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사법개혁’ 한창…진보성향 지방검사장들이 주도

한동훈
2021년 12월 14일 오후 12:17 업데이트: 2021년 12월 14일 오후 2:34

정치수사 철폐 아닌 사회적 취약계층 보호 내세운 개혁에 초점
사회적 불평등 해소 명분…일부 지역서 범죄율 감소 성과도
범죄율·
떼도둑 증가, 치안 불안, 경찰력 약화 등 부작용은 과제

 

범죄율이 치솟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급진 성향 지방검사장의 개혁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소속 검사와 직원 등 50여명이 급진적 개혁으로 검찰 운영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다가 검찰을 떠났다.

지난 2019년 11월 지방검사장 선거에 당선된 체사 부딘(41) 검사장은 기존 형사·사법 시스템이 ‘사회적 약자를 대량으로 수감시켜 범죄자를 양산한다’며 개혁을 추진해왔다. 구속영장 청구는 중범죄만으로 제한하는 등 수감자 축소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부딘 검사장의 급진적 성향은 선거 유세 당시부터 부각됐다. 그의 부모는 1970년대 베트남 전쟁,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폭력투쟁을 벌인 극좌단체 ‘웨더 언더그라운드’ 멤버로 경찰관 2명과 경비원 1명을 살해한 은행차량 강도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어머니는 2003년 출소했지만 75년형을 받은 아버지는 여전히 복역 중이다.

부모가 살인죄로 수감된 탓에 해당 단체 설립자에게 입양된 부딘은 청년 시절 베네수엘라의 좌파 포퓰리스트 독재자 우고 차베스 정부에서 일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로스쿨 졸업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선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지방검사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부딘은 당선 직후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형사·사법 시스템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취임 하루 만에 검사 7명을 해고하는 등 기존 시스템 갈아엎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검찰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은 “검찰이 붕괴되고 있다”며 “떠나간 인력 50여명 모두가 스스로 그만둔 것은 아니다. 일부는 해고됐다”고 말했다.

부딘 검사장의 개혁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지만, 강압적인 검찰의 운영 방식은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달에는 해직 검사 2명이 “부적절하고 불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가 부당하게 해고됐다”며 부딘 검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9월에는 샌프란시스코 고등법원 부르스 챈 판사가 부딘 검사장의 형사·사법 시스템 개혁 노력은 지지한다면서도 “검찰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반대를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챈 판사는 “검찰 구성원 중 일부만이라도 지금 추진 중인 큰 사안들에 비해 덜 중요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검찰 업무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며 잦은 보직 변경 등으로 검찰 기능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소식통은 부딘 검사장을 중심으로 한 진보성향 검사들이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는 범죄 관련 통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심지어 거짓말로 은폐한다며 “범죄자가 많은 것은 사법제도가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진보성향 검사들은) 사람들이 계속 체포되는 것은 경찰이 계속 체포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며 “그들은 경찰이 그냥 놔두면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정말로 믿고 있다”며 전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제 사법 시스템을 신경 쓰지 않는다. 특히 절도, 사기 같은 재산 범죄는 이제 거리낌이 없다. 그들은 기소당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기까지 하는데, 불행하게도 이는 사실이다”라고 개탄했다.

부딘 검사장의 사법 개혁으로 기소율이 급감하면서, 지역 경찰들은 범죄자 체포에 소극적으로 임하게 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는 중범죄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벼운 범죄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 당국에 따르면 올해 5월 지역 내 차량절도 신고건수는 1891건으로 1년 전인 923건과 비교해 2배로 증가했다. 도심 일부 지역에서는 차량절도가 작년보다 최고 750% 급증했다.

또한 빈집털이 범죄 증가율은 전년 대비 47%로 미국 주요도시 중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21일 밤 도둑떼가 미국 캘리포니아 상점가를 약탈하는 모습 | 화면 캡처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은 ‘치명적이지 않은’ 총기발사 사건은 전년 대비 100%로 증가한 119건을 기록했고,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 건수도 지난해(약 700건)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11월 발생한 떼도둑 습격사건도 범죄율 증가의 상징적 사례로 언급된다.

이는 무장한 도둑떼 80여명이 20여대의 차량에 나눠타고 유니언 스퀘어 상점가에 들이닥쳐 백화점과 명품매장 진열장 유리를 부수고 직원들을 위협하며 닥치는 대로 상품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다.

다른 상점가에도 비슷한 약탈이 이어지면서 주민과 상인들이 불안에 떨었지만 처벌받은 이들은 많지 않다.

부딘 검사장실은 최근 유니언 스퀘어 루이뷔통 매장에서 발생한 조직범죄와 관련해 피의자 9명에 대한 고발이 접수됐다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런 뻔뻔한 행동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치안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약한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법률·사법 분야 잭 스미스 연구원은 샌프란시스코와 LA에서 절도나 떼도둑 사건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극단적인 진보정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진보성향 검사들에 대한 연구보고서의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한 스미스 연구원은 에포크타임스에 “누구라도 인과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진보 정책의 결과는 법과 질서의 붕괴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지방검사 선거에서 진보성향 후보들이 소속 정당이나 공화당에서 출마한 전통적 스타일의 검사들을 물리치고 당선됐다면서 “그 결과 범죄자들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뻔뻔한 절도를 태연히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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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들의 보석 석방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는 단체인 ‘배드 보이즈 보석 자금’ 상의를 입은 남성이 LA의 한 보안관실 수감자 접수센터 앞에 서 있다. | AFP/연합

부단 검사장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진보 성향 검사장들이 형사·사법 시스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LA 카운티의 조지 가스콘, 볼티모어의 마릴린 모스비, 보스턴의 레이철 롤린스 검사장, 시카고(쿡 카운티)의 킴 폭스, 필라델피아의 래리 크라스너, 페어팩스 카운티(버지니아)의 스티브 데카노 검사장 등이다.

가스콘 검사장은 지난해 12월 취임 후 “강력한 처벌이 범죄를 줄인다는 근거가 없다”며 엄벌주의에 반대했다. 이후 LA 카운티에서는 잔인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해지면서 치안이 악화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모스비 검사장은 2020년 초 교도소 내 수감자를 줄여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겠다며 마약 소지, 매춘, 경미한 교통위반 등의 낮은 수준 범죄(중범죄가 아닌 범죄)에 대한 기소를 중단하는 시범 조치를 도입했다.

진보층에서는 매춘, 마약 등의 범죄를 소위 ‘삶의 질 범죄’로 규정한다. 인종차별 등 불평등으로 저하된 삶의 질로 인해 빚어진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을 단죄해선 안 되며 그냥 놔두면 해소된다고 주장한다.

모스비 검사장은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서 기소 중지 이후 결과 중범죄가 20%, 재산범죄가 36% 감소했다며 이를 영구화했다. 이에 따라 볼티모어 경찰들은 마약 소지, 매춘 등의 범죄자 체포를 중단한 상태다.

이러한 개혁 움직임의 배경에는 ‘정의(Justice)’의 재정의가 깔려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부딘 검사장의 발언도 이를 나타낸다.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찰청은 홈페이지에서 “인종적 정의를 증진하고 가난의 범죄화를 종식하며, 수감을 가장 마지막 해결책으로 활용하며 대량 수감과 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금 보석 제도를 폐지한 이유에 대해서는 “가난해서 보석금을 낼 수 없다고 감옥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수감자가 공공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법원에 요청해서 감옥에 남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 이 기사는 브래드 존스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