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입국 환영’ 시카고 시장, 수천 명 이송되자 “이제 그만”

한동훈
2023년 05월 4일 오후 1:46 업데이트: 2023년 05월 4일 오후 1:46

텍사스 주지사에 서한…“이민자 포화, 보내지 말라”
애벗 주지사 답신 “고작 수천 명에? 우린 매일 1만명”

미국 민주당 텃밭이자 불법 입국자 ‘피난처’를 자처해온 시카고시가 실제로 불법 입국자 수천 명이 이송되자 “수용 불가”를 외치고 나섰다.

3일(현지시간) 시카고 트리뷴 등 현지 언론과 AP 통신에 따르면, 로리 라이트풋 시카고시 시장은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불법 입국자 이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텍사스주는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남부 국경(텍사스-멕시코간 국경)을 통해 밀입국한 중남미 불법 입국자들을 버스에 태워 뉴욕, 워싱턴DC,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지로 이송해왔다.

민주당이 장악한 이들 도시는 소위 ‘성역 도시(Sanctuary City)’를 자처하며 불법 입국자를 지역사회에 받아들여 추방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라이트풋 시장(민주당)은 서한에서 텍사스주의 불법 입국자 이송에 대해 “비인간적이고 위험한 행위”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애벗 주지사는 답신에서 비난의 화살은 텍사스주가 아니라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을 향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성역도시를 자처하며 불법 입국자 수용을 주장한 시카고가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불법 이민자 환영 정책을 도입했을 때 각오하고 대처를 준비했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애벗 주지사는 “텍사스 국경의 소도시들은 불법 입국자가 하루 1만3천 명 이상”이라며 “시카고가 (9개월동안) 고작 불법 입국자 수천 명을 감당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것을 듣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 연합뉴스

그러면서 근본적인 해결을 원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에게 국경위기 해결책을 내놓도록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멕시코와 접한 남부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불법 입국자와, 이들 사이에 섞여 침투하는 조직범죄자들을 막기 위해 국경장벽을 건설하고 각종 차단 정책을 수립했다.

민주당은 이를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했으며, 후임 바이든 대통령 역시 2021년 1월 20일 취임 당일 10개가 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이민정책을 비롯해 트럼프 시절 정책 다수를 되돌리거나 무력화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2월부터 남부 국경에 몰려든 수만 명의 이민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망명 신청을 제한하는 등 트럼프 시절의 강경한 이민 정책을 일부 복원하는 조치를 취했다.

급증하는 불법 입국자와 이민자로 인해 촉발된 남부국경의 위기를 시인한 셈이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 국방부는 지난 2일 군 병력 1500명을 남부국경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미 배치된 주 방위군 2500명에 병력을 추가하는 조치다. 모두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국경보호청(CBP)의 국경관리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와 민주당 일각에서 ‘트럼프 시절과 다름없는 정책’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으나,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시급한 상황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도입한 ’42호 정책(Tiltle 42)’이 이달 중순 종료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마련된 42호 정책은 감염병 확산 위험이 있는 외국인의 입국 차단을 가능하게 한 ‘보건법’ 42호에 근거해, 불법 입국한 망명 신청자를 즉각 추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정책은 2021년 바이든 취임 후에도 유지됐으나, 이달 11일 정책 적용 시한이 끝난다.

42호 정책이 만료되면 불법 입국자가 2배 가까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애벗 주지사는 “라이트풋 시장은 미국 체류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실행되기를 기대한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불법 입국자 대책을 내놓기 전까지 버스 이송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시카고 트리뷴은 라이트풋 시장의 서한에 대한 일부 시카고 시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변호사인 윌리엄 초슬로프스키는 “우리 시카고 사람들이 스스로를 성역도시로 선언했을 때 원했던 일 아니었냐”며 라이트풋 시장의 반응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라이트풋 시장은 버스가 도착하면 민주당의 동료인 바이든에게 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관 브루스 호바넥은 “이는 텍사스와 애리조나에서는 매일 겪는 일의 일부일 뿐”이라며 “이번 일로 우리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은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바텐더가 계산서를 건넨다고 화를 내선 안 된다는 점”이라고 논평했다.

2019년 ‘미국 대도시 최초의 동성애 흑인 여성 시장’ 기록을 세우며 당선된 라이트풋 시장은 취임 후 다양성과 포용성을 전면적으로 추진해왔다.

지난해 취임 2주년을 앞두고는 백인 기자들과의 형평성을 맞추겠다며 유색인종 기자에게만 1대 1 인터뷰 기회를 주겠다고 밝혀 ‘역차별’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그녀가 시카고를 성역도시로 선언한 것도 불법 이민자에 대한 포용성 정책의 일환이다.

다만, AP통신에 따르면 라이트풋 시장이 이번에 불법 이민자 이송 중단을 요청하게 된 것은 급증한 이민자 지원으로 인해 시 예산이 5300만 달러(약 700억원) 적자 상태에 놓이는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