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선 압승

남창희
2022년 05월 10일 오전 10:23 업데이트: 2022년 05월 10일 오전 10:23

독재 정권 안 겪은 청년층 공략 효과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64) 전 필리핀 상원의원이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했다.

9일 실시된 선거 종료 후 개표가 93.8% 진행된 시점에서 마르코스 주니어는 2990만 표를 확보해 당선에 필요한 과반(2750만표)을 200만 표 이상 넘겼다.

이날 같이 치러진 부통령 선거에서는 사라 두테르테(43) 다바오 시장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두테르테는 로드리고 두레르테(77) 대통령의 딸이다.

필리핀 전직 두 대통령의 아들과 딸이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되면서, 필리핀의 민주주의 전환이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르코스 가문은 지난 1986년 ‘피플파워 혁명’으로 축출돼 하와이로 도피 생활했으며, 이번 주니어의 당선으로 36년 만에 다시 집권했다.

주니어의 아버지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대통령은 축출 전까지 21년간 필리핀을 철권통치했으며, 인권유린과 부패로 악명 높았다.

주니어는 유세 기간 내내 가족에 관한 발언을 피했으며, 경쟁 후보와의 토론도 회피했다. 다만, 국민 통합과 경제 재건이라는 슬로건에만 집중했다.

닛케이 아시안 리뷰는 정치 평론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마르코스 가문이 ‘피플파워 혁명’ 이후 지속되는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국민들의 좌절과 정치 개혁 부재로 인해 부활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동시에 주니어가 자신의 아버지 집권 시절 벌어진 잔학 행위를 부인하고, 마르코스 시대를 번영의 시대로 묘사하는 대규모 소셜미디어 홍보 전략으로 독재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젊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였다고 평가했다.

이번 필리핀 대선의 결과는 미국과 중국이 대결을 펼치는 인도-태평양 지역 판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필리핀 대통령인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집권 초기 친중 행보를 보였으나, 남중국해 영토 분쟁을 계기로 집권 후기에는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 쪽에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새 대통령이 집권하는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서 관계를 재설정할 기회를 얻게 된다.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 그룹의 동남아 및 남아시아 분석가인 피터 멈포드는 마르코스 주니어가 경제 재건을 내세운 만큼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 적잖은 기술관료와 경제 전문가들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마르코스 주니어 정부가 집권하면 국제 투자자들은 필리핀의 부패와 족벌주의가 악화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필리핀의 새 대통령이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조치를 취할 것인지, 아니면 요직에 친인척이나 측근을 앉힐 것인지가 향후 수주간 주된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선거 결과는 이달 말 공식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