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이가 그려낸 ‘처음’의 설렘과 소중함

류시화
2023년 03월 28일 오전 10:19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7

영국은 1837년에서 1901년까지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인들은 교회를 가는 것이 의무처럼 여겨졌고,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방문해 설교를 듣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는 그의 자녀와 가족을 데리고 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나의 첫 번째 설교’

밀레이의 작품 ‘나의 첫 번째 설교’는 1863년에 그가 5살이 된 딸 ‘에피’를 처음으로 교회 예배에 데리고 갔을 때 포착한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 속 에피는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발판에 발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손을 따뜻하게 하는 방한구인 머프(muff)에 양손을 넣은 채 허리를 똑바로 펴고 의자에 바르게 앉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예배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입은 빨간 망토와 방한용 스타킹은 짙은 녹색의 벤치와 대비되어 더욱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되게 합니다.

그림을 본 캔터베리 교구의 대주교 찰스 롱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은 높고 고귀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우리는 화폭에 충실하게 묘사된 이웃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고 마음의 태도를 바르게 가질 때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고 행복함을 느낀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영혼은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에 감동하게 되고 예술에서 오는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감동하였고, 작가 밀레이와 모델 에피 또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의 두 번째 설교’

시간이 흘러 1년 후, 밀레이는 ‘나의 두 번째 설교’라는 제목의 후속 작품을 그렸습니다. 교회 예배에 참석한 딸의 모습을 또다시 그려낸 이 작품은 첫 번째 작품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의 신기함과 설렘이 사라진 에피는 이전과는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발은 발판 옆에 늘어져 있고, 벽에 기대어 달콤한 낮잠을 즐기며 모자 또한 벗어 옆에 두었습니다.

에피는 지루하고 긴 설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낮잠을 택했습니다. 두 번째 작품을 본 캔터베리 대주교는 “긴 설교와 나른한 담론의 해악”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즉, 설교는 짧고 요점만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는 더 짧고 명쾌해야 한다는 겁니다.

밀레이가 그림의 소재로 가장 좋아한 것은 그의 가족과 아이들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매일 관찰하고 익숙한 대상이기에 더 편안하게 그들을 화폭에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그릴 때, 그는 더욱 온 정성과 힘을 쏟아 그림을 완성해냈습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이의 얼굴에서 그는 아름다운 영혼을 감지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의 달콤한 얼굴과 순수함에서 배울 점을 포착해 그림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첫 번째 설교’에서 긴장과 설렘이 가득한 에피의 표정과 자세에서 우리는 순수함에 깊은 감동을 얻게 되고, 나아가 스스로가 삶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