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 95세로 사망

에포크타임스 에디터
2019년 09월 8일 오후 3:11 업데이트: 2020년 01월 2일 오전 11:59

아프리카 남부 내륙국 짐바브웨를 37년간 통치하다 2년 전 축출된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이 95세를 일기로 6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에머슨 음랑가과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무가베의 사망을 보도하며 “우리나라와 대륙의 역사에 대한 그의 기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그의 영혼이 영원한 평화 속에 잠들기 바란다”고 애도했다. 짐바브웨 현 대통령은 무가베의 오른팔이자 부통령이었다.

AP통신은 무가베의 사망 소식을 보도하며 그에 대해 경제 혼란, 선거 논란, 인권 침해로 인해 집권 후반기가 망가졌다고 소개했다.

무가베는 196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옛 로디지아의 백인 정부를 무너뜨리고, 1980년 현재의 짐바브웨로 새롭게 독립시킨 독립투사 출신이다.

무가베는 공산주의 정책을 받아들인 짐바브웨공화국의 초대 총리를 거쳐 198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무가베는 인종 화합 정책을 선언하고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 흑인에게도 교육과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며 집권 초반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았으나, 정권 찬탈과 37년의 장기 집권을 위해 대대적인 학살을 벌이기도 했다.

Robert Mugabe
짐브바웨 오픈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 2017.11.17 | AP Photo/Ben Curtis, File=연합뉴스

AFP 통신에 따르면 1884년 무가베는 북한의 지원을 받아 훈련된 특수부대가 구쿠라훈디 작전이란 이름으로 마타벨레랜드 남부지역의 은데벨레족 민간인 약 2만 명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은데벨레족이 무가베의 정적 은코모를 지지한다는 이유 때문에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가베는 1980년대에 북한을 여려 차례 방문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다 1994년 한국과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한국과 관계가 증진되자 북한 측에서 1998년 주 짐바부웨 북한 대사관을 폐쇄했다.

1985년 선거 준비 기간 마타멜레랜드는 중국 홍위병을 본떠 세워진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 청년단에 의해 더욱 잔혹한 폭력 사태에 휩싸였다.

무가베의 토지개혁 정책은 가장 큰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무가베는 식민지 시절 백인들에게 유리하도록 이뤄진 토지 소유의 불균형을 바로 잡고 흑인들을 위한 경제성장 정책을 시행한다며 몰수를 정당화했다.

이후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로 불리던 짐바브웨가 농업 생산성 저하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등 국가 경제 파탄에 빠져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추락했다.

경제위기를 이겨보겠다고 마구 화폐를 찍어내 짐바브웨 달러 가치는 곤두박질 쳤다. 1000조 짐바브웨 달러로 살 수 있는 것이 고작 달걀 3개였다. 물가 상승률 매일 98%, 하루가 지날 때마다 두 배로 값이 뛰었다는 것이다.

결국 2009년에 인플레가 무려 5000억%로 치솟으며 정부가 짐바브웨 달러를 포기하고 미국 달러화를 통용 화폐로 채택하는 신세가 됐다.

Robert Mugabe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 2012.11.7 | AP Photo/Tsvangirayi Mukwazhi, File=연합뉴스

최근 짐바브웨는 연간 물가 상승률 175%를 기록하며 10년 전 경제 위기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다수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짐바브웨 통계청은 7월 15일 성명을 통해 올해 6월 연간 인플레이션율이 175.66%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 20년간 짐바브웨에서 경제 위기가 지속하는 가운데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났다.

응낭가과 현 대통령은 경제재건을 약속하며 무가베의 뒤를 이었지만,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