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상대 소송 승소에도 배상금 못 준다는 경문협 “저작권료는 저작자들 몫”

이연재
2022년 09월 15일 오후 1:31 업데이트: 2022년 09월 15일 오후 3:15

강제 납북자, 국군 포로 유가족 등이 북한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했지만 배상금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북한을 대신해 돈을 줘야 할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이 법원의 추심 명령에 잇따라 불복했기 때문이다. 경문협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상대로 우리 국민이 승소한 사건은 총 4건이다. 원고는 연평해전 참전 용사 및 유가족(8월 23일, 이하 승소일) 강제 납북자 가족(5월 20일, 지난해 3월 25일), 6·25 당시 국군포로 유가족(2020년 7월 7일) 등이다.

재판부는 모두 서울중앙지법이었으며 피고인 북한 당국이 2주 내 항고하지 않아 판결은 모두 1심에서 최종 확정됐다.  4건의 소송에서 나온 배상금 총액은 총 8억 5452만 원이다. 이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은 연평해전 관련 소송을 제외한 나머지 3건에 대해 경문협에 채권압류 및 추심 명령을 내렸다.

경문협이 법원에 공탁한 북한 저작권료가 사실상 유일한 남한 내 북한 자산이기 때문에 이를 압류해 배상금으로 줘야 한다는 취지다.

북한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한국에 있는 북한 자산을 압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국 내 북한 자산으로는 북한 저작물을 사용한 한국 언론사들로부터 저작권료를 걷어 관리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의 보관금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보관금을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로 송금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문협은 2022년 기준 북한 저작권료 23억 4500만 원을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문협은 2004년부터 북한 관영매체들의 저작권료를 대신 받아 북한으로 보내왔지만 2008년 박왕자 씨 금강산 피살 사건 이후 남북 금융 거래가 중단되면서 매해 쌓인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하고 있다.

지난 2020년 7월 한국 법원은 6.25 전쟁 국군포로 2명이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북한과 김정은은 총 42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경문협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제 납북자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경문협을 제3채무자로 간주하고 227, 097260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했지만 경문협의 항고로 기각됐다.

경문협은 해당 보관료가 북한 당국이 아닌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소유라는 입장이다. 북한 정부 재산과 언론사 재산은 별개라는 것이다.

태 의원은 연평해전 참전용사 및 유족들이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도 지난 사건과 비슷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경문협은?

경문협의 연혁에 따르면 이 단체는 2002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임 씨가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기구 ‘민족화해협의회’와 외곽 단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2021년에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개칭)에 이른바 ‘남북 경제문화 교류’를 제안한 데서 출발했다.

경문협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북한 저작권료’를 추심해왔다. 경문협은 2005년 북한 내각 산하 ‘저작권 사무국’이란 곳과 남북 저작권 교류에 관한 포괄적 합의서를 체결했다.

2006년 5월엔 북한의 조선방송위원회, 조선영화수출입사로부터 영상 저작물에 대한 대리권을 맡았다. 2007년 9월엔 월북(越北) 무용가 최승희(崔承喜)의 사진과 동영상 사용에 대한 업무를 맡았다.

2008년 12월엔 이기영(李箕永), 백석(白石) 등 월북 작가 후손으로부터 저작권 보호와 관리 업무를 수탁했다. 2009년 3월엔 북한의 ‘조선사진가동맹 중앙위원회’로부터 북한의 모든 사진에 대한 저작권 업무를 맡았다.

경문협은 소위 ‘남북 저작권 교류 사업’이란 명목 아래 북한 단체들과 맺은 협약에 따라 북한 저작물 사용료를 국내 업체에서 거둬들여 북한에 송금하는 일을 해왔다.

경문협은 ‘저작권료’ 명목으로 수취한 자금 중 7억 9000만 원을 북한에 송금(2005~2008년)했다. 2008년 당시 북한의 금강산 관광객 사살 도발 이후 대북 송금이 금지되자, 지금까지 23억 4500만 원(2009년~ )을 법원에 공탁했다.

법원 공탁금은 청구권자가 돈을 가져갈 수 있는 날로부터 10년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국고로 귀속된다. 정상적인 절차대로 진행됐다면, 경문협이 법원에 공탁한 자금은 환수돼야 한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6월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2008년 이후 올해까지 경문협이 공탁자 및 피공탁자로 된 공탁 사건 내역 일체’ 자료에 따르면, 경문협은 2019년 5월 공탁한 지 10년 된 북한 저작권료 2200여 만원을 회수 후 재공탁했다.

2020년 5월에는 각각 2억여 원과 2억 7000여 만원을 회수하고 다시 공탁했다. 이렇게 경문협이 법원에서 돌려받았다가 다시 공탁한 금액만 5억 700만 원에 이른다.

태 의원이 통일부와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문협은 계속해서 지적되어왔던 ‘재공탁을 통한 국고 환수 회피 논란’에도 불구하고 올해 5월 17일에 공탁 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영호 의원은 경문협의 ‘회수 후 재공탁’에 대해 “이는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 저작권료”로 피해 유가족에게 배상하는 것이 옳다. 북한 저작권료를 국고로 귀속하는 것도 회피하고 북한에 의해 피해를 본 국민에 대해 배상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는 경문협이 김정은의 재산을 지켜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