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식량위기 대책으로 ‘마법의 씨앗’ 사용 제안

한동훈
2022년 09월 21일 오후 9:05 업데이트: 2022년 09월 21일 오후 9:33

각국에 유전자 변형 작물(GMO) 투입 확대 촉구
비판 측 “비료·살충제 사용 방식…토양 품질 저하”

억만장자 빌 게이츠가 식량위기 해결을 위해 농업기술 혁신과 함께 기후변화·병충해에 강한 “마법의 씨앗(magic seeds)” 사용을 주장했다.

마법의 씨앗은 더 고온건조한 기후와 병충해에 강력한 저항성을 보이도록 설계된 ‘유전자 변형 작물(GMO)’에 게이츠가 붙인 별명이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에서 아프리카에서 특정 옥수수를 품종 개량해, 기후변화로 더 고온건조해진 기후에 잘 적응하는 하이브리드 작물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게이츠는 이번 보고서에 실린 에세이에서 ‘드라우트 테고(Drought TEGO)’로 이름 붙은 GMO 옥수수가 케냐에서 1에이커(약 4천㎡)당 평균 66% 많은 생산량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GMO의 효용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 인도 판자브의 벼농사를 꼽았다. 이 지역의 농가들은 기후변화로 수확량이 줄었으나 조생품종을 이용해 재배기간을 3주 단축하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조생품종은 일반적으로 수확량이 좀 줄더라도 일찍 수확·출하할 수 있는 품종이다. 판자브 농가에서는 벼농사 외에 밀농사에도 조생품종을 투입해 작황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츠는 2008년부터 약 16억 달러(2조2천억원) 이상을 아프리카의 농업 발전에 투자해왔다. 여기에는 고온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옥수수 품종을 위한 연구 자금도 포함됐다.

그는 세계 식량위기가 심화되면서 단순한 식량 지원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으며, 농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마법의 씨앗에 투자해야 한다고 각국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일부 국가들은 충분한 양의 식량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고 이 상황은 기후변화로 인해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혁신 없이는 아프리카를 먹여 살리는 데까지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과 달리 실제 성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이츠는 15년 이상 농업 분야 프로젝트를 추진해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중 하나가 2006년 게이츠재단과 록펠러재단의 출자로 설립된 ‘아프리카 녹색혁명을 위한 동맹(AGRA)’이다.

AGRA는 기아와 빈곤을 줄이기 위해 아프리카 투자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면서 14년 동안 10억 달러(약 1조4천억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독일 시민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단체가 활동한 국가에서는 농업 생산성이 실제로 향상됐다는 증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오히려 이 기간 AGRA 활동 국가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은 3100만 명 이상 증가했다.

이는 AGRA의 활동이 현지 농가의 현실과 요구사항을 세밀하게 고려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요점이다.

탄자니아에서는 농가들이 다른 작물을 재배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AGRA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생산비용이 상승하고 작물의 다양성이 훼손됐다.

르완다에서는 일부 농가에 합성비료를 사용이 강요됐고, 케냐에서는 농민들이 옥수수 품종이나 비료, 농약을 선택할 수 없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케임브리지대학의 농생명공학자 겸 부교수 조이바 록은 차라리 자금을 현지 활동가들에게 지원했으면 연구소나 도로, 보관창고, 거래소 건설 등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게이츠가 제안한 ‘농업 혁신’이 비료와 살충제 사용, GMO 종자 사용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토양 품질 저하, 생물 다양성 훼손 등 산업화한 기존 농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게이츠는 GMO 사용 확대와 함께, 인공육 보급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MIT ‘테크놀로지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 대책으로 세계가 동물 줄기세포로 만들어지는 합성 쇠고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농지를 소유한 개인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소유한 농지는 서울 여의도 300배가 넘는 27만 에이커(약 1092㎢)에 달한다.

미국의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이렇게 많은 농지를 산 이유를 묻는 말에 게이츠는 “농업은 중요하다”며 “보다 생산성이 높은 종자를 사용하면 산림 파괴를 피하고 아프리카가 직면한 기후변화에 대처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답했다.

지난 7월 더스티 존슨 미 하원의원은 하원 농업위원회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관련 청문회를 개최해 농지 구입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