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고위급, 왜 영하 18도 알래스카서 만날까? 의론 분분

류지윤
2021년 03월 17일 오전 9:00 업데이트: 2021년 03월 17일 오전 11:13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번 국가안보 보좌관이 알래스카로 이동해 양제츠(楊潔篪) 중공 정치국 위원 및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만난다고 미국과 중국이 발표했다.

현재 현지의 최저 기온은 영하 18도로, 양측이 워싱턴과 멀리 떨어진 북극권에서의 만남을 택한 배경에 온갖 추측이 돌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0일 블링컨 국무장관이 15일부터 18일까지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뒤, 18일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설리번 국가안보 보좌관과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향해 중공 양제츠 정치국 위원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중 고위층 간 첫 만남이 될 것이고, 여기서 미∙중 정부가 처음으로 힘겨루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첫 회동 장소로 혹한의 땅을 선택한 점을 두고 각계에서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양측 회담 장소, 북극권 선택

대만 매체 ‘자유시보’는 기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1일 양측의 회담 장소 발표 당시 앵커리지의 최저기온은 영하 18도였으며, 이런 혹한에서는 얼어붙은 양측의 관계가 해빙 무드로 바뀌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 측은 회담 장소가 워싱턴과 베이징으로부터 비슷한 거리에 있고, 전염병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곳이라며 좋게 해석했다.

국제 언론은 첫 만남이 쉽지 않은 만큼 향후 양측 관계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징 당국은 당초 이번 회담을 ‘전략 대화’로 표현했지만, 뒤이어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를 바로잡았다. 중공이 미국의 관심사에 실질적인 진전과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아야지만 후속적인 교류가 있을 것임을 분명히한 것이다.

중국해양대 해양발전연구원장인 팡중잉(龐中英) 국제관계 전문가는 “미국 측이 중국의 ‘전략 대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베이징이 ‘정상화’를 원한다고 해도 미∙중 관계가 부시 전 대통령이나 오바마 전 대통령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동적이고 곤란한 상황에 빠진 중공

중공 역시 지난 11일 미국 측 초청을 받아 양제츠 위원과 왕이 부장이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번 국가안보 보좌관을 만나 3월 18일에서 19일까지 알래스카에서 회동한다고 발표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미국 측 요청’이란 말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상 중공이 수동적이고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비꼬았다.

류허(劉鶴) 중공 국무원 부총리가 워싱턴에서 ‘미∙중 1단계 무역협정’에 서명한 이래 중공 고위층은 미국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양제츠 위원은 하와이에서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을 만난 바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알래스카에서 양제츠 위원과 왕이 부장을 만나는 선택을 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미국 측은 신장(新疆) 인권 문제 등 미국의 관심사를 거론할 것”이라며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공이 취하는 구체적인 행동과 실질적인 성과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블링컨은 공세적으로 나왔지만, 양제츠 위원과 왕이 부장은 북극권 지역에서 블링컨을 기꺼이 만나길 원한다.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간파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만약 미∙중이 앞으로 고위층 간 교류가 있다면 장소를 사이판, 괌, 미드웨이 제도, 아메리칸 사모아, 나아가 킹먼 암초를 선택하지 않겠느냐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미국 측이 미국 정치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북극권에서, 그것도 영하 18도의 추운 날씨에 중국 측과 만나는 것은 외교 예의상 중공에 대한 냉대를 의미한다며 앞으로 해빙(解氷)이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교묘한 양측 회담 시기

또한 이번 회담 시기는 묘하게도 바이든이 인도, 일본, 호주 정상과 4자 회담을 가진 후, 그리고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후에 갖는 것으로 잡혔다.

바이든은 지난 12일 중공의 확장을 막아내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아시아의 ‘리틀 나토(NATO)’ 화상 회의에 참석해 베이징의 ‘도발∙협박’에 관해 논의했다.

또한, 블링컨 장관과 오스틴 장관은 15일부터 18일까지 도쿄와 서울로 향해 일본과 한국의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과 2+2회담을 진행한다.

미국 측의 이러한 외교 활동이 끝난 뒤 중공 고위층과의 회담이 진행된다. 마틴 래서 전 미국 국방부 장관 고문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미국이 중공을 향해 매우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최전방과 핵심은 동맹∙협력 파트너와의 교감이고, 또 베이징이 현실에 맞지 않는 환상, 즉 워싱턴과의 관계가 신기하게도 초기화되리란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팡중잉 교수도 “워싱턴이 기술적인 외교 수단을 펼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중공에 빈틈없는 경계망을 치려는 것 같다. 특히 미국 측은 미국과 중국이 일부 분야는 협력하겠지만, 충돌과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알래스카 회담에서 대만, 홍콩, 코로나19 불투명성, 인권 억압 등의 문제에 대해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싱크탱크 허드슨 연구소의 아시아∙태평양 안보실장 패트릭 크로닌 박사는 “워싱턴보다는 중국 측이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급하다”고 했다.

크로닌 박사는 “시진핑이 2022년 초 베이징 동계 올림픽과 하반기에 열리는 중공 20차 당대회 등 굵직한 의제들을 놓고 미∙중 관계의 ‘초기화’를 위한 대화 공간과 시간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바이든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외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중공에 대항하는 의제에 대해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는 방안을 고안 중일 것이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