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

류시화
2023년 03월 13일 오전 9:18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9

16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아 교황의 공식 관저인 ‘사도 궁전’의 ‘서명의 방’ 벽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라파엘로가 그린 벽화 중 한 작품이 바로 프레스코화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인 ‘아테네 학당’입니다.

예술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조르조 바사리는 이 작품에 대해 “라파엘로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던 현자들을 한곳에 모아 조화를 이루게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작품 속에는 50명가량의 수학자, 예술가, 철학자가 등장합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라파엘로는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플라톤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는 공기와 불처럼 무형의 요소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회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오른편에 서 있습니다. 그는 한 손에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다른 손을 앞으로 뻗고 있습니다. 그는 물과 흙처럼 유형의 요소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녹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플라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론(The Republic)’에서 “우리가 오감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진실한 세계, 즉 형태로 이뤄진 세계(형태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또 다른 저서 ‘티마이오스’에서는 “‘형태계’는 신성한 장인이 창조한 수학적으로 정리되고 구조화된 세계다.”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림 속 플라톤이 가리키는 천장에는 기하학적 형태의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기하학적 형태가 우주 구조의 질서와 조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장의 구조물은 플라톤의 모델인 다 빈치가 그의 동료인 루카 파치올리의 저서 ‘신성한 비례’의 삽화로 그린 입체도형과 동일한 형태입니다.

아폴론과 아테나, 질서와 균형

그림 속에는 수많은 학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아폴론과 아테나 두 신의 동상이 있습니다.

아폴론은 아름다움, 수학, 질서의 신입니다. 그의 왼손에는 수학적으로 정해진 음계가 있는 현악기가 들려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아테나는 전략과 지혜의 여신입니다. 그녀는 메두사의 머리가 붙어 있는 방패, ‘아이기스’를 균형 있게 들고 있습니다. 메두사의 눈을 본 이들은 누구든 돌로 변해 무감각해집니다. 이는 플라톤의 철학이 냉정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기에 감정적인 부분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플라톤은 진정한 아름다움과 진리는 신성한 장인, 즉 구조화된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감정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형태로 구체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자연을 모방한 예술은 겉모습을 넘어선 진정한 진리를 전달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옆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에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사람들 위 천장 쪽을 향해 손을 뻗은 플라톤과는 대조되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무리를 나눠 토론하고 고민하는 광경을 지향합니다.

플라톤은 자신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에 있는 것들을 중시했습니다. 그림 양쪽의 신이 의미하는 것과 천장의 기하학적인 형태, 즉 균형과 질서, 논리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의미한다고 여겼습니다. 그와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 앞에 펼쳐진 모습을 중시했습니다. 그는 인간과 자연, 우리의 삶 속에서 진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와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자연을 뛰어넘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바로 우리 앞에 당장 이해해야 하는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파엘로는 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 학문과 진리를 추구하는 다양한 행동을 하도록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에게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감정을 통해 나아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간의 교류에서 타인의 정서를 대리 경험 할 수 있기에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우리가 발전한다고 여겼습니다. 감정적 반응을 통해 정화하는 경험을 얻고 그를 통해 우리가 더 나아진다는 것입니다.

예술은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함께 여러 방면의 감정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는 우리가 라파엘로의 작품을 보며 느끼는 것과 동일합니다. 라파엘로가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를 살았던 인물들을 한곳에 모아 배치하고,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며 느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미학과 진리를 추구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진정한 아름다움과 진실을 추구했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통해 많은 것을 이뤄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