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도 될까? 中, 올림픽 참가 외국선수에 ‘심카드’ 선물

류정엽 객원기자
2022년 01월 14일 오전 11:37 업데이트: 2022년 06월 3일 오후 3:26

‘외국인 전용’….자유로운 인터넷 접속 가능
전문가들 “개인정보 통째로 뺏길 것” 우려
네덜란드·벨기에 “휴대전화 두고 가라” 권고

공산주의 중국(중공)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에 해외 선수들이 머무는 동안 외국인 전용 심(SIM)카드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 심카드를 휴대폰에 장착하면 중국에서 차단된 외국 사이트를 마음대로 접속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속임수’로 보고 있다.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을 미끼로 선수들을 엄중하게 감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중공은 올림픽을 개최하면서도 자유세계에서 온 각국 선수들이 중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해외에 전달하는, 살아있는 매체가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공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특정 사이트의 인터넷 접속을 규제하는 ‘만리장성 방화벽(防火長城·방화장성)을 세웠다. 해외의 자유를 못 보도록 눈과 귀를 가려, 공산당 체제에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공은 1997년부터 허가하지 않은 해외 인터넷 접속을 단속하기 시작해 이듬해 방화벽을 만들었고, 2003년경 본격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접속 차단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국 선수단이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각종 전자기기에 보관하고 있는 정보들도 중공의 ‘약탈’ 대상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올림픽위원회는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자국 대표 선수들에게 “개인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중국에 가져가지 말라”고 권고했다. 중공의 기밀 빼내기 시도를 예방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벨기에 주재 중국대사관은 “기밀 빼내기는 추호도 없다”고 즉각 반발했지만, 서방의 시선은 차갑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11일(현지시각) “중국이 (심카드 제공으로) 방화벽을 개방한 목적은 과거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것일 뿐 정말로 인터넷을 개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중공이 외국 선수단이라고 해서 온라인 검열·감시 고삐를 늦출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미국 싱크탱크 아틀란틱 카운슬의 켄턴 티바우트 연구원은 “국제 사회에서 인권 문제로 비판에 직면한 중공이 스스로를 미화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 빅터 차 부소장 역시 “그들(중공)은 올림픽의 자유정신에 입각해 언론과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엄격하게 감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설령 SNS에 접근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그 어떤 선수들도 홍콩이나 대만에 대해 트윗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중공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협력해 이러한 선수들을 억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공의 검열에 대한 우려가 치솟는 가운데 IOC는 ‘개최국’ 옹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IOC는 “(중공이) 현지법을 위반하지 않고 온라인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밝혔다”면서 중공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온라인 게시물과 관련해 법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연한 법 적용’은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작년 10월 미국프로농구(NBA) 보스턴 셀틱스의 스타선수인 에네스 칸터가 자신의 SNS에 “프리 티벳”(Free Tibet·티벳에 자유를), “시진핑은 잔혹한 독재자”라는 글을 올리자, NBA의 중국 독점중계권자인 텐센트는 이에 반발해 셀틱스의 경기를 보이콧했다.

텐센트는 셀틱스 경기를 중계하지 않았고 따로 편집해 내보내는 하이라이트 코너에서도 셀틱스의 경기 장면을 삭제했다.

중공 외교부까지 나서서 칸터 선수를 비난했다. 왕원빈 중공 외교부 대변인은 “관심받기 위한 행동”이라며 “논평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보스턴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경기도 중계되지 않고 있다. 현재 세븐티식서스 단장으로 있는 대릴 모리가 2년 전 휴스턴 로켓츠 단장으로 있을 때 트위터에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중국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중공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한 철저한 불매운동·상업적 보복조치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이번 올림픽 참가 외국 선수들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보안 전문가들은 선수들에게 “개인용 전화가 아닌 베이징 전용 전화를 마련해 사용하고 통신을 하라”고 조언하고 인터넷 서핑에 주의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인터넷 서핑을 하려면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추적을 따돌리는 가상사설망(VPN)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했다.

중공이 제공한다는 심카드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말라”고도 했다. 특히 이 심카드를 착용한 채 SNS 계정 등에 로그인하거나, 메신저 등을 통해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중공 당국의 감시망에 걸려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각종 보안대책에도 불구하고, 일단 중국에 들어가면, 인터넷 사용 자체를 삼가야 될지도 모른다.

중공은 지난해 11월 인터넷 검열·통제를 한층 더 강화한 ‘네트워크 데이터 안보관리 규정’을 발표했다. 이 규정에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데이터 안보 관문을 우회하거나 관통하기 위한 인터넷 접속, 서버 구축, 기술 지원, 홍보, 앱 다운로드 및 결제를 포함한 프로그램·장비·경로·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화벽을 피해 해외 사이트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VPN을 단속하기 위한 규정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공이 허락한 것만 보고 듣고 말하라는 강압적 조치다.

뉴욕타임스는 작년 12월 익명을 요구한 운동선수가 “중국 정부의 보복이 있을까 봐 중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모든 선수가 중공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USA투데이는 지난 9일 “중국의 인권 유린은 끔찍하다”는 미국 페어 스케이팅 선수인 티모시 레덕의 발언을 전했다. 중공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을 가리킨 발언이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은 중공의 인권탄압에 대한 항의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올림픽 참가를 위해 4년간 땀 흘린 선수단은 파견하지만, 정부를 대표하는 사절단은 보내지 않기로 했다.

사절단은 경기와 무관하다. 올림픽 개최국에 사절단을 보낸다는 것은 해당 국가에 대한 우호와 친선의 의미가 담겨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사절단 파견은 세계적으로 지탄받는 중공의 인권탄압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는 메시지로 풀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