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팩터’로 본 러·우 전쟁㊤] 평화주의의 역설…독일 국방력 약화가 우크라 전쟁 불렀다

청샤오눙(程曉農)
2022년 03월 15일 오후 3:15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1

“전쟁 반대” 외치며 평화주의 광풍 속으로
스스로 국방력 약화해 전쟁 억지력 떨어져
좌파 이념이 부른 재앙…사실상 국방 포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국제사회의 시선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집중되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바로 이번 전쟁의 세 번째 핵심 관련국인 독일의 역할이다.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5일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협상을 조율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이어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베를린으로 이동해 독일 총리를 만났다. 이스라엘 총리는 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아닌 독일 총리를 찾았을까? 독일이 왜 이처럼 중요할까?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으로 인해 EU 회원국들의 안보가 위협받을 때 유럽연합(EU)의 리더인 독일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잘 알고 있는 각국 정부는 독일의 친러 행보가 전쟁이 발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점과 전쟁을 종결하는 데도 독일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협상이 벌어지면서 독일의 영향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필자는 국제 언론이 간과한 독일의 역할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상편(上篇)에서는 독일의 평화주의 전략이 독일과 EU의 국방을 무너뜨린 데 대해, 중편에서는 독일의 ‘그린에너지’ 정책이 독일 경제와 우크라이나의 독립 및 안보에 끼친 악영향에 대해, 하편에서는 독일의 글로벌리즘 주장이 EU 내부에 곤경을 조성한 데 대해 분석한다.

푸틴, 독일이 ‘그물’에 걸리기를 기다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EU와 나토(NATO)에 가입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침공 시점을 왜 올해로 정했을까?

사실 우크라이나는 2018년에 헌법을 개정해 나토 가입을 최우선 국가 전략으로 정했다. 1년 후 새 대통령이 된 젤렌스키도 이 전략을 견지했다. 그러나 푸틴은 곧바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가 2022년 마침내 행동을 개시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물고기’가 ‘미끼’를 물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물고기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독일이다. 독일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침공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EU의 리더이자 EU 회원국 중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력이 가장 강한 나라로, EU가 경제가 어려운 회원국에 주는 보조금은 대부분 독일이 대왔다. EU 가입 여부는 사실상 독일의 태도에 달려 있다. 우크라이나도 예외일 수 없다. 이는 러·우 전쟁 발발 초기에 입증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침공이 시작한 다음 날인 2월 25일 새벽 키이우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제공하고 회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나는 우리의 모든 파트너에게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고 우리 나라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말했다. … 그들에게 ‘우리와 함께할 것이냐’고 묻자 그들은 ‘그렇다’고 답했지만 ‘동맹 회원이 되도록 할 준비는 되지 않았다’고 했다. … 오늘 27명의 EU 정상들에게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인지 물었지만 그들은 두려워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푸틴이 기다리던 결과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위해, EU가 우크라이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이 있기를 기다렸는데, 그것을 젤렌스키 대통령이 확인해 준 것이다. 이러한 EU의 입장은 독일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의 키’를 쥔 독일

구소련이 붕괴된 후 우크라이나는 199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러시아·미국·영국 등과 서명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핵무기를 포기하는 데 동의했고, 그 대가로 서명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안보,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켰지만 UN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국제기구들은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고, 서방의 주요 강대국들도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저지하지 못했다.

이는 분명 러시아의 야심을 부추겼다. 지난 1월 31일 프랑스 라디오 방송 RFI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러시아 제국’ 부활을 꿈꾸며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세력권에 넣으려고 했다.

이렇듯 러시아가 무력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의 국가안보를 위협한 것이 우크라이나가 EU와 NATO에 가입하려는 근본적 이유다.

우크라이나가 헌법을 고쳐 EU와 NATO 가입을 최우선 국가전략으로 정했을 즈음, 독일의 국가전략은 점점 더 친러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당시 푸틴은 자신의 ‘그물 속에 들어온 물고기(독일)’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물고기를 통해 더 큰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독일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반대하게 해 우크라이나를 무릎 꿇리려는 전략이었다.

푸틴의 이번 전략은, 침공 사흘째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막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이 발발했을 때 EU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한 진짜 이유다.

