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과 양제츠의 첫 통화…서로 다른 입장차 확인

정용진
2021년 02월 9일 오후 5:13 업데이트: 2021년 02월 9일 오후 5:13

6일 앤서니 J.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전화 통화를 갖고 신장, 티베트 및 홍콩의 인권, 미얀마 쿠데타, 대만 및 인도·태평양 지역 안전, 국제 질서, 미·중 관계 발전 등 5가지 주제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양측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며 입장 차를 드러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2주 동안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여러 나라 정상들과 통화를 했지만 세계 2대 경제대국의 수장인 시진핑과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6일의 전화 통화는 양국 최고 외교관들의 첫 공식 통화이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블링컨 국무장관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신장, 티베트, 홍콩 등지의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계속 수호할 것임을 강조했으며 국제사회와 함께 미얀마의 쿠데타를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또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동맹국,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하여 우리의 공통된 가치관과 이익을 수호하고, 대만해협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국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고 재천명했다”고 덧붙였다.

블링컨은 이어 공식 트위터 계정으로 중국과의 통화 내용을 전하며 “베이징의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통화에서 나는 미국이 우리의 국가 이익을 수호하고 우리의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앞장설 것이며 국제 질서를 파괴하는 베이징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블링컨의 이 같은 중요한 입장 표명이 중공 외교부의 발표와 신화사 등 관영매체 보도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중공 당국의 발표를 보면 양제츠의 성명은 내용 면에서 종전의 중국 측 태도 표명과 비슷하지만, 어투와 단어 사용에서는 더 강경해져 바이든 정부의 중국에 대한 정책에 미리 레드라인을 긋겠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시진핑 중공 국가주석은 지난주 세계경제포럼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은 대립을 모색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어 양제츠는 2일 미국과의 대화에서 양국 관계가 파괴된 것은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정부 때문이며 바이든 정부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정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왕치산 중공 부주석도 최근 미국에 전한 메시지를 통해 바이든이 이끄는 미국 정부는 중국 측보다 더 많이 바뀌어야 하며 “미국 측에서 한동안의 잘못을 바로잡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논평은 양제츠의 발언은 시진핑 중공 국가주석의 최근 발언 내용에 호응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여러 국가 정상들과 통화를 가졌다. 그러나 세계 최대 두 경제 대국의 정상 간의 통화는 계속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공은 지난해 12월부터 시진핑과 바이든의 회담을 기획했으나 현재 바이든 정부는 중국 측과의 접촉을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4일 첫 외교정책 연설을 발표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의 “최악의 경쟁자(상대)”라며 미국은 지식재산권, 인권 방면에서 중국에 반격할 것이지만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전제하에 베이징과의 협력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우리의 번영, 안보와 민주주의 가치관에 도전을 걸어오는 가장 심한 경쟁 상대인 중국에 우리는 직접적으로 대응할 것”이고 “우리는 중국의 경제적 폐해에 맞서 그들의 침략성과 위협적인 움직임을 억제하고 인권, 지식재산권과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중국의 공격에 반격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 때 베이징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내놓은 중국에 대한 정책 메시지는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매우 흡사하다. 블링컨은 여전히 중국을 미국이 직면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표현하면서 강력한 연합으로 중국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중 관계는 대립하는 측면, 경쟁하는 측면, 협력하는 측면도 있는 복잡한 관계라고 말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로 베이징을 상대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프린스턴대학교 사회학 박사인 청샤오눙 재미 학자는 현재 미·중 시국을 “중공은 글로 공격하고 무력으로 협박하는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하면서 바이든 정부를 몰아붙이고 있어 사실상 바이든 정부는 물러서려 해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그래서 ‘트럼프의 규정을 바이든이 따르는 것’이 현재 미·중 관계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됐다”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