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마감하려다 실패해 법정에 선 두 청년을 울린 판사의 위로

이서현
2021년 02월 10일 오전 11:35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전 11:28

지난 2019년 8월, SNS를 통해 알게 된 세 청년이 생을 등지기로 하고 울산의 한 여관방에 모였다.

한 사람은 의식을 잃은 상태로 구조됐고, 실패한 두 사람은 서로 자살을 방조함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섰다.

판사는 사람을 모으고 도구를 준비한 A씨(당시 29세)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B씨(당시 35세)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재판부는 두 피고인에게 보호관찰 받을 것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은 타인의 생명을 침해할 위험이 큰 범죄라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삶의 의지를 다지며 다시는 이런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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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박주영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에 따로 준비한 종이를 꺼내며 두 청년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장기 구금해야 하는 건 아닌지 깊이 고민했다”라며 “생을 포기하려 한 고뇌와 심정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 살아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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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우주가 도서관이라면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한번 시작된 이야기가 허망하게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여러분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박 부장판사는 두 사람에게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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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격려와 응원을 받은 두 피고인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박 부장판사는 특히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A씨에게는 각별히 더 신경을 썼다.

A씨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어렵게 성장했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어머니마저 지병으로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직장생활과 대인관계마저 원만하지 못하자 결국 나쁜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다.

A씨는 당시 자살에 필요한 도구를 준비할 비용을 마련하려고 휴대전화까지 팔았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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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부장판사는 여동생 집까지 갈 차비마저 없었던 A씨에게 “밥 든든히 먹고, 어린 조카 선물이라도 사라”며 20만원을 쥐여줬다.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판사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피고인에게 건넨 돈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고립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도처에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잘살고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라며 “눈길을 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누군가를 살게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