EU, 러시아의 우크라 침략에 미온적으로 대응

EU 국가들이 러시아의 거센 침략 위협에 대응하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전략은 EU가 러시아가 침략하기 전에 우크라이나를 EU와 NATO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상책(上策)이다. 만약 EU가 이 동맹 전략으로 위험을 함께 감수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러시아의 침략 야망은 꺾였을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러시아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책으로, 러시아 경제의 버팀목인 에너지 수출을 끊어 경제를 고사시킴으로써 스스로 침공을 중단하게 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 번째 전략은 상징적으로 솜방망이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이는 하책으로, 단지 여론을 속이기 위한 쇼일 뿐이다.

불행히도 상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독일이 러시아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EU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았고, 향후의 가입 가능성도 열어두지 않았다.

러시아 침공 전인 2월 19일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8년 전부터 EU·NATO에 가입하는 길을 선택했다며 “나토와 EU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가입 시간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나토 내 회원국(이는 주로 독일을 가리킴)이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원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은 못 들은 척했다.

중책으로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따른 결제 통로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즉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를 즉시 퇴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이 경제 제재를 막았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EU 회원국들은 독일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국가 안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중책도 실행할 수 없게 됐다.

결국 EU에는 하책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한 미온적인 대응으로는 러시아의 침공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독일은 푸틴이 쳐놓은 ‘그물’에 어떻게 걸려들었을까? 이 문제를 설명하자면 독일의 ‘좌파재앙(左禍)’부터 말해야 한다.

독일은 마르크스주의 ‘좌파 재앙’의 발원지

독일은 마르크스의 고향이자 신구 마르크스주의의 발원지이다. 독일 국민 중 다수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진실하게 구현한 제도가 소련 모델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치 통치가 본질적으로 전체주의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마르크스는 부정해서는 안 되고, 신마르크스주의(문화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올바름’은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좌파 이데올로기가 지식인들을 통해 미국에 전해져 미국의 사상계와 문화계를 깊이 물들였고, 결국 미국에서도 ‘좌파 재앙’을 낳았다.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1960년대에 독일에서는 마오(毛)주의 테러리스트 집단인 ‘적군파(RAF)’가 출현했다. 그들은 폭탄 테러, 요인 암살, 독일 내 미군기지 폭파 등 각종 범행을 저지르며 한동안 독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적군파의 일부 주요 간부들은 검거를 피해 동독으로 도망가 공산당 정권의 보호를 받았다.

이들은 동서독이 통일된 뒤 서독으로 돌아가 극좌파 정당인 녹색당을 세웠다. 초기의 녹색당 중진 중 상당수는 적군파의 지지자 또는 하수인이었다. 지금의 독일 녹색당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이미 연방 의회에 진출했고, 현재 사회민주당(SPD), 자유민주당(FDP)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해 집권 여당이 됐다.

독일의 ‘좌파 재앙’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69년 소련에 ‘신동방정책’을 제안한 이후 거의 모든 독일 정부가 ‘붉은 제국(소련)’ 과 그 속국에 온건 정책을 펴왔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이 당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됐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마르크스에 호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적 주장을 일부 계승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공산당 정권과 친화감이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독일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영향력을 행사했고, 독일 지식계와 문화계는 마르크스주의에 치우친 좌경향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메르켈은 16년간 장기 집권을 했다. 그는 겉으로는 좌익이 아닌 기독교민주정치연합(CDU-CSU)을 대표하지만, 독일 사회민주당의 친러 정책을 다수 계승했다. 공산당 통치하의 동독에서 태어난 그는 동독에서의 삶이 행복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또한 동독의 비밀경찰 시스템만 비판했을 뿐 동독의 마르크스주의나 공산당 제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비판한 적이 없다. 그 역시 붉은 유전자를 가진 인물이고, 또 군비 증액을 반대해 온 평화주의 추진자다.

‘평화주의’ 내세운 독일, 장기간 군비 축소

독일 사회와 독일 정계에는 오랫동안 일종의 유토피아적 평화주의 이념이 팽배했다. 이른바 비전주의(非戰主義)로 불리는 평화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은 서방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신마르크스주의다.

