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치었다”며 수리 맡긴 사고 차량에서 ‘앞유리’를 유심히 살펴본 정비사

김연진
2020년 10월 29일 오전 11:11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후 5:16

자칫 미제사건으로 끝날 뻔했던 ‘뺑소니 사고’의 범인이 잡혔다.

사고 목격자는 없었다. 피해자도 사고 직후 의식을 잃고 기억상실증에 걸려 어떤 사실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을 해결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차량 정비사’였다.

차량 정비사의 눈썰미가 사고 흔적을 발견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SBS ‘모닝와이드’
SBS ‘모닝와이드’

과거 SBS ‘모닝와이드’는 충북 영동군의 한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했다.

당시 차량 정비소에 사고 차량 한 대가 접수됐다. 운전자는 “산짐승을 치었다”고 말하면서 수리를 맡겼다. 사고 차량은 앞유리가 심하게 파손된 상태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앞유리를 갈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차량 정비사.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파손된 앞유리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달리던 차량이 동물과 충돌하면, 동물은 무게중심이 낮아 차량 보닛 하부 쪽에 충격을 받는다. 따라서 앞유리가 아닌 보닛이 파손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달리던 차량이 사람과 충돌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람이 차에 부딪혔을 경우 사람 머리가 차량 앞유리와 충돌한다.

SBS ‘모닝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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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앞유리가 깨진 사고 차량은 짐승이 아닌 사람을 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운전자는 “분명히 산짐승을 치었다”고 말했으나, 차량 정비사는 산짐승과 충돌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차량 정비사의 예상이 맞았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 차량의 앞유리에서 사람의 머리카락이 발견됐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고 피해자가 어디에도 없었다. 경찰 측은 “운전자가 사고 직후 피해자의 시신을 유기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사관들은 끈질기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고, 끝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SBS ‘모닝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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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동네에 혼자 사는 남성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사고 시점에 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밤중에 산책하다가 넘어져서 다쳤다. 교통사고를 당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카락과 사고 차량 앞유리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DNA를 대조해본 결과, 그는 차량에 부딪힌 피해자가 맞았다.

사고 당시 차량 앞유리에 머리가 부딪히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6시간 동안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피해자는 사고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경찰 측은 사고 운전자를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 검사까지 시행했다.

“사람을 친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을 치고 도주했습니까?”

“아닙니다”

SBS ‘모닝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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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짓’으로 판정됐다.

진실은 이랬다. 사고 운전자는 사람을 치고 현장에서 도주했고, “산짐승을 치었다”라며 거짓말을 했다.

피해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목격자도 없었다. 이에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뻔했다.

그러나 차량 정비사의 매서운 눈썰미, 그리고 끈질기게 범인을 찾은 수사관들의 의지 덕분에 뺑소니 사건이 해결됐다. 정비사가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단순히 차량만 수리해줬더라면, 이 사건은 조용히 묻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