뭔가요.

지금 티베트의 문화와 티베트 어가 티베트 안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강제적으로 중국화 되고 있는 거예요. 많은 중국인을 강제 이주시켰고, 티베트인과 강제 결혼시켰어요. 결혼했을 때 혜택을 주면서 말이죠.

문화대혁명 때 6000개 이상의 절을 파괴했죠. 스님들은 강제 결혼 시키고요. 포탈라궁 앞에 보면 큰 호수가 있어요. 그 호수는 나름대로 수백 년 전의 상징이 있는 호수에요. 그런데 거기에 아스팔트를 깔고, 광장을 만들어 버렸어요. 티베트인들이 모시는 사원인 초르텐도 불도저로 밀고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어요.

포탈라궁 앞에는 술집과 나이트클럽이 쫙 깔렸어요. 만약 그것이 중국의 상징이었다면, 과연 정부가 그렇게 했을까요. 의도적으로 완전히 무너뜨렸죠. 티베트인들에겐 종교적 믿음의 상징적인 것들을 없애려고 하는 거죠.

– 올해가 티베트 망명정부 50주년이라 중공이 많이 긴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중국정부가) 언론을 접근 못 하게 하거나, 군사적 힘을 투입해서 막는 것뿐이지 막을 수 없는 걸 막고 있다고 보거든요. 티베트 안에서 티베트인들이 하는 것은 자살이에요. 시위가 아니에요. 난 죽겠다고 자살하는 거예요. 그 자살을 언제까지 얼마나 군사적인 힘을 투입해서 막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대화의 문은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티베트 자유, 독립이 아니라 티베트인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죠. 죽으면 가지고 갈 게 없어요. 내 몸조차도 못 가지고 가는데. 그러나 사는 동안은 나는 어떤 민족 사람이라고 말할 자유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조차 뺏고 있다는 것은……. 중국인들이 프라이드를 가진 것처럼 우리도 그런 프라이드를 갖고 싶어요.

– 티베트 독립에 대한 문제가 나오면 다른 소수민족의 문제가 항상 같이 언급이 돼요.

중국이 티베트를 주면 다른 소수민족들을 줘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돼봐야 아는 거라고 생각해요. 만들어내는 이야기에요. 내가 잘해주면 내 머리 위에 올라설 거라고 미리 예상하는데. 잘해줘 봐야 알 거 아니에요. 필요 없는 정책을 쓰고 있어요. 다른 문화를 인정하지 못하는데 소수민족들을 어떻게 지키고 있느냐는 거죠. 분리될까 봐 불안해서 별 정책을 다 쓰면서 하는 거죠.

– 티베트에 아직 사원이나 절이 많이 남아있죠?

물론 중국에는 절과 교회도 있어요. 거기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탄압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포탈라궁에 가면 스님들이 기도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종교를 인정한 게 아니에요. 어마어마한 관광수입이에요. 단지 종교를 인정한다고 해서 인정 하는 게 아니라, 돈이 나온다 하면 하게 놔두는 부분이죠. 보이는 것은 인정하는 것처럼 보여요.

–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요.

신으로 모시고, 우리의 왕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쫓겨났어요. 그 땅에서. 그 왕궁, 사원에서 쫓겨났어요.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고 모두 그분을 뵙고 싶어 하죠. 전 세계 사람들이 티베트인들을 인정하고 있어요. 달라이 라마의 큰 힘이 있었기에 전 세계 티베트인들의 자리가 있어요. 여러 나라에서 망명자들을 받아들이고 있고요. 티베트인은 다른 나라에서도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배우고 이만큼 있을 수 있게 된 건. “나”도 중요하지만, 그분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티베트인이 그렇게 생각해요.

– 중공은 판첸 라마를 내세우고 있던데요.

어떻게 그런 지저분한 일들을 하는가. 어떻게 그렇게 사고할 수 있나. 작년에도 군인들을 머리 깎여서 스님 분장을 하고 보내지 않았나요. 아주 지저분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사람의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나요.

– 중공은 티베트를 개발시켰다고 주장하는데.

어떤 중국 유학생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더군요. 우리가 해방시켰고, 개발시켰다고 해요. 그런데, 철도를 깔아서 누구에게 이익을 돌아가나요? 티베트 문화를 이용해서 벌어들인 돈은 공산당으로 가겠죠.
제가 알기엔 공산당은 평등을 주장하는데, 중국의 부자가 얼마나 많은가요. 하지만, 아직도 중국에 하루 끼니를 힘들어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나요. 사람이 적어도 땀 흘린 것만큼은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힘들게 하는 정부는 필요 없다는 거죠.

– 그래서 많은 중국인들이 탈당을 하고 있나 봅니다.

(공산당은) 지구 안에서 사라지는 하나의 정책인데. 그 정책을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공산국가들을 보면 무기력이 강하고, 감추려고 하지만 실제 삶이 실망스럽게 다 드러났어요. 작년 북경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많은 집이 부서졌는지. 이런 것은 언론에 안 나갔어요. 무조건 무력으로 통제하는 거예요.

만약에 중국 안에서 정당한 일이 일어나면, 언론에 나올 것 같아요? 저는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공산당이에요. (공산당이) 세계를 좀 무서워했으면 좋겠어요. 세계의 눈이 있는데 망신스럽지 않나. 잘못 교육받는 중국인들이 나중에 이 사실을 다 알게 되면 뭐라고 할까요. 방송, 언론, 외교 등에 어떻게 책임을 지겠나.

– 그래도 많은 사람이 티베트를 지지하고 있어요.

티베트인들은 작은 벌레도 전생의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이지 않아요. 어떤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가 숨을 쉰다고 생각해요. 천연기념물인 학이 내 집 앞을 돌아다녀도 건드리지 않아요. 먹는데 욕심부리지 않고, 최소한의 것을 먹죠. 그게 바로 티베탄(티베트인)이에요.

– 힘든 시기에 레스토랑을 시작하는데 어렵지 않았나요.

전세자금을 빼고, 어렵게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 레스토랑을 시작했어요. 가게가 망하면 문을 닫으면 되고, 돈은 다시 벌어서 만들면 되지만, 꿈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요. 티베트 이름을 걸고 장사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낮은 자세의 활동이에요.

누가 와서도 궁금한 거 있으면 이야기를 하고, 나누고, 자유로운 이야기 나누는 거죠. 오래 있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따뜻한 차라도 계속 따라주죠. 차라도 따라주면 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지잖아요. 그게 티베트 문화예요. 말로 안 해도 더 있어도 된다는 말이잖아요. 그럼 손님은 편안하게 있다가 또 찾아와요.

– 그래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나.

경제적인 부담을 생각하게 되면 자꾸 그렇게 생각하게 돼요. 그냥 제가 그 손님을 편하게 해 드렸다 하면 그 손님은 10명을 데리고 와요. 그 10명을 편하게 해주면, 그 10명의 사람에게 티베트의 문화를 알린 거랑 똑같다고 봐요.

지금 순간은 3000원짜리 차 한 잔이지만, 내가 차를 주고 그 사람이 기뻐했을 때는 내가 기쁜 거에요. 고맙다고 하면 그 모습에 기뻐요.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니까 그 감사하다는 표현이 저한테는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고. 손뼉을 칠 때 소리 나는 것처럼 한쪽 부분만 생각하면, 한쪽 부분만 생각하게 되고. 내가 넓게 생각하면 넓게 사람들을 품에 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