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로 무너지는 공산주의 중국의 ‘반도체 굴기’

강우찬
2022년 08월 18일 오후 5:09 업데이트: 2022년 08월 18일 오후 6:29

반도체 굴기 핵심인사들 ‘기율위반’ 조사
“공산당 체제의 한계” 비판한 칼럼은 삭제

중국 공산당(중공) 정부가 거액을 베팅하며 추진한 반도체 진흥 사업이 투자금 고갈과 주요 인사들의 부패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중국 경재매체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반도체 산업 선봉장 칭화유니그룹의 자오웨이궈(趙偉國) 전 회장과 D램사업부 댜오스징(刁石京) 회장이 ‘기율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공 반도체 굴기(崛起·우뚝서다)의 핵심 기업 중 하나이지만, 지난해 파산신청을 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중공의 반도체 투자펀드 ‘중국반도체대기금’의 딩원우(丁文武) 총경리와 화신투자의 루쥔(路軍) 전 총재, 양정판(楊徵帆) 투자관리팀 부총경리 등도 조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

반도체대기금은 칭화유니그룹과 산하 자회사 주식을 매수하거나 인수하며 적극적으로 투자해왔고, 화신투자는 반도체대기금이 투자한 자산을 관리하는 유일한 자산운용사였다.

조사 대상자들의 명단을 보면 다들 한통속일 것이라는 추측이 사실로 굳어진다.

그러나 최근 중앙기율위원회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중국 반도체 등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공업정보화부 부장(장관급) 샤오야칭(肖亞慶)이다.

샤오야칭 부장이 어떤 이유로 조사를 받는지는 알려지지 않아 반도체 부패에 관련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샤오야칭은 중공 반도체 굴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었다. 그는 체포되기 전 자살을 시도했으나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맹목적 투자가 부른 반도체 산업 부패

반도체 산업은 첨단산업 중에서 가장 기술 집약적인 산업이다. 중공은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과 격차가 있음에도 선도국가가 되길 바라며 거액을 투자했다.

미 데이터 컨설팅업체인 IDC의 마리오 모랄레스 부사장은 지난 1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반도체 산업 기술력을 “최소 3~4세대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다.

중공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66조 원에 달하는 반도체 대기금을 조성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1~5월에만 약 1만5700개의 반도체 업체가 개업해 전년 동기 대비 3배 증가한 수치를 나타냈다.

그러나 유의미한 반도체 생산 증가는 이뤄지지 않았고 당국이 투자한 기업들은 파산하며 연쇄 부도를 일으켰다. 이들 기업은 그럴듯한 투자계획을 내세워 자금만 ‘먹튀’한 경우가 많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장쑤성에 위치한 중국의 ‘스타기업’이었던 화이안더화이(HIDM)다. 2016년 설립된 HIDM는 1년 이내에 생산공정과 양산 기반을 마련해 매출을 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내부자 고발에 의하면 이 회사는 2019년 상반기부터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42억 위안(약 8900억원)의 투자를 받으며 “12인치 웨이퍼를 연간 24만 장 생산하는 공장을 세웠다”고 주장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장의 웨이퍼도 생산하지 못했다.

중국 기술 매체 지웨이왕(集微網)에 따르면 투자금 중 1300억 원이 회사 최고 경영진 연봉으로 지급됐고 나머지 투자금 상당액도 홍보·접대비로 탕진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웨이왕은 청두거신, 난징더커마 등 반도체 대기금 투자를 받은 반도체 관련 기업들 최소 6곳이 모두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차이신은 7월 말 게재한 칼럼에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핵심이었던 반도체 대기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면서 ‘한신 사태’가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고 우려했다.

한신 사태는 2003년 중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도체 사기 사건을 가리킨다.

당시 상하이 교통대 천진(陳進) 교수는 선진국 수준의 0.18마이크론(㎛) 공정의 32비트 프로세서 커널을 채택한 반도체칩 ‘한신1호’ 설계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상하이 시정부는 이를 자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중국 전문가들은 ‘한신1호’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중국 반도체 개발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천 교수는 각종 훈장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으나 2006년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천 교수가 미국 통신업체 모토로라에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동료를 통해 입수한 모토로라 반도체의 로고를 지우고 ‘한신 1호’로 둔갑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차이신은 해당 칼럼에서 이 사건은 천 교수 개인의 일탈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며 현재 발생하고 있는 반도체 부패를 포함해 중국 공산당 시스템의 맹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칼럼은 곧 삭제됐지만 미국에 서버를 둔 중국어 매체에서 아직 읽어볼 수 있다(칼럼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