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언론, 中 재벌들 연이은 실종에 주목…“경제통제권 강화”

정향매
2023년 04월 25일 오후 5:34 업데이트: 2023년 05월 2일 오후 5:20

“업계 리더가 갑자기 사라지는 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가?”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닉 마로 중국 전문 분석가는 4월 1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에 “우리는 수년 전부터 유명한 (중국) 사업가들이 연이어 실종되는 것을 목격했다. 또 다른 유명 인사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면서 이같이 반문했다.

CNBC, 中 억만장자 실종 사례 소개 

지난달 27일(이하 현지시간) 알리바바 그룹 창업자 마윈(馬雲)이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항저우(杭州)의 한 학교를 방문해 2년여 만에 다시 중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윈은 한때 중국 최고 부자로 꼽혔다. 2020년 10월 공개 석상에서 국영은행 중심의 금융권을 ‘전당포’에 비유하며 중국 금융 당국과 금융 시스템을 비난했다. 같은 해 11월 중국 당국은 대대적 IT분야 단속으로 알리바바의 핀테크(금융+기술) 부문 앤트 그룹의 기업공개(IPO)를 돌연 취소했다. 이후 마윈은 오랫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중국 출신 억만장자 가운데 실종됐거나 실종된 적이 있는 사람이 마윈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CNBC는 이날 방송에서 최근 몇 년 이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다른 중국 억만장자들의 실종 사례도 소개했다. 

2015년 12월,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던 궈광창(郭廣昌) 푸싱(復興)그룹 창업자 겸 회장이 실종됐다. 당시 푸싱그룹 측은 궈 회장이 “사법 당국의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17년 1월, 중국 투자회사 밍톈(明天)그룹 샤오젠화(建華) 회장이 홍콩에서 실종됐다. 5년 7개월 뒤인 지난해 8월, 샤오 회장은 상하이중급인민법원에서 ‘금융 사기·부정 부패’ 죄목으로 1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20년 3월에는 중국 부동산 재벌 런즈창(任志強) 전 화위안(華遠)그룹 회장이 실종됐다. 그는 앞서 중국 당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비판한 글을 인터넷상에 공개하며 시진핑을 ‘벌거벗은 광대’에 비유했다. 이후 런 전 회장은 실종 6개월 만인 2020년 9월 뇌물 수수 죄로 징역 18년형과 벌금 420만 위안(元)을 선고받았다. 

올 2월 16일, 중국 투자은행(IB) 차이나르네상스(華興資本) 홀딩스가 공시를 통해 “바오판(包凡) 회장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후 2월 26일 르네상스 측은 “바오 회장이 중국 당국의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BBC “中 공산당, 경제 분야로 통제 초점 넓혀”  

중국의 억만장자들은 왜 하나둘 실종되는가.

영국 공영방송 BBC는 3월 8일 전문가들을 인용해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경제 권력을 되찾기 위해 종종 베일에 가려진 방식으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보도했다.    

방송에 의하면 중국 정부는 “법적 근거에 따라 국내 최상위 부유층에 대해 조치했다”고 주장하며 “부패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베이징의 이러한 조치는 수십 년에 걸친 경제 자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은 자유화를 통해 경제 규모 면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대국이 됐다. 개방 조치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억만장자들도 양산했다. 

시진핑 집권 이전의 중국 정부는 군·중공업·지방정부 등 전통적인 권력 중심 분야를 통제하는 데  집중했다. 중국 기술 산업은 시진핑의 전임자인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의 정책에 따라 크게 발전했다. 

시진핑은 전통적인 권력 중심 분야에 대한 통제를 엄밀하게 유지하는 동시에 초점을 경제 분야로 넓혔다. 그가 주창한 이른바 ‘공동 부유’ 정책에 따라 중국 당국은 경제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했으며 특히 기술 산업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전문가들 “시진핑, 경제 권력 중앙 집중화…멈추지 않을 것”  

닉 마로는 BBC에 “중국 당국은 특정 산업이나 이익 단체에 더 광범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러한 (실종) 사건들을 만들어 낸다”며 “이는 지난 10년 동안 시진핑 통치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그가 경제의 특정 부분에 대한 통제와 권한을 중앙정부로 집중하려는 시도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D.C에 기반을 둔 글로벌 투자자문사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의 풀 트리올로 중국·기술 정책 책임자도 방송에 “중국 정부는 여전히 대형 기술 플랫폼 기업들과 참여자들이 자체 브랜드와 영향력을 키워 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거나 당국의 선호에 반하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 2016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매년 세계에서 억만장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로 꼽혀왔다.

중국판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 리포트’가 3월 23일 발표한 ‘2023 전 세계 부자 명단’에 따르면 올해 중국 출신 억만장자는 969명으로 중국은 올해도 미국(691명), 인도(187명), 독일(144명), 영국(134명)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올해 중국 억만장자의 수는 지난해(1135명)에 비해 166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