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턱밑’ 쿠바, 중국 일대일로 협약서에 서명

하석원
2021년 12월 29일 오전 10:40 업데이트: 2021년 12월 29일 오후 12:00

쿠바가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블록 구상인 ‘일대일로'(One Belt and One Road)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했다.

최근 쿠바 주재 중국대사관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허리펑 중국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주임과 리카르도 카브리사스 부총리가 지난 26일 일대일로 협약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측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일대일로 이행 일정을 담은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 2018년 쿠바의 일대일로 참여를 약속한 양국 간 양해각서(MOU) 합의사항을 이행한 것이다.

쿠바 현지 언론들은 양국이 이번 협약에 따라 통신, 교육, 보건 및 생명공학, 과학기술, 관광 등 여러 핵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대일로는 지난 2013년 중국이 제안한 육상, 해상 무역 네트워크 구상이다. 육상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해상은 바닷길을 통해 동남아시아와 인도, 아프리카, 중동까지 아우른다.

중국은 이를 위해 항만시설, 철도, 교량, 도로, 전력망 등 인프라 건설을 위한 차관과 기술을 일대일로 참여국에 제공해왔다.

그러나 일대일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 프로젝트가 개도국에 막대한 부채를 지게 만드는 ‘함정’이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미국 명문 주립대학인 ‘윌리엄 앤드 케리 칼리지’의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일대일로를 공식화한 2013년 이전부터 시작한 해외지원사업(2000~2017) 총 1만3427건을 분석해, 은폐된 참여국의 부채가 3850억달러(약 457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일대일로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중·저소득 국가들은 주권 일부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스리랑카는 함반토타(Hambantota) 항만 개발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차입한 11억2천만달러를 갚을 수 없어 2017년 부채를 청산하는 조건으로 이 항구 사용권을 99년간 중국 국영기업 자오상쥐(招商局)에 넘겨줬다.

함반토타 항구 통제권을 수중에 넣음으로써 중국은 인도양에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총칼 대신 경제력을 내세운 침탈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중국 정권은 군사적·경제적 요충지뿐만 아니라 천연자원 통제권까지 노리고 있다. 가나, 잠비아 등 주로 천연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된 타겟이다.

쿠바 역시 이러한 목표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6일 자국의 한 연구원을 인용해 “중국과 쿠바는 경제적 상호보완성이 강해 일대일로 협약의 시너지가 클 것”이라며 “쿠바는 광물과 석유 자원이 풍부하고 중국의 주요 니켈 광석 공급처”라고 말했다.

중국은 쿠바의 에너지 산업에 깊게 관여해왔다. 중국 기업들은 쿠바의 풍력 발전소에 풍력 터빈을 공급하고, 치로 레돈도에 세워지고 있는 쿠바 최초의 바이오매스 화력발전소 건설을 감독해왔다

미국의 안보연구기관인 미국안보프로젝트(American Security Project)는 지난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중국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쿠바의 에너지 의존도를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쿠바에서 반정부 시위대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은 쿠바 군경에 대테러 훈련을 실시한 적도 있다.

미국의 군사 관계자들은 중국의 야심이 쿠바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크레이그 팰러 전 미군 남부사령관은 지난 3월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은) 더 먼 거리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가까운 곳에 인프라를 구축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팰러 전 사령관은 중국이 야욕을 이루기 위해 여러 나라에 전방위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불건전하고 부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사례로 항만 사용권 취득, 경제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결정에 따른 레버리지 대출, 주권을 훼손하는 백신 외교, 정보통신 기술을 악용한 감시, 불법 어획을 포함한 자원 약탈 등을 들었다.

미 의회는 팰러 전 사령관의 청문회 증언 후 한 달 만에 국무부 등 다수의 정부 부처에 관련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보고서는 중남미와 카리브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평가하고 중국과 쿠바, 중국과 베네수엘라 관계에 대해서도 검토하도록 했다.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스테파니 머피 의원은 “중국이 이 지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중국의 공격적인 행동에 맞서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프랭크 팡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