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산당과 연대 모색하는 중국 공산당

트레버 라우든
2018년 08월 4일 오후 7:28 업데이트: 2019년 10월 25일 오후 7:32

대대적인 홍보나 주류 언론의 보도도 없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두 공산당이 지난 50여 년간 얼어붙었던 관계 재건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의 초청으로 미국 공산당(CPUSA) 대표단이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존 바흐텔 미국 공산당 대표와 뉴욕시 소속 공무원 캐롤 위덤은 미 공산당을 대표해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대회에 참석했다.

바흐텔 대표는 “우리 미국 공산당은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포럼을 위해  70여 개의 공산당, 사회당, 좌파당 및 혁명당과 함께 이곳 에코 계획 도시 선전에 초청됐다. 이어 베이징, 허페이, 펑양현과 중국 농촌 경제 개혁의 시발지로 여겨지는 샤오강 마을 등을 일주일간 돌아봤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행사는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중국은 질적 전환점에 도달했으며, 세계무대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중국 공산당의 감회가 반영됐다. 이번 만남은 중국과 중국 공산당이 세계를 향한 창을 더욱 활짝 열고, 공산당 및 노동자당들과의 관계를 확충,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이번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는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공산당의 국내 행보에 보다 혁명적인 변화를 주문하면서 역사 깊은 혁명의 끈으로 국제적인 연결을 재시도하기에 이르렀다.

모스크바에의 충성

지난 반세기에 걸쳐 세계 최대 공산당인 중국 공산당과 서구의 핵심 공산당인 미국 공산당은 접촉이 거의 없었다.

1960년대 초 중국과 소련이 갈등 관계에 놓인 이후, 미 공산당은 소련을 지지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중국뿐만 아니라 친중 공산당원들에게까지 공공연히 적대적 태도를 보였다. 미국에서 친소 공산당원과 친중 공산당원은 정치적 라이벌 관계 이상이었다.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양측이 모스크바와 베이징에 있는 각각의 주인을 위해 서로에 대한 첩보전도 서슴지 않았다.

옛 동독 정보부 기록물에 따르면, 1963년 1월 미국 공산당 지도자 헨리 윈스턴은 소련과 협력관계에 있던 동독 공산당 지도부와 만났다. 그 자리에서 윈스턴은 미국 내 친 중국 공산당 조직인 ‘진보 노동당’의 당원 명단을 동독에 넘겼다. 해당 명단은 1930년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을 떠난 화학공학 엔지니어였던 미국 공산당원 밀 스탠드가 작성한 것이었고, 소위 ‘베이징 앵무새들’의 명단이 당시 소련 정부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모택동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 추종자들에 의해 대의에 반하는 반역자로 여겨졌고 그렇게 취급됐다. 1980년대까지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적대감은 수그러지지 않았고, 소련이 붕괴한 1991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그 이후 중국 공산당과 미국 공산당의 관계는 10년이 넘도록 서먹하기만 했다.

한편 밀 스탠드는 아들 커트 스탠드를 동독 정보부에 소개하게 됐다. 미 공산당의 청년 당원이었던 커트는 동독의 대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친구 짐 클락과 후에 아내가 된 테레사 스퀼라코트 두 사람을 설득해 자신이 속한 정보부로 영입했다. 스퀼라코트는 펜타곤에 일하면서 많은 중요한 정보를 동독 측 접선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세 사람은 결국 체포되어 1997년 장기 투옥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 석방된 커트는 또다시 액티비스트로 돌아갔고, 현재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의 정치 행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SA,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워싱턴 지부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6월 1일 워싱턴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커스텐 닐슨 미 국토안보부 장관을 공격한 혐의로, 소위 ‘메트로 디시 디에스에이(Metro DC DSA)’이라고 불리는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 구성원들에 대한 보도가 최근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다.

고난의 시기

동유럽 공산주의의 퇴조 이후, 한때 세력을 자랑했던 미국 공산당은 대규모 탈당과 정치적 영향력 약화라는 고난의 시기를 겪게 됐다. 전성기에 10만 명을 웃돌던 당원 수는 약 2000명까지 줄어들었다. 미 공산당은 쿠바, 영국, 이라크, 베트남의 공산당 그리고 여전히 강한 러시아 연방 공산당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강력한 국제적 후원자가 없었다.

미국 공산당은 자금도 부족했다. 소련 반체제 인사 블라디미르 부콥스키는 1981년에서 1991년 사이 소련 공산당이 미국 공산당에 비밀리에 지원한 지원금이 무려 2100만 달러(한화 약 235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1987년만 놓고 보더라도 지원금이 약 300만 달러(한화 약 33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는 도저히 당을 운영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미국 공산당은 당내 유급 직원 수를 대폭 줄이고 주 5일 발간되던 일간지 피플스 월드(People’s World)를 주간지로 바꾸었다.  2009년에 이르러서는 긴 역사를 자랑하던 이 인쇄 매체가 온라인 서비스만 제공하게 됐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미국 공산당으로서는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최근 들어 자금 사정이 개선됐다. 약 5000여 명의 당원이 충원됐고, 4만 7000여 명의 멤버를 자랑하는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외화 지원금 부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해빙기

미국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의 관계는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2006년 말에는 미국 공산당 고위 그룹이 중국과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했다.

샘 웹 당시 미 공산당 전국 위원장과 자비스 타이너 부의장, 파멜라 새퍼 국제부 서기, 스콧 마샬 노동부 서기로 구성된 미 공산당 대표단은 “미국, 중국, 그리고 베트남 국민 사이의 더 나은 상호이해와 우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 대중과 공유하기를 희망하는 정치적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귀국했다.

