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자 사면, 포용적 이민정책…바이든 정부의 미국 개조와 필리버스터

한동훈
2021년 03월 28일 오전 10:58 업데이트: 2021년 03월 29일 오전 7:36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주도하는 2건의 불법체류자 사면 법안에 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논란에 휩싸인 법안은 미국 내 서류미비 청년들인 ‘드리머(dreamer)’ 300만 명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부여하려는 ‘드림 약속 법안’(HR 6)과 미국 내 불법체류 신분인 농장 근로자 100만 명을 구제하는 ‘농장 노동력 현대화 법안’(HR 1603)이다.

두 법안은 총 400만명에게 불법행위 가담 사실 등이 없다는 조건하에 영주권을 부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시민권까지 허용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일부 언론에서는 드림 법안 사면 대상이 약 440만 명, 농장 법안 사면대상은 약 210만 명으로 두 법안을 통해 총 650만 명에게 시민권 획득의 길이 열린다고 분석했다.

드림 법안 찬성 측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미국에 온 불법 이민자의 자녀가 자신의 의사와 관련 없이 불법체류자 신분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이 법안이 미국에 불법 입국하면 처벌이 아니라 오히려 보상을 받는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게 될 수 있고, 이민 시스템 허점을 이용하는 미성년자 인신매매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 2월부터 미국 남부 국경 지역에서 급증한 밀입국, 특히 미성년자 단독 밀입국 숫자로 어느 정도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계절적으로 밀입국이 증가하는 시기”라고 반박했다.

논란 속에 두 법안은 하원을 통과했다.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하원에서 드림 법안은 228대 197표로, 농장 법안은 247대 174표로 가결됐다.

민주당이 법안을 주도했고,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법안을 지지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드림 법안에는 9명, 농장 법안에는 30명이 가결에 동참했다.

불법 이민자 구제는 바이든 행정부의 역점 과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선서 직후, 제1호 법안(HR 1)으로 이민 개혁안을 민주당을 통해 하원에 상정했다. 이 법안은 미등록 이주민이 일정 조건을 준수하면 8년 뒤부터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영주권은 투표나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반면, 시민권은 투표와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공직 진출에도 제한이 없다. 시민권은 태어날 때부터 미국인이거나 미국에 귀화한 사람이 가지는 권리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개혁은 불법 이민자, 불체자에게 미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할 권리(영주권)를 주고, 미국인과 동등한 권리(시민권)를 가질 방도까지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불체자 사면 법안 2건, 상원 통과 전망은 불투명

미국에서 법안이 법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동일한 내용의 법안이 상하 양원을 모두 통과한 후 대통령이 승인하면 법으로 효력을 갖게 된다.

드림 법안과 농장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까지 통과할지는 불확실하다.

민주당은 상원에서도 다수당이지만, 공화당은 표결을 저지할 수단이 있다. 바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제도다.

상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50대 50으로 동률이지만, 상원의장인 카멜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어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에 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주요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 제도를 적극 활용해, 민주당의 횡포에 제동을 걸고 있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마련된 필리버스터는 과거 하원에도 허용됐지만 현재는 상원에서만 인정된다.

필리버스터가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상원에서는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할 방도가 존재한다. 의원 60명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 필리버스터를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이 50석씩 나눠 가진 상태에서 민주당이 공화당 의원 10명 이상의 이탈표를 얻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기에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제도 폐지 혹은 개정안 추진에 눈길이 집중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공화당이 민주당의 입법을 계속 방해하면 필리버스터를 변경하거나 폐지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필리버스터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뭔가 해야 한다”며 변경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공화당을 이끄는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는 상원의 정수”라며 민주당이 필리버스터 제도를 건드릴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화당의 마지막 보루 필리버스터…민주당 공세 강화

필리버스터 무력화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재임 시절 찬성한 바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안이 공화당의 필리버스터에 번번이 막혔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투표권 확대법안, 노조 강화법안, 차별금지법안, 총기규제법안 등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아젠다를 실현할 법안을 줄줄이 상정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운동가 마크 메클러는 필리버스터가 무력화되면 민주당은 투표권 확대법안인 하원 법안 1호(HR 1)를 서둘러 통과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3일 하원을 220대 210표로 통과한 이 법안은 유권자 명단을 자동으로 만들고, 한번 명단에 오른 유권자는 쉽게 제거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화당이 이탈표 없이 전원 반대한 이 법안에 대해서는 “투표를 쉽게 만들고 부정선거를 부추기는 요소가 포함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메클러는 “민주당은 이 법안을 ‘국민을 위한 법안(For the People Act)’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민주주의 파괴법이라고 부른다”면서 “선거에 대한 주 정부의 결정 핵심권한을 빼앗으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포용적 이민정책, 불법(서류 미비) 이민자 사면 추진과 이 법안이 맞물리면, 민주당이 선거 판도를 완전히 좌우해 선거 승리를 영구화할 수 있으리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6월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꺾어 이 나라를 재건할 뿐 아니라 완전히 개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미국 개조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미국의 기존 국민구성과 제도를 지키려는 공화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떠난 가운데 필리버스터를 마지막 보루로 저항하고 있다.

* 업데이트: 카멜라 해리스는 상원의장입니다. 혼선을 드린 점 사과드리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