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타이완’ 안돼, 애플 대만 협력업체에 ‘중국산’ 표기 요구

애플이 최대시장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분석

최창근
2022년 08월 8일 오후 12:56 업데이트: 2022년 08월 9일 오전 12:10

아이폰을 생산하는 애플이 대만 협력업체에 ‘대만산’ 대신 ‘중국산’으로 표기할 것을 요청했다.

8월 8일, 일본 니혼겐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 아시아판, 미국 블룸버그 등은 애플이 중국으로 가는 대만 업체의 제품이나 부품 원산지는 ‘대만, 중국(Taiwan, China)’ 혹은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로 표기하고, 표기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애플의 원산지 표기 수정 요구는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뒤 중국과 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나온 것으로 ‘중국 눈치 보기’ 논란을 일으켰다. 애플의 이번 요청은 아이폰 조립업체 중 하나인 대만 페가트론의 청젠중(程建中) 부회장이 8월 4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주최한 오찬에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난 다음 날인 8월 5일, 중국이 페가트론의 중국 쑤저우(蘇州) 공장을 점검한 뒤 나왔다.

중국 세관 당국은 수입신고서와 포장재, 관련 서류 등에 대만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표기를 금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품 상자나 수입신고서에 ‘대만산'(Made in Taiwan)’ 또는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 들어가면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대만 정부는 대만에서 중국으로 보내는 수출품 원산지를 통상국호 ‘대만(Taiwan)’ 내지는 공식국호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ROC)’으로 표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애플은 대만에 본사를 둔 폭스콘(Foxconn), 페가트론(Pegatron) 등에서 제품 생산을 위탁하고 있다.

애플은 대만 생산 부품을 받아 중국에서 조립 작업을 진행하는데, 오는 9월 아이폰14 출시를 앞두고 수입에 차질을 빚어 생산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메이드 인 대만(Made in Taiwan)’ 표기 부품이 선적 지연, 벌금, 전체 배송 거부 등으로 이어질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현재 원산지를 대만으로 표기할 경우, 중국 세관에서 선적을 보류 또는 검사해서 최대 4000위안(592달러, 한화 약 76만9000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선적을 거부할 수도 있다.

중국을 주요 시장으로 삼는 애플은 예전부터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저자세를 자주 노출해왔다. 애플은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2021년 10월 ‘쿠란 마지드’ 앱 등 무슬림 관련한 앱을 애플 앱스토어에서 삭제했다. 이는 신장위구르자치구 소수민족 위구르족을 겨냥한 중국의 탄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뒤따랐다.

애플은 2017년,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해외 인터넷 우회접속 프로그램인 가상사설망(VPN) 앱을 앱스토어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는 중국 공산당 당국의 정보통제, 검열에 힘을 보탠 것으로 해석돼 서방 언론과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 애플은 2017년 6월부터 시행된 중국 사이버보안법에 따라 중국 아이폰 고객 데이터를 중국 정부, 중국 국유기업이 소유한 서버에 양도했다. 중국 내에서 수집된 개인정보는 중국에 보관해야 하도록 의무화한 데 따른 것이다. 보안 전문가들과 애플 엔지니어들은 당시 뉴욕타임스(NYT)에 “애플의 양보로 중국 정부가 사용자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중국 앱스토어에서 5만5000개의 앱이 삭제됐다. 그중 3만5000개는 게임이고 나머지 2만 개는 외국 뉴스, 동성애 데이트 서비스, 암호화된 메시지앱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