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2030세대 ‘탕핑주의’ 급속 확산…중국판 비폭력 비협조 운동

2021년 05월 29일 오후 8:46 업데이트: 2021년 05월 29일 오후 9:59

최근 중국 청년층 사이에서 ‘탕핑(躺平)주의’가 유행하고 있다. ‘탕(躺)’은 눕다, ‘핑(平)’은 평평하다는 뜻으로 탕핑은 바닥에 뻗어버린다는 의미다.

중국 바이두 백과에서는 탕핑주의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평온함을 유지하며 반응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순종적 사고방식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우리 식으로 한다면 ‘나는 저항하지도 협조하지도 않겠다, 배 째려면 째라’ 정도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탕핑주의 진정한 의미는 조금 다르다.

탕핑주의는 지난 4월 17일 한 네티즌이 한국의 포탈 사이트 카페에 해당하는 바이두 티에바(百度貼吧)에 올린 게시물을 계기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르면 돈벌이에 매달려 돈의 노예로 사는 삶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생활 수준은 유지하되 내집마련·연애·결혼·출산·승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독립 선언이다.

글쓴이는 ‘탕핑이 곧 진리(躺平即是正義)’라는 제목의 게시물에서 2년 넘게 놀면서도 삶의 의욕을 유지하며 철학적 성찰을 이어가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글쓴이는 “2년간 일하지 않았다. 놀기만 했지만 잘못됐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스트레스의 주된 요인은 남과의 비교, 어른들의 낡아빠진 생각들”이라며 연예인의 사생활을 다루는 뉴스들이 우리에게 어떤 사상을 주입하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은 이런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며 “나는 디오예니스(Diogenes)처럼 나무통에서 자고 햇빛을 쬐고,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처럼 동굴에서 살면서 로고스(Logos·세계의 법칙)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 땅에 인간의 주체성을 높이 드는 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하나를 만들어 내겠다. 탕핑이 곧 나의 철학이며, 탕핑만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다.

‘탕핑이 곧 진리(躺平即是正義)’라는 제목의 게시물 | 화면 캡처

이 게시물은 큰 반향을 일으킨 뒤 삭제됐다.

글쓴이가 지웠는지, 바이두가 삭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미 많은 네티즌이 글을 캡처해 여러 곳으로 퍼 나른 뒤였다. ‘탕핑학’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글쓴이에게는 ‘탕핑대사(大師·큰 스승)’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탕핑은 중국판 비폭력 비협조 운동”

탕핑의 의미는 중국의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내연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 충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 언론인 그룹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탕핑주의는 부추들의 비폭력 비협조 운동이자 막다른 골목에서 낸 궁여지책”이라고 평가했다.

부추는 베어도 금방 다시 자라난다. 끊임없이 약탈당하는 중국 민초들이 자신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중국 증시에서는 기관투자자들에게 당하는 개미투자자들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웨이보 아이디 ‘원주민(原住民者)’은 “탕핑은 미래와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극도의 절망감을 드러낸 것”이라며 “월수입이 1000위안(약 17만5천원)도 안 되고, 결혼한 부부가 양가의 재산을 다 털어도 평생 집 한 채 살 수 없을 때 이런 결론을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수입 1000위안은 지난해 5월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말한 “중국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3만위안(약 525만원)에 달하지만, 6억 명의 월수입은 1천위안”이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14억 중국 인구 중 약 42%가 중급 규모 도시에서 집세조차 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웨이보 아이디 ‘산림심처(森林深處)200608’은 “어떻게 노력해도 부자가 될 수 없다. 남들에게 이용당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고장 나면 바로 버려진다. 힘들어하면서 일할 이유도 없다”며 탕핑주의에 대해 동의했다.

아이디 ‘노육(老肉)’는 “현재 이 사회에서 가치가 가장 떨어진 것은 화폐가 아닌 노력”이라며 “매우 절망적이다”라고 썼다

네티즌들의 격한 공감과는 달리 중국 관영매체들은 차분한 태도를 보인다.

광명일보는 중국 노동관계연구소 왕싱위(汪星余) 서기의 발언을 인용해 “고속성장기를 지난 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둔화하고, 산업구조의 조정,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인들은 일과 생활 사이에서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칭화대 교육연구소 리펑량(李亮) 초빙교수는 “참여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드러눕는(탕핑)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탕핑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다. 자신의 부모는 물론 세금으로 자신의 교육을 지원한 수많은, 열심히 일하는 납세자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온라인에서는탕핑주의의 등장에 대해 ‘중국 경제가 과도기에 접어들면서 청년들의 탈중앙화,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탕핑주의를 향한 중국 관영매체와 기성세대의 비판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기득권층의 모양만 그럴듯한 훈계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중국 청년들에게 하부구조로의 삶을 강요한 중국 공산당 고위층과 간부들, 이들에 빌붙은 기득권층이 탕핑주의에 대해 위기감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태연함을 유지하며 점잖은 모습으로 타이르고 있다는 게 재미 중국 미디어 평론가 우터(吳特)의 분석이다.

우터는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탕핑이 제시하는 저욕구, 저소비, 비영합, 최소한의 생활 기준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 현재 중국의 교육·취업 분야에서 과도한 경쟁과 학업·업무 압박, 앞날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황에 대한 젊은이들의 소극적 저항”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실제로 중국 사회에서 일 안 하고 최소한의 생계 수준만 유지하며 탕핑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가진 재산이 없다면 당장 먹고살 방법이 없다. 가족과 친척들도 수시로 ‘왜 노느냐’고 호통을 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탕핑의 의의는 진로와 사회 상황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절망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데 있다. 중국 공산당은 젊은층이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취업, 출세, 아니면 사회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향락에 매달리길 바란다. 이런 것을 거부하면서, 돈벌이는 시원치 않더라도 사회의 부조리에 관심을 갖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것은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간담이 서늘한 현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터는 “물론, 이러한 소극적 저항으로 당장 사회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다. 홍콩을 보라. 전 세계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상황에서도 청년들을 가두고 폭행하고 살해했다. 중국 청년들이 정말로 탕핑을 집단행동에 옮긴다면, 중국 당국으로부터 ‘소란죄’라는 구실로 압살을 당할 것이다. 일찌감치 톈안먼 사태 때 중국 공산당은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중국의 똑똑한 청년들을 탱크로 압살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명한 청년들이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상황에서도, CCTV로 대표되는 중국 공산당의 대중문화 선전선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려 한다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