중국을 방문한 미 공산당원들은 중국 공산당 국제부서의 환대 속에 ‘중화전국부녀연합회’와 ‘중화전국총공회’ 지도부와 회동했다.

많은 미국 언론이 “중국을 자유분방한 자본주의와 착취가 공존하는 땅으로 묘사하는” 반면 새퍼 국제부 서기는 “중국에서는 법이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다”며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에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새퍼 서기와 웹 위원장은 미 공산당과 중국 및 베트남 공산당의 관계가 “한층 더 강화됐으며 앞으로 더욱더 긴밀한 관계 구축을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 후 몇 년간은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행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간혹 보이는 것마저도 주로 중국 공산당의 경제 모델 연구에 국한되어 있었다.

미국 공산당 경제 위원회에서 일하는 와디 할라비 교수는 2000년부터 수차례 중국을 방문해 ‘세계 정치 경제’에 대한 강의를 하고 학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1년 7월 6일 ‘중국, 노동계층, 노조와 경제’라는 주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니블-프록터 마르크시스트 도서관에서 포럼이 개최됐다. 행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중국이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로 발전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포럼은 이 상황이 중국 노동계층, 노조(공식노조,독립노조), 그리고 중국 인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또한 미국 정부, 그리고 미국의 노조와 언론이 중국의 이러한 발전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각국 공산당 간의 관계회복의 신호 속에 할라비 교수는 오랜 기간 베이징 라인이었던 미-중인민우호협회 샌프란시스코 지부의 데이비드 어윙과 나란히 이 포럼에 참여했다.

관계회복

6년 후인 2017년 10월 14일과 15일, 할라비 교수와 또 다른 보스턴 공산당원인 딜런 워커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사회과학 아카데미 주최 제8회 세계 사회주의 포럼’에 참석했다. 이 컨퍼런스는 러시아의 10월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위대한 전환기의 시대적 특성과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에 대한 ‘검토’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포럼 연설자로 초빙된 할라비 교수는 “10월 혁명을 기리기 위해 우리가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연설을 했다.

그는 “위대한 10월 사회주의 혁명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한걸음이었다. 10월 혁명이 마르크스주의와 노동계층에 힘을 실어 주었다. 또 이 혁명으로 전 세계 모든 공산당이 태어났으며 국제 공산당(코민테른)의 시초가 됐다”라고 했다.

“코민테른이 특히 레닌 사망 이후 심각하게 약화한 것은 사실이다. [중략] 그  사실이 공산당 간의 통합을 거부할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된 원인을 규명하고, 고심하여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10월 혁명을 기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존중은 국제 공산당을 통합 재구축하는 일이다.”

미국 공산당 바흐텔 대표도 지난 5월 28일 선전에서 중국 공산당 후원으로 열린 ‘21세기 마르크스주의와 세계 사회주의의 미래’라는 주제의 컨퍼런스에서 ‘국제 공산당 통합’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칼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열렬한 마음으로 마르크스 탄생을 축하하며 이번 회담을 주최해 준 중국 공산당 국제부서에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이며, 인류 역사의 과정을 변화시켰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가 계층에 의한 간절한 말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맞닥뜨린 시급한 난제의 해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시의적절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만이 사회와 자연, 인간과 노동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중국에서의 놀라운 경험은 사회주의 지향 체제가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대규모 전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가 세계 평화에 가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권위주의와 파시즘의 위험이 미국과 유럽에서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와 관련된 소위 극우파 혹은 파시즘은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환경에까지 전례 없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펼친 선거운동에서 밝힌 바 그대로 현재 지배하고 있다. [중략] 반중 무역 수사학을 구사하며 국내적으로는 노동계층을 분열시키고 미국 노동자를 다른 국가의 수많은 노동자와 경쟁하게 하고 있다.”

“트럼프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 제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과 함께 전쟁 내각을 구성했다. “

“미 정부의 극우파 지배를 종식하기 위한 공동 전선 구축은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목표다.”

미국 ‘우파 지배’ 종식

바흐텔 대표의 논리에 따르면 미 정부는 세계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지만 중국 공산당은 선한 세력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적 기준에 따른 윤리적 행동이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우파’를 물리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폭력적으로 바뀌게 된다면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미국이 중국과의 전면적 군사 대립 상황에 돌입한다면 미국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2010년 12월 4일, 오클랜드의 니블-프록터 마르크시스트 도서관의 미 공산주의 독회 광고가 이 질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답을 내놓았다.

“미 정부는 그동안 중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를 포함한 사회의 여러 가지 다른 측면들에 대해 직접적인 도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중략]  만일 이러한 대치상태가 본격화된다면 우리는 모두 미 제국주의에 대한 전혀 다른 사상 최대의 국내 전선 형성에 새로운 에너지를 쏟아부어야만 할 것이다.”

동맹국에 아끼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부에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군사력을 갖춘 중국 공산당은 국제 혁명 과정에서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른 국가 공산당에 손을 뻗쳐 재정적 지원을 비밀리에 하는 일은 이런 프로그램의 빠질 수 없는 필수요건이다.

한때 미국 공산당은 소련의 자금과 찬사를 받을 수만 있다면 간첩행위와 반역죄까지도 선뜻 저질러왔다. 중국 공산당의 자금이 미국 공산당 계좌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면 과연 어떤 범죄를 마다할 것인가?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