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건국원칙 16] 권력남용 막는 천재적 설계 ‘삼권분립’

제임스 팡(James Fang)
2022년 02월 22일 오전 10:00 업데이트: 2022년 03월 17일 오후 5:26

미국의 열여섯 번째 건국원칙은 삼권분립의 원칙이다. 즉 국가의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으로 분리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권력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원리이다.

이 원칙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고대 정치학자들은 정부를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 고심했다. 당시에는 왕정(王政), 귀족정(貴族政), 민주정(民主政) 등 3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왕정은 효율이 높았고, 귀족정은 상류사회의 이익과 사상을 대표하거나 반영했으며, 민주정은 서민의 이익을 대변했다.

당시의 정치학자들은 이 3가지 정치 체제는 각각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왕정은 군주가 폭정을 할 경우 아무도 통제할 수 없고, 귀족정은 특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과두제(寡頭制, oligarchy)로 전락할 수 있으며, 민주정은 혼란과 폭민정치(暴民政治·다수의 폭민에 의한 정치로, 일종의 중우정치)를 낳기 쉽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최선의 정치체제는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에는 폴리비오스(Polybios)라는 역사학자가 있었는데, 박학다식하고 식견이 높았다. 그는 그리스에 있을 때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관리하는 데 참여했고, 그리스가 로마에 정복당한 뒤에는 로마로 추방됐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면서 축적된 로마 공화국의 경험을 접하고 크게 깨달았다.

폴리비오스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배운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상했다. 그것은 여러 정치체제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한 새로운 정치체제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3가지 정치체제의 장점을 취하면서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분산하려 했을까? 우선 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왕이 있으면 의사결정을 단순하고 신속하게 하는 등의 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동시에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두 개의 의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원은 귀족을 대표하는 입법 기구로, 귀족이 선출하고, 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 기구로, 국민들이 선출하는 방식을 고려했다. 폴리비오스는 그들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면 정치체제의 단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로마 공화국은 이미 비슷한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왕과 같은 집정관이 있었고, 귀족이 선출한 원로원도 있었다. 그래서 폴리비오스는 국민이 선출하는 하원만 더하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이런 정치체제가 온전히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후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뒤 로마가 군주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폴리비오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은 1800년대 프랑스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였다. 몽테스키외는 볼테르(Voltaire), 루소(Jean Jacques Rousseau)와 함께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몽테스키외는 1748년 ‘법의 정신’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는 이 책에서 폴리비오스보다 혁신적인 ‘삼권분립’ 학설을 내놓았다. 이 책에서 그는 국왕에 상·하원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정치체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기에 반드시 입법·행정·사법 세 부문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몽테스키외가 20년간 공들여 쓴 역작이지만,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이 책에서  당시 영국의 군주 의회제가 자신이 원하는 정치체제와 비슷하다며 여러 번 칭찬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앙숙 관계였기에 그의 표현은 프랑스인들의 불만을 샀고, 결국 그의 책은 프랑스에서 외면당했다. 또한 그의 ‘3권분립’ 사상도 프랑스에서 빛을 볼 수 없었다.

몽테스키외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자 훗날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John Adams)였다.

정치학에 심취한 존 애덤스는 나라를 다스리는 학문을 ‘신성한 과학’으로 여기고 연구했다. 그는 몽테스키외의 이론을 면밀히 검토한 뒤, 미국이 선택할 최상의 정치체제라고 판단해 ‘삼권분립’을 가장 먼저 제시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미국인들은 ‘기이한 이론’으로 여겼고, 결국 대륙회의에서 거부당했다. 하지만 애덤스는 포기하지 않고 매사추세츠주로 달려가 설득했다. 마침내 매사추세츠주가 ‘삼권분립’을 받아들였고, 이것이 미국에 삼권분립 제도가 정착하는 시발점이 됐다.

그 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도 이 제도를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몽테스키외의 책을 제헌 지침으로 삼았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안에 ‘분립’뿐 아니라 삼권의 ‘협력’까지 추가해 마침내 현대 미국판 ‘삼권분립’ 제도를 탄생시켰다.

미국 헌법에는 “모든 입법권은 합중국 의회에 귀속한다”,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속한다”, “사법권은 연방 대법원과 연방 의회가 수시로 제정, 설치하는 하급 법원들에 속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 헌법은 국가권력을 셋으로 나누고, 이를 각각 별개의 독립된 기관에 분담시켜 상호간의 균형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한다.

미국의 건국 원칙 시리즈 보기

미국 헌법은 각 주(州)정부도 3권분립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대다수 주정부는 주 행정기관과 주 의회, 주 대법원을 두고 3권분립을 시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권력은 어떻게 서로 협력하고 견제하며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이다음 건국 원칙이 답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