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타격 中 기업들, ‘바이러스 채권’ 앞다퉈 발행…5조8천억 규모

판 위
2020년 02월 24일 오후 3:36 업데이트: 2020년 02월 24일 오후 10:34

뉴스 분석

미국 정부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무기와 보급품을 조달하기 위해 전쟁 채권을 발행한 것처럼, 현재 중국이 ‘바이러스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중국 기업은 2월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저렴한 단기 채권을 다량 발행했다.

신종 코로나 발원지인 후베이성의 기업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 영업 매장과 생산 설비 가동이 마비되면서 각 기업은 상당한 매출 타격으로 인해 운전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 금융 당국 또한 회사채 발행 요건과 승인 과정을 대폭 축소하고 은행권에 채권 매입을 적극 권고하며, 기업들에 경기 한파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지난달 31일에 발표된 ‘바이러스 예방 및 통제를 위한 채권 발행안’은 자금난에 내몰린 기업들에 낮은 이율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연쇄적 파산을 사전 방지케 하고, 전염병 통제를 위한 자금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해당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들은 확보한 자금 가운데 최소 10%를 바이러스 확산 방지하는 데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 ‘바이러스 통제 회사채(바이러스 채권)’로 불린다.

바이러스 채권 쿠폰 금리는 2~4%로 중국인민은행(PBOC)의 1년 만기 대출 금리 4.15%에 못 미칠 정도로 낮고, 금융 감독기관 승인 과정도 빠르다. 해당 채권은 일반적으로 6개월에서 12개월 후에 만기가 되기 때문에, 채권 발행 기업은 경제가 살아난다면 재융자할 수도 있을 것이다.

S&P 글로벌 마케팅 인텔리전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최소 28개 중국 기업들이 335억 위안(약 5조7988억원)에 달하는 채권을 발행했다. 이 밖에도 20여 개 기업이 추가로 채권 발행 계획이 있다고 전해졌다.

상하이 클리어링하우스 홈페이지의 채권정보에 따르면, 중국 동부 항공사·운송·건설·개발·에너지 분야 등 발행업체 대부분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업종이다. 이들 업체의 채권 이자율은 1~3%다.

선전 에어라인(深圳航空)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전염병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라면서 재정 부담을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영 에어차이나의 계열사인 선전 에어라인은 총 18억 위안(2억5600만 달러)에 달하는 3종의 바이러스 채권을 발행했으며, 모두 6개월 만기 채권이다.

바이러스 확산이후 선전 에어라인은 항공편 예약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취소됐고, 자금압박에 시달려 왔다. 업체는 발행한 채권 자금으로 기존 채권의 원리금을 상환하고 취소된 티켓의 환불과 위생용품 공급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자금난에 빠진 중국 기업들의 잇따른 바이러스 채권 발행은 중국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우선권을 찾는 노력을 포기했다는 신호다. 바이러스 채권이 큰 규모에 비해 짧은 기한으로 운영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투자자로서도 해당 채권은 제2의 유통시장이 없어 대부분의 발행 물량을 국영 은행과 기업이 소화하는 실정이다.

투자자들은 바이러스 채권의 낮은 금리로 채권을 소유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위험부담에 상응하는 이익을 얻지 못하며, 바이러스 채권 발행업체는 일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분야나 지역에 있는 재정적으로 궁핍한 회사로 투자 신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종 코로나의 기세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이들 기업이 경제가 회복되기 전에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채무 불이행이나 파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항저우에 본사를 둔 한 채권 펀드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시장의 힘이 (바이러스 채권) 안전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 말했다.

샤먼 항공(廈門航空)은 12일 4억 위안(5700만 달러) 규모의 바이러스 채권을 2.30% 이자율, 177일 만기로 발행했다. S&P에 따르면 해당 채권은 샤먼 항공이 투자자들에게 2.55%의 이자를 지불하고 2019년 11월 27일 재발행한 같은 조건의 채권(176일 만기, 4억 위안)보다 낮은 조건이다.

채권 시장의 관례상 올해 2월 채권 발행의 금리 인하를 정당화할 방법은 없다. 바이러스 채권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투자자들은 전국 노선의 여행 제한으로 승객 수가 줄어든 샤먼 항공의 취약한 재정 상태를 반영해 2.30%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요구했을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상황으로 인해 현재 거의 모든 채권 구매는 국영 은행이나 기업이 감당하고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은행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에 놓여 있다.

따라서 바이러스 채권은 바이러스 때문에 타격 입은 회사를 위한 정부 주도의 구제금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