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 식탁에는 어떤 메뉴가 오를까?

최창근
2021년 05월 17일 오후 5:06 업데이트: 2022년 05월 28일 오전 9:22

경제 분야는 화기애애, 외교·안보 분야는 냉랭 전망

2021년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린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양국 정상의 첫 공식 만남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정상회담 준비로 분주하다. 초청 형식, 회담 방식, 의제를 두고 물밑 조율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국 외교 당국이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식사 형식과 메뉴다. 오찬으로 할지? 만찬으로 할지?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등등 ‘의전(儀典)’을 둘러싼 물밑 싸움이 한창이다.

식사 형식과 메뉴가 왜 중요할까? 오찬이냐? 만찬이냐? 에 따라 회담의 격과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식사 일정에 외교 당국이 공을 들이는 또 다른 이유는 정상들이 공식 회담보다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얘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민감한 배경에는 지난 4월 16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의 회담이 자리한다. 바이든 취임 후 첫 외국 정상회담인 스가 총리와의 백악관 회담은 오찬 형식의 ‘간소한’ 형식으로 준비됐다. 메뉴로 햄버거가 올랐다. 양국 정상은 햄버거를 앞에 두고 손도 대지 못 한 채 20분 만에 회담을 끝냈다.

이른바 ‘20분 햄버거 회동’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2009년 9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제93대 총리를 역임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는 4월 18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일본 외무성의 자존감 결여도 심각했지만, 저녁 만찬을 거절당하고 햄버거를 먹으면서 20분간 정상회담을 하는 데서는 불쌍하기까지 했다” “회담 목적은 미·일 동맹 강화라고 하는데, 조공(朝貢) 외교가 무거운 짐을 지우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썼다.

통역만 배석한 가운데 ‘햄버거 오찬’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왼쪽)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 조 바이든 트위터 캡처

스가 日 총리, 20분 햄버거 회담… 논란 일으켜

5월 12일, 한국 외교 소식통에 의하면, 한국 외교 당국은 정상회담 형식에 대해서 “햄버거 식사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부는 격식을 갖춘 오·만찬 형식을 타진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선호하는 식사 메뉴도 전달했으나 미국 측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확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을 포함한 외빈(外賓) 초청 회담 형식은 국빈방문(State Visit), 공식방문(Official Visit), 실무방문(Working Visit), 사적방문(Private Visit) 등 4가지로 나뉜다.

이 중 ‘격(格)’이 가장 높은 국빈방문은 대통령 명의로 공식 초청하는 외국의 국가원수 또는 행정 수반(총리)의 방문에 한하며, 대통령 임기 중 각 국가별로 1회에 한함을 원칙으로 한다.

스가 총리의 미국 방문은 ‘공식 실무방문(Official Working Visit)’ 형식이었다. ‘격식’은 생략하고 ‘실무’에 집중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하지만, 간소함이 지나쳐 자국과 타국의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이다.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공식 실무방문의 형식이었지만 의장대 도열로 국빈방문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정상회담 의전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제다.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는 와중에 한·미·일 삼각동맹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일본 총리에 이어 한국 대통령을 두 번째 정상회담 대상으로 초청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두 정상은 회담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5월 17일 기준, 한국의 코로나 19 백신 접종자 수는 전 국민의 7.3%인 373만 명(1차 접종)에 그친다. “11월까지 인구의 70% 이상 백신 접종을 마쳐 집단면역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한국 정부로서는 ‘백신 수급’은 당면 과제다.

한국 정부는 모더나 등 미국 제약사들이 기술·원료를 한국으로 가져와 한국을 동아시아 생산기지로 삼을 경우, 장기적으로 국내 공급도 원활해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주된 의제 중 하나가 한·미 간 백신 파트너십이다. 미국은 백신에 대한 원천기술과 원부자재를 갖고 있고 한국은 세계 2위 수준의 바이오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보다 시급한 문제는 이른바 ‘백신 스와프’다.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도입 일정이 올해 하반기에 집중된 만큼, 미국 측 여유분을 빌려 5~6월 국내에 공급 후 한국의 물량을 미국에 돌려주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미국 입장도 긍정적이다. 5월 11일, 백악관에서 한국계 앤디 김(Andrew Kim) 연방 하원의원(민주당)을 접견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중요 동맹국인 한국에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해야 한다”는 앤디 김 의원의 요청에 “아직 한국에 대한 백신 지원 계획은 없지만 필요성에 공감한다. 우선순위를 두고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국내에서 수급 불안이 논란이 됐지만 미국은 한국 상황이 우선 지원할 만큼 급하지 않다는 시각”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백신과 반도체·배터리 빅딜

반도체와 배터리는 미국이 한국에 협력을 요구하는 대표 분야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 한·미 간 기술협력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호응하는 차원이지만 백신 협력에 대한 대가 성격도 지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방미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디바이스 솔루션(DS)부문 부회장,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등 삼성·SK·LG그룹 반도체·배터리 사업 주요 경영진들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다. 삼성·현대차·LG·SK 등 국내 4대 그룹이 미국에 투자했거나, 조만간 투자를 발표할 금액이 총 40조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백신과 반도체는 경제 분야 협력이면서 동시에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협력 분야이기도 하다. 쿼드에는 반도체 등 신기술, 백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워킹그룹이 존재한다.

