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푸젠 사건으로 드러난 中의 2중 언어 시스템

허칭롄(何淸漣)
2015년 04월 22일 오전 8:52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7

최근 며칠 동안 중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비푸젠의 마오쩌둥 모욕 사건은 정부와 마오 좌파와 연합해 만든 강대한 압력 아래, ‘장본인’이 웨이보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에 마오 좌파는 날 듯이 기뻐했지만, 이 사건이 중국의 2중 언어 시스템이라는 함정을 열어젖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일단 시범효과가 형성되면, 전체 중국인(마오 좌파 자신도 포함해서)은 언제 어디서든 이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의 ‘돤쯔문화(段子文化)’와 구소련의 ‘주방문화’

난 비푸젠이 ‘지취위호산’을 부르는 동영상을 보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는 중국의 식탁 돤쯔문화(段子文化)를 좀 더 발전시켰을 뿐이다. 혼자 1인 2역을 하면서 뛰어난 말과 노래 솜씨로 좌중의 손님들을 웃긴 것이다. 이러한 식탁 돤쯔문화는 1990년 중반에 형성됐다. 처음에 베이징에서 시작됐다가 크게 유행하자, 전국 각지에서도 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선전의 일부 사장들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돤쯔를 잘하는 사람을 회식에 부르곤 한다. 나도 여러 지역의 식탁 돤쯔문화를 경험했는데, 외지의 돤쯔문화는 베이징의 돤쯔처럼 생동감 있고 재미있으며 창의적이지 못하다.

돤쯔는 정치류, 외설류 및 유머류로 나뉜다. 정치, 경제 엘리트가 모이는 베이징에는 외설이나 유머보다는 정치류가 주를 이룬다. 관계가 좋은 사람끼리 모임을 가지면, 정치적 뒷이야기를 안주 삼아 하는 것이다.

사실 비푸젠이 노래한 것은 그리 특출한 것도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 내가 베이징에서 들은 마오쩌둥과 동료 혁명가들을 조롱하는 돤쯔는 더 심했다. 예를 들어 마오와 장칭이 연안 토굴에서 밀회한 일이나 주, 류, 저우 등이 몰래 엿들은 일, 덩샤오핑이 키가 작아 벽돌을 나르고 축사 흙을 날랐다는 것 등이다.

돤쯔를 하는 사람은 쓰촨, 후난, 장쑤 등의 사투리로 혁명 지도자들을 흉내 내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장쩌민과 동료를 비꼬는 것은 더 많다. 예를 들어 5명의 상무위원을 ‘5자 치국(딴따라, 미치광이, 바보, 귀머거리)’이라고 놀리거나, 장쩌민이 클린턴에게 ‘위로는 천국과 통하고 아래로는 지옥과 통하는’ 휴대전화를 선물했다는 유명한 돤쯔도 있다.

사실 이는 ‘6·4 학살자’인 덩샤오핑이 지옥에 살고 있음을 풍자하고, 전화요금 명세서를 통해 중국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돤쯔는 실로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식탁 돤쯔문화가 소련의 ‘주방문화’에 중국 특색(외설)과 시대적 특징이 가미된 것으로 생각한다. 스탈린 통치 후반기, 소련에는 ‘주방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공개 장소에서는 빈말과 거짓말만 늘어놓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주방에 모이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각종 정치 뒷이야기를 전하며 현실의 각종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소련 시기 유명한 정치 유머는 대부분 ‘주방문화’의 산물이었다.

사회주의 정치의 위선과 몰염치가 만든 2중 언어 시스템의 함정

중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두 가지 언어 시스템을 운용하는 데 익숙할 것이다. 즉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원칙적인 말, 상투적인 말, 거짓말을 하고, 가족과 친구 사이에는 진심 어린 말을 말하고, 일부 현실이나 주변 사물에 대해 자신의 진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정부의 이데올로기가 현실과 심각하게 어긋나면서 일어난 부작용이다.

중국의 이데올로기 언어는 마르크스주의, 마오쩌둥 사상 및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지지하고 드높이며, 이러한 사상이론의 인도와 사회주의제도의 보장 아래, 중국이 부유한 강대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 수십 년간의 중공 통치를 통해,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인민 사상을 규범화하는 주요 도구로 삼고 사람들을 압박해, 초등학교 때부터 2중 언어 시스템 속에서 왔다 갔다 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시스템에 잘 적응한 사람은 공청단, 공산당에 입당해 앞날을 보장받고, 부정부패의 길로 들어섰다. 운이 더욱 좋으면, 멋대로 부정부패를 일삼아도 감옥에 가지 않고, 평생 부와 명예를 누렸다.

중공은 줄곧 거짓말로 마오쩌둥을 포장했다. 예를 들면, 마오쩌둥이 인민을 이끌고 제국주의를 무너뜨렸다느니, 가난한 자를 주인으로 만드는 구세주니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1949년 이후 중공이 중국을 통치하면서, 잘된 일은 하나도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중공 자신도 마주하기 어려운 어두운 일면으로 가득했다.

예를 들어 반혁명 진압, 반우파, 대약진, 3년 대기근, 문화대혁명, 6·4 등은 마오쩌둥이 이끈 중공이 만든 국가적 범죄이자 과오였다.

현실 생활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회갈등, 부패와 박해, 심각한 환경오염, 과도한 빈부 격차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중공의 이데올로기 선전을 전혀 믿지 않는다. 중공 통치의 합법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공은 독단적으로 자신의 역사를 언론과 연구의 금지 구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이러한 역사를 몸소 겪었고, 인터넷에서 해외 자료를 얻어 진상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역사와 현실의 진실에 대한 인식은 중국인이 사석에서 즐겨 이야기하는 내용이 되었다. 이것이 2가지 언어 시스템이 생겨난 정치, 사회적 배경이다.

