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공자학원과 모든 계약 밝히도록 한 트럼프 정책 철회

한동훈
2021년 02월 11일 오후 5:45 업데이트: 2024년 01월 27일 오후 9:04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대학에 공자학원과 협력 사실을 밝히도록 한 트럼프 정부 조치를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8일 공자학원과의 모든 계약 내용을 공개하도록 한 트럼프 정부 조치가 지난달 26일 취소됐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사흘간 19건의 행정명령을 포함 30여 개의 지침을 쏟아내며 트럼프 행정부 지우기에 나섰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공자학원 관련 지침 철회는 의외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허드슨 연구소의 세스 크롭시(Seth Cropsey)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정부가 중국을 달래려 한다”고 분석했다.

바이든은 중국 공산당(중공)을 “가장 심각한 경쟁자”라고 규정했지만, 실제 행보는 발언과는 거리가 멀다.

공화당 마이클 매콜 하원의원과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도 비슷한 우려를 나타냈다.

루비오 의원은 트윗에서 “연방수사국(FBI)은 중공이 공자학원을 이용해 미국 학교에 침투했다고 경고했다”며 “하지만 지금 바이든이 트럼프 정부가 내놓은 규칙을 슬쩍 취소했다. 이 규칙은 학교와 대학에 중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대리인과의 협력 관계를 밝히도록 요구했던 것”이라고 썼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5일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정책을 “전략적 인내를 갖고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바이든 행정부 내각은 지난 8일까지, 장관급 이상 인사 26명 가운데 아직 16명이 상원 인준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각 부처에서는 아직 분야별 정책을 평가 중인 단계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공자학원 문제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치를 내렸다는 지적도 있다.

팀 내부의 개인 혹은 여러 명이 미국 대학 및 각급 학교와 공자학원 사이의 협력관계가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기에 트럼프 탄핵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 된 사이 이 사안을 슬쩍 처리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팀에 공자학원 들통나면 안 될 사람 있나

중공의 지원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전 세계 유력인사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대가 요구 없이 호의와 친선을 베풀지만, 조금씩 받아들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특별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례를 들 것도 없이 공자학원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대학, 학교 등 교육기관을 향해 공자학원 측은 중국어 교육, 중국 문화 활동, 교육비 지원 등을 제안한다.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화, 학술교류라는 측면에서 학교 측으로는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공자학원은 독립적인 운영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고, 이후 강사 등 인원 고용, 교육을 빙자한 선전 내용 등에 대한 간섭을 차단한다.

공자학원은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지만, 학교 측에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결정할 권한이 없다. 중공은 자유세계에서 마음먹은 대로 활동하지만 외국 언론인, 외교관, 기업인 등은 중국에서 온갖 제약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공자학원 측은 이후 협력 학교 측 이름을 빌려 마음껏 대외선전을 한다. 미국 유명 교육기관의 이름을 내걸고 공자학원을 선전하는 식이다. 여기에 공자학원 운영진, 강사 등 중공이 파견·고용한 인물들은 공자학원 소속이라는 안정된 신분으로 스파이 활동을 벌인다.

공자학원은 학교 측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중공이 금기시하는 주제를 다루지 못하도록 종용한다. 이에 굴복한 학교 측은 자가 검열을 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중공의 주장에 나서서 맞장구를 치는 신세로 전락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대학, 교육기관에 공자학원과 협력할 경우 계약사항과 자금 지원을 투명하게 밝히도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뒷돈 거래는 어느 사회에나 있는 부정적 요소이지만, 중공의 그것은 매우 과도하다.

중공과의 관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자금 거래 외에 종종 은밀한 자금거래가 뒤따른다. 공자학원 침투의 문제점은 그 국가의 학술계가 차이나머니로 오염되기에 심각하다.

자유로운 학문 추구를 위해 국가와 지역사회가 보장한 상아탑의 권위와 자유를 공자학원을 타고 들어온 돈맛에 내던지는 비참한 처지에 빠진다.

바이든 내각의 2인방. 토마스 린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왼쪽)와 존 케리 기후특사 | AFP=뉴스1

바이든이 지명한 린다 토마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대사가 새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인 그녀는 2019년 10월 25일 사바나 주립대 공자학원 개원 5주년 기념 강연에서 ‘미·중·아프리카 관계’에 관해 말하며 아프리카에서의 중공의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시 그녀는 “중국이 이런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중국의 깊은 발자취를 생각할 때 중국은 이런 이상(理想)을 전파하는 데 있어 독특한 지위에 있다”고 말했다. 공자학원이 퍼뜨리는 공산주의 이념을 중국의 가치관과 이상으로 포장했다.

공자학원에는 공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공자학원 교재에서는 공자에 대해 “고대 중국 노동자들은 공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는 부지런하지 않았다”고 가르친다. 부를 탐했으며 벼슬하기를 좋아한 속물이라는 평가도 써놨다.

즉 공자학원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공자’의 이름만 가져다 놓고 실제로는 중공의 공산주의 이념과 가치관을 ‘중국어 교육’이라는 매개체에 실어 각국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데 그친다.

미국의 유력한 외교 전문가가 공자학원에 대해 이런 평가를 한 것은 미국 보수층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녀는 또한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아프리카를 채무의 덫 외교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중공의 제안이라고 치켜세웠다.

이후 이 강연은 논란이 됐고,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그녀는 “엄청난 잘못”이었다고 시인했고 공자학원에 대해 잘 몰랐다며 “중국은 우리의 안전과 생활방식을 위협하는 전략적 상대”, “그들은 전 세계의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린필드 대사가 공자학원과 어떤 협력관계에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미국이 공자학원 퇴출을 지속하고 각 대학과 교육기관에 공자학원과의 관련성을 투명하게 밝히도록 요구하고 관련 사실을 추적한다면, 그래서 미국 정부 고위층의 누군가가 공자학원을 비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는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26일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로 인해 공자학원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은 다시 가려질 상황에 처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정체를 감추더라도, 이후 중공에 의해 오히려 더 큰 협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협박은 대개 그런 식으로 이뤄진다. 가담 사실을 밝히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공범의 이탈을 막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한다.

바이든이 ‘가장 심각한 경쟁자’로 규정한 중공에 대해 실제 행동으로 맞서려 할 때,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아 해결에 나서려 할 때, 팀 내부에서 복병을 만날 수 있다.

* 업데이트 : 바이든 내각에 대한 정치 평론가들 반응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