미국의 반도체 등 공급망 재편 구상에는 신기술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기술 격차를 벌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미국은 중국의 ‘백신 외교’를 견제하기 위해 쿼드 백신 파트너십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 정부는 반도체 등 신기술과 백신 파트너십 등 워킹그룹을 통해 쿼드 국가들과 협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쿼드 참여에 미온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한국 정부가 이를 통해 미국에 성의 표시를 하고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5월 11일,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익, 지역, 글로벌, 평화 번영에 기여한다면 어떤 협의체와 협력도 가능하다. 기본 입장에 따라 분야별로 어떠한 협력이 가능한지 계속 살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분야 핵심 의제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가능성이 점쳐진다. 무엇보다 한·미 양국 정상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대북(對北)정책이다. 한·미정상회담을 북·미 대화의 물꼬를 틀 분수령으로 삼으려 한다.

임기 종료를 1년 남긴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할 마지막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의 한국 정부에 바이든 행정부가 어떻게 화답할지가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기조에 관한 바이든 행정부의 ‘이해와 존중’ 표명에 대해서 명확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상대로 여기고 있는 것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의 아픈 문제이자, 한국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도 빠트릴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인권 사안을 협상 과정에서 의제로 올리겠다는 생각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다.

외교·안보분야 동상이몽…한국은 北, 미국은 中 중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문제보다 중시하는 것은 중국·대만 문제이다.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4월 8일, 미국 상원이 발의한 ‘전략적 경쟁법’에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안보 활동 강화에 11억 500만 달러(약 1조 2,40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본·인도·호주 등을 일종의 띠처럼 엮어 안보 포위망을 구축하는 것이 미국의 복안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대만 정책과 관련해서 복기(復棋)해 볼 대목은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이다. 회담 공동성명서에 대만 문제가 명시됐다. 미·일 정상 간 공동성명서에 대만 문제가 거론된 것은 1969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미·일 정상회담 이후 52년 만이자, 1972년 중·일 수교 이후 처음이었다.

성명서에서 미·일 양국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 홍콩,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공동이익을 위한 분야에서의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비춰 볼 때, 바이든 대통령도 중국의 가장 아픈 문제인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 표명을 요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국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정책 동참을 요청받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입장을 표명해야 할지, 미·중 경쟁에서 어떤 위치를 설정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는 기존의 전략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국제환경에서 모호한 태도는 오히려 더욱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할지 모른다.

한미동맹도 빠트릴 수 없는 의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5월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백악관 방문은 한·미 양국 정부·국민·경제의 ‘철통 같은(ironclad)’ 동맹 관계와 넓고 깊은 유대 관계를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21일 문재인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환영할 방침이며, 문 대통령의 방미는 국민과 경제 등에 있어 두 정부 사이 광범위하고 깊은 유대를 표시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韓은 동맹의 약한 고리? 한미동맹 강화될까?

젠 사키의 발언이 외교 수사(修辭)에 그칠지 결실을 맺을지도 관건이다.

지난 3월 17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이 서욱 한국 국방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의 전례 없는 위협으로 한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서욱 장관은 중국을 언급하지 않고 “강력한 대북 억제력과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봉쇄를 위한 아시아 동맹에 거리를 둘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지융(鄭繼永) 푸단대학 북한·한국 연구센터장은 “한국은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 주도 아시아 동맹에서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20년 11월 12일,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전과 번영의 핵심축(linchpin)으로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확고히 유지하겠다” 밝혔다.

한국은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반한 헤징(hedging·변동에 대비해 반대 포지션도 함께 취하기) 전략을 추구하며 한·미·일 삼각 동맹, 쿼드 등 지역 협의체를 통하여 구사하는 대중국 포위전략에 있어 태도를 분명히하지 않아 ‘동맹의 약한 고리’로 평가받아 왔다. 한국은 정상회담에서 동맹 문제에 있어서도 명확한 해답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새로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트럼프 행정부의 정상 간 개인적 교류에 바탕을 둔 ‘빅딜 추구’도,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보다 압박에 방점을 둔 ‘전략적 인내’도 아닌 실용적 접근을 통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이전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접근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 중간 형태의 접근법을 취하기로 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첫 회담에서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