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상까지 받은 친환경 ‘우렁이 농법’의 웃픈 탄생 비화

이서현
2021년 02월 14일 오전 10:44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전 11:25

‘우렁이 농법’은 국내 대표 친환경농법 가운데 하나다.

제초제 대신 벼는 놔두고 잡초만 먹어 치우는 우렁이를 제초꾼으로 활용하는 것.

놀랍게도 ‘우렁이 농법’을 처음 개발한 이는 우리나라 농부다.

그런데 이 농법의 탄생 비화가 은근히 배꼽을 잡게 한다.

이와 관련해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본인 할아버지의 업적을 자랑하는 한 누리꾼의 글이 화제가 됐다.

내용은 이랬다.

“우리 할아버지가 30~40년 전에 밭에 농약 주다가 쓰러졌다가 깨어난 후 그 당시 먹고살기도 빠듯할 때였는데 무농약으로 농사짓는다고 잡초 나면 혼자 손으로 다 뽑으면서 농사지음. 약 안 주니까 수확시기 돼서 쌀 수확하면 다른 집보다 반도 수확 못했음. ㅋㅋㅋㅋㅋㅋ. 할아버지가 물고기 미꾸라지 새뱅이 이런 거 좋아해서 논 한쪽 구석에 깊게 웅덩이 파놓고 길렀거든? 이게 재밌으니까 만날 논에 가서 일할 맛이 난 거 같아. 그렇게 풀 뽑으면서 10년 넘게 일하던 중에 아빠가 우렁이 식용으로 양식도매 사업한다고 100만원 주고 우렁이 사왔는데 이게 온도 맞춰줘야 되니까 까다로운 거야. (아빠가) 만날 집에서 일도 안 하고 우렁이만 보고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화나서 논에 (우렁이를) 갖다 버림. 할아버지는 만날 잡초 뽑으며 다니다가 잡초가 안 나는 거 발견해서 우렁이 농법 개발함.”

tvN ‘삼시세끼’

긴가민가했던 이 누리꾼의 글은 사실이었다.

누리꾼의 할아버지는 충북 음성에서 농사를 짓던 최재명 씨였다.

1979년, 할아버지는 지독한 농약 중독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고추밭에 농약을 뿌리다 쓰러져 몇 날 며칠을 몸져누워야만 했다.

동생까지 담배밭에 농약을 뿌리다 쓰러지자 할아버지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무농약 농사는 쉽지 않았다.

3년이 넘게 논에서는 제대로 쌀이 나지 않자 면사무소까지 나서서 “제발 농약을 치라”고 독촉할 정도였다.

무작정 잡초만 뽑으며 견뎌야 하는 고된 날이었다.

그때 논 가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새우와 미꾸라지 등을 키웠는데, 그 재미에 힘든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변변한 소출 없이 10년 넘게 유기농법을 이어갔다.

생전 인터뷰 중인 최재명 할아버지 | 청주KBS

그러던 1990년, 우연한 계기로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됐다.

할아버지의 아들이 우렁이 양식을 하겠다며 남미 열대산 왕우렁이를 100만 원어치나 들여왔다.

온도조절이 까다로워 양식에 실패하자, 할아버지는 이 우렁이를 논에 갖다버렸다.

이후 신기하게도 논에 잡초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이를 연구해 ‘우렁이 농법’을 창시했고, 특허를 낸 후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이를 주변에 널리 알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훈장을 수상한 건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엔 상장까지 받았다.

할아버지는 지난 2014년 8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우렁이 농법은 우리나라 벼 재배면적의 15.2%를 차지한다.

누리꾼들은 “진짜였어” “결실을 맺는 순간” “정말 대단하시다” “올곧게 살아오셔서 축복도 왔나 보다” “은혜 갚은 우렁이 같다”라며 놀라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