중국인은 오랫동안 이 2가지 언어 사이를 오고 가면서, 결국 ‘바보 가장 게임’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공개 석상에서 중공의 이데올로기를 믿는 척하며, 원칙적인 말, 상투적인 말, 거짓말을 통해 이 이데올로기 언어를 믿는 듯이 가장한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진심 어린 말을 하며, 이 이데올로기 언어를 희롱한다. 엄숙하고 진지한 토론은 너무 무거워서, 사람들은 각종 돤쯔를 통해 우울함을 달랜다.

비푸젠 사건은 중국이 정치 통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사회와 정치가 심각하게 좌 편향하는 시기에 일어난 대형 블랙유머 사건이다.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중국의 2중 언어 시스템이라는 함정이 활짝 열렸다. 비푸젠은 마오 좌파에 의해 이 함정에 빠졌지만, 이 때문에 돤쯔문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 사람들이 식탁에서 돤쯔를 말할 때면, ‘비푸젠’처럼 내용이 외부로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휴대폰을 모두 끄거나 건네받을 것이다.

비푸젠 사건이 남긴 몇 가지 상황

1. 마오 좌파의 부상은 중국 사회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형세

마오 좌파의 근본 바탕은 중국 농업문명 시기에 있었던 강호문화 중의 반란 정신이며, 언어 시스템은 ‘마르크스주의+진시황’이다.

평균을 목표로 지방 호족을 타도하고 토지를 분배하는 것(실제로는 모두 가난해지는 것임)이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 분배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사회 빈곤층과 주변 층이 대량으로 나타났을 때 매우 설득력을 지닌다. 권력에 대한 숭배와 아첨, 독재 체제의 인정, 자본가 및 서양의 보편적 가치와 투쟁하는 것이 바로 마오 좌파의 정치적 생존 방식이다.

세련된 언어의 서양 신좌파와 비교하면, 중국 마오 좌파의 사상은 빈약하고, 언어는 저속하며, 변론은 그저 욕설뿐인 것이 문화대혁명의 투쟁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들은 중국이 정치적 이견에 둘러싸였을 때 정부의 지지를 받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관영 언론에서 일하는 비푸젠의 직업 신분을 이용해, 그가 개국 지도자와 해방군을 모욕했다고 비난했고, 당국의 정치적 수요에 영합해 결국 성공적으로 비푸젠을 처벌받게 했다.

중국 사회는 방대한 하류층을 갖고 있지만, 신분이 상승하는 통로는 엄격히 막혀 있다.

많은 하층 청년은 낮은 급료에 취업하거나 5마오당으로 충당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오 좌파가 되면서, 결국 그들은 독재를 키우는 옥토가 되었다.

이 집단이 계속 커진다면, 중국의 정치 열차는 대부분 ‘사람 머리를 베는(즉 독재)’ 궤도 위에서 달릴 것이다. 언젠가 중국이 민주화되어 ‘사람 머리를 세는’ 선거 정치를 한다 해도, 이들은 포퓰리즘에 쉽게 휩쓸려 중국을 베네수엘라의 길을 가도록 할 것이다.

2. 비푸젠 사건은 중국 정치 생태계가 더 악화됐음을 뜻함

동영상이 거대한 풍파를 일으킨 후, 사람들은 누가 이를 인터넷에 올렸는지 추궁하면서 이는 그를 밀고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만약 이런 추측이 성립한다면, 비푸젠 사건은 공개적인 밀고를 사회적 기풍으로 만든 것이다. 밀고문화가 특무 정치와 서로 결합한다면, 그 나라의 정치는 극단적인 암흑시대로 들어설 것이다.

나는 이를 ‘중국은 1984로 향하고 있다’ ‘대학의 정보원 제도–동서창 제도의 재현’에서 분석한 바 있다. 한편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과 이를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동일인이 아닐 수 있다.

사람들이 위챗(微信, 웨이신)을 이용해 이를 유포할 때, 어떤 사람이 재미있다고 여겨 인터넷에 올렸을 수도 있다. 이는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온다.

사회 가치관이 심각하게 분열됐을 때, 사회 각층은 자신과 다른 의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비푸젠이 부른 ‘지취위호산’은 작은 범위에서는 인정받았지만, 전체 사회 범위에서는 오히려 2중 언어 시스템의 희생양이 되었다. 마오 좌파가 서로 다른 의견을 제멋대로 공격한 것은 색다른 일이 아니다.

마오 좌파뿐 아니라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나는 당신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 할 권리를 결사적으로 지키겠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오히려 ‘마음에 안 드는 관점은 호되게 비판하고 공격하겠다.

우선 말로 당신을 공격한 후 당신의 실제적인 이익을 손상시키겠다’는 생각을 신봉한다. 사실 이 원칙은 중공이 사상과 언론을 통제할 때 쓰는 일관된 원칙으로, 옌안시대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마오 좌파는 어떠한 가치관의 방해도 없이 권력에 영합할 수 있었다. 예컨대, 인터넷에서 논쟁이 격렬하여지자, ‘중국기율감찰보’는 비푸젠의 당 기율 위반 행위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영 언론과 공권력이 언론 논쟁에 공공연히 개입하고, 마오 좌파 측에서 압박을 가하자, 중국 정치 생태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전체 사회에 정치적 공포가 형성되었다.

독재 정치 아래, 사람들은 냉소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방관하지만, 극단적인 독재 정치 아래,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받는다. 이 침묵은 복종을 뜻하는 게 아니며, 그 속에는 파괴적인 힘이 계속 축적된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