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설 찔렸나? 中 관영매체 “국가안전부 부부장이 회의 주재” 일제 보도

2021년 06월 20일 오후 5:12 업데이트: 2021년 06월 21일 오전 10:17

중국 정보기관 고위 관리가 미국으로 탈출했다는 미 보수매체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18일 중국 관영매체가 일제히 ‘국가안전부 책임자’의 동정 기사를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신화통신, 인민망, 차이나타임스 등은 국가안전부의 좌담회 개최 소식을 알리는 동일한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즉각 다른 관영매체 수십 곳에 그대로 전재됐다. 모두 사진과 영상 없이 글만 실렸다.

관영매체에 실린 기사들은 제목과 내용이 거의 같았으나 간담회 주재자에 대한 표기에서 차이를 보였다. 어떤 기사는 이를 ‘국가안전부 관련 책임자’로 표기했지만 다른 기사에서는 이름과 직책을 밝혀 ‘국가안전부 부부장 둥징웨이(董经纬)’로 표기했다.

그 외에 ‘강조했다’를 ‘지시했다’로 쓰는 등 한두 군데 세부적인 표현에서만 달랐다.

국가안전부는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대외 정보업무를 총괄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의 관리와 활동 상황을 전한 관영매체의 보도는 매우 이례적이다. 지금까지는 관영매체는 국가안전부의 역대 부장(장관)의 이름 정도만 언급하는 게 관행이었다.

따라서 관영매체들이 이날 국가안전부의 좌담회 개최 소식을 일제히 보도한 배경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관영매체 환구망(环球网)는 좌담회 주재자에 대한 표기가 오락가락했다. 환구망은 이날 오후 4시 5분에 올린 기사에서 간담회 주재자를 ‘국가안전부 관련 책임자’라고 표기했지만, 한 시간 반 뒤 이를 ‘국가안전부 부부장 둥징웨이’로 고쳤다. 그리고 다시 30분 뒤 원래 표기인 ‘국가안전부 관련 책임자’로 되돌렸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망에 실린 국가안전부 간담회 주재 기사. 왼쪽이 초기 버전, 오른쪽이 수정 버전이다. 간담회 주재자 표기가 ‘국가안전부 관련 책임자’에서 ‘국가안전부 부부장 둥징웨이’로 바뀌었다. 이 기사는 30분 뒤 다시 원래 표기로 되돌려졌다. | 환구망 화면 캡처
중국 관영 CCTV 웹사이트가 보도한 국가안전부 간담회 기사. 회의 주재자가 ‘국가안전부 부부장 둥징웨이’로 표기됐다. | CCTV 웹사이트 캡처

반면 이날 관영 CCTV 웹사이트에 오후 10시 2분에 게재된 같은 기사에는 간담회 주재자가 ‘국가안전부 부부장 둥징웨이’로 표시돼 있다.

관영매체 내부에서 이번 보도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관에 대한 이례적 상세 보도

이날 기사는 분량은 길지 않았지만, 국가안전부의 간담회 개최는 물론 간담회에서 오간 내용까지 비교적 자세히 보도했다.

기사에서는 국가안전부 관리들이 방첩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학습과 토론을 진행했으며 “제대로 된 방첩을 위해서는 간첩은 물론 내부 첩자와 배후 물주까지 체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또한 “특히 몇몇 개인은 기꺼이 내부 첩자가 돼 외국의 정보기관이나 적대 세력과 은밀하게 결탁해 반중 활동을 하고, 일부는 배후 물주 노릇을 하며 적대 세력에 자금을 지원해 반중 활동을 지원한다”고 밝혀 현재 당과 정부 내부에서 외국과 내통하는 사람이 늘고 있음을 시인하기까지 했다.

‘반중 활동’은 중국 공산당이 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몰아세울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과 중국을 반대하는 것을 혼동시켜 중국 대중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중국 관영매체의 이례적 보도와 국가안전부 간담회 주재자에 대한 엇갈린 표기와 관련해서는 최근 미국 매체의 보도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 보수매체 레드 스테이트와 몇몇 언론인은 최근 중국에서 역대 최고위급 인사가 미국으로 탈출해 미 정보기관에 협조하고 있으며, 이 인사가 둥징웨이 국가안전부 부부장으로 확인됐다는 보도를 냈다. 현재 이 소식은 중화권 네티즌들을 통해 소셜미디어에서 급속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관영매체가 ‘둥징웨이 부부장이 중국에서 간담회를 주재했다’는 보도를 내 그의 망명설을 진화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둥징위에 부부장을 직접 언급할 것인지 아니면 ‘국가안전부 관련 책임자’로 표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던 관행이 남아 있어 혼선이 빚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한 네티즌은 “중국 공산당이 더 강하게 반박할수록 그 루머는 사실일 가능성이 커진다”며 동일한 기사를 전재하는 데도 내용이 달라지는 중국 관영매체에 대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하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