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정치학자 옌자치 “시진핑 치하 중국, 위안스카이의 ‘중화제국’ 시대로 돌아가”

정향매
2023년 06월 9일 오전 6:06 업데이트: 2023년 06월 9일 오전 6:08

1989년 톈안먼 사건 후 해외로 망명해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오고 있는 저명 학자 옌자치(嚴家其)가 “시진핑 집권하에 중국 정치는 ‘중화제국(中華帝國)’ 시대로 퇴보했다”고 주장했다. 

옌자치는 해외 중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정치 브레인’으로서 중국과학원 철학연구소 재직 시절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장에게 발탁돼 이론무허회(理論務虛會)에서 중국 공산당 간부 종신제 폐지를 주장, 관철했다. 이후 중국사회과학원 정치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았다. 2014년 사망한 천이쯔(陳一咨) 전 국무원 경제체제개혁연구소 소장과 더불어 자오쯔양의 대표적인 측근이었다. 

1986~1987년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정치개혁판공실에 몸담아 중국 정치 체제 개혁에 참여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민주중국진선(民主中國陣線) 초대 주석을 지냈다. 저서로 동양판 군주론으로 불리는 ‘수뇌론(首腦論)’, ‘문화대혁명 10년사’, ‘나의 사상자전(我的思想自傳)’ 등이 있다.

중화제국은 1912년 1월 1일 성립한 아시아 첫 민주공화국 중화민국을 대신해 1916년 위안스카이(袁世凯)가 세운 제국이다. 중화민국 총통이던 위안스카이는 ‘제국’을 선언하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존속 기간은 12월 12일 위안스카이의 황제 공식 즉위를 기점으로 100일 남짓이다. 

옌자치는 지난 5월 1일(현지 시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중국 정치는 중화제국 시절로 후퇴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과학 기술 방면에서 현대화의 길에 들어섰다. 이는 분명하다. 중국 경제가 발전한 데는 세계무역기구(WHO) 가입, 서방의 경제 관리 체제 흡수 등과 관계가 있다. 다수 중국 경제학자들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중국은 중화제국 수준으로 후퇴했다. 중국 정치가 경제, 과학기술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서방 국가가 아니라 중국 정부가 스스로 저해 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옌자치(嚴家其) 전 중국사회과학원 정치연구소 소장. | 에포크타임스

2018년 3월 11일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투표를 통해 1982년 수정된 ‘헌법’ 안의 ‘국가 주석 2기 이상 연금 금지’ 조항을 삭제했다. 옌자치는 이날 발표한 글에서 “오늘(3.11)은 중국 역사의 분수령이다. 오늘부터 개혁개방은 막을 내리고 중국은 시진핑 ‘황제’의 새로운 제국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시진핑이 제국 시대로 회귀할 수 있었던 4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옌자치는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107년간 중국을 통치한 위안스카이·장제스·마오쩌둥·시진핑 등은 모두 강력한 집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이들은 ‘민국’ ‘공화국’ 명목으로 최고 권력을 장악했으나 사실은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 ‘천 년의 군주제’가 ‘백 년의 공화제’를 압승한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1911년 우창(武昌)봉기가 시발점이 된 신해혁명은 마지막 왕조 청(清)을 멸망시키고 중화민국을 성립시킨 공화혁명이다.  

그는 이어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전직 중국 국가주석들의 집권기에 빈부 격차가 점점 악화됐다. 이는 시진핑이 군주제를 회복하는 데 길을 터줬다”고 했다. “마르크스주의가 러시아, 동유럽, 중국, 북한 등의 국가에 전파되면서 이들 국가에는 공산주의 제국 체제가 성립했다. 사실상 군주제이지만 통제받는 국민들에게는 빈부 격차를 극복하고 ‘균빈부(均貧富)’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옌자치는 덩샤오핑이 주도해 수정한 1982년 헌법의 결함을 ‘시(習)황제’를 만든 세 번째 이유로 꼽았다. 그는 “1982년 수정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국가 주석과 부주석은 2회 이상 연임을 금지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해당 헌법에는 ‘정부 수반(국무원 총리)’과 ‘국가 원수(국가주석)’ 외에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제도를 인정했다. 헌법 제93조항에 의하면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회원회가 국가 군대를 이끈다”며 “중국에서는 정부 수반이나 국가 원수가 아닌 사람이 최고 권력을 거머쥔 것이다. 이는 1989년 중국의 정치 재앙이 발생한 이유이자 시진핑이 군사 권력을 믿고 쉽게 군주제를 회복한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진핑의 5년 부패 척결 캠페인의 본질은 공산주의 국가 집권자들이 당내 반대파를 숙청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가 5년간 반부패 명목으로 진행한 군 체제 개혁과 숙청의 목적은 군에 대한 절대 통제를 장악하기 위함이다”라고 분석했다. 

옌자치는 “21세기인 오늘날은 100년 전 위안스카이 시대와는 다르다. 시진핑의 군주제는 길게 유지할 수 없으며 중국은 끝내 새로운 공화국으로 진입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