평화주의는 겉으로는 모든 전쟁을 반대하고 국가 간의 충돌을 평화와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 그들은 순진하게도 전쟁의 성격을 구별하지 않고, 자기 나라를 지키는 전쟁도 반대하며, 평화 협상을 통해 국가 간의 충돌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에 다시 일어난 평화주의 사조는 구미 사회에서 일어난 베트남전 반전 운동과 관련이 있다. 이 반전 운동은 구미의 마오주의 추종자들이 추진했다. 그들은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마오쩌둥이 베트남전을 도발하고 지원한 사실은 감췄다. 결국 평화주의는 고대 철학 속의 평화주의 사상을 빌려 붉은 가치관을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바로 이런 좌파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독일은 오랫동안 필요한 군비를 유지하려 하지 않았다. 나토는 처음부터 모든 회원국에 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독일은 이 요구에 부응하지 않았다. 나토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15년 미국은 GDP의 3.61%를 국방비로 지출한 반면, 독일은 GDP의 1%인 400억 달러를 지출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력으로 2021년에야 겨우 1.5%로 늘렸다.

유럽 방위에 있어서 독일의 실질적인 국방 전략은 미국의 국방비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다른 EU 소국들의 국가 안보는 물론 자국의 국가 안보도 고려하지 않았다. 평화주의가 팽배한 독일은 미국에 군사비 부담을 더 지우고 아낀 돈으로 복지를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독일의 이런 행태를 비판하자 메르켈 당시 총리는 오히려 불만을 터뜨렸다. EU의 리더인 독일이 이런 모습을 보이니 다른 부유한 EU 국가들도 그대로 따라 했다. 결국 EU는 미군이 없으면 거의 무방비 지역이 됐다.

독일 국영방송 도치체벨레(DW)에 따르면 독일은 2011년 의무병역제를 폐지해 지금은 현역 군인이 18만 명이다. 그나마 6만 명은 행정·병참·훈련을 담당하는 병력이고, 실제 전투병은 12만 명에 불과하다.

국방예산 삭감이 장기화되면서 2014년부터 독일에서는 군 장비와 부품, 탄약 부족 사태가 빚어졌다. 따라서 이 12만 병력마저 EU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독일의 위험한 도박, ‘국방 포기 + 친러’ 전략 

한스 피터 바텔스(Hans-Peter Bartels) 연방하원 소속 연방군 특임관의 지난 1월 말 연례보고에 따르면, 독일군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장비가 부족하고, 레오파르트 2 전차는 일부만 사용할 수 있고, 날 수 있는 헬기는 절반도 안 된다. 독일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우크라이나에 무기 일부를 지원하기로 최종 합의했지만 내놓을 무기들은 낡고 망가져 쓸 수 없었다.

독일의소리(Vois)는 25일 ‘독일 연방군이 나라를 지킬 능력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독일군의 현황을 소개했다.이 신문에 따르면 독일 연방군 육군참모총장 알폰스 메이즈는 유럽이 전쟁 위협에 직면하자 “연방군과 내 지휘 아래 있는 육군은 거의 빈손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연합(나토)에 지원할 수 있는 옵션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은 수년간 군비 지출을 줄인 정부의 정책 탓이라고 밝혔다.

독일 출신의 나토군 퇴역 장군인 에곤 람스(Egon Ramms)는 독일 공영 ZDF방송의 뉴스 프로그램 ‘호이테(Heute)’와의 인터뷰에서 2010년 이후 연방군이 군 편제를 축소하고 비용을 삭감하고 연방군의 탄약, 장비·부품 등의 비축량을 줄여 군의 응전 능력에 심각한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몇 년간 비축량을 늘리고 있지만 군의 임무수행에 필요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방군이 이 나라를 지킬 능력이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간단하게 말하면 ‘없다’고 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EU는 필요한 군사 장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러시아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미국이 출병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사실 EU의 리더인 독일이 반전에 앞장서고 다른 EU 회원국이 잠자코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출병한다면 정치적으로 EU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푸틴은 바로 EU의 이런 약점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독일의 평화주의 전략은 푸틴에게는 사실상 침략 허가서나 다름없다.

독일은 국방력이 없는 상태에서 오랜 기간 친러 전략을 고수했으며, 이를 통해 충돌을 피하려 했다. 독일은 심지어 이를 위해 독일 에너지 공급망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쪽으로 바꾸었다. 이는 푸틴에게 독일 경제의 생사여탈권을 쥐어 준 것과 같은 어리석은 전략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 글의 중편에서 다루고자 한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