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국민 소통 “청와대 경호체계 개편없이 쉽지 않을 것”

진태영
2022년 04월 5일 오후 1:40 업데이트: 2022년 04월 7일 오후 12:02

전문가들 과잉 경호 배경으로 “대통령 직속 운영 시스템” 지적
미국, 일본, 대부분의 유럽국에서 경찰이 국가원수 행정수반 경호 담당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소통을 앞세우며 ‘용산 대통령 시대’를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더라도 청와대 경호체계를 개편하지 않으면 소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아울러 현행 대통령 경호처 인력과 예산 규모가 지나치게 크며, 과잉 경호로 인하여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을 방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현재 청와대 경호처 소속 인력은 69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곽을 경계하는 경찰·군병력을 포함하면 3000명 이상이 청와대를 경호하고 있다. 이 같은 거대 경호 인력이 안전을 명목으로 대통령과의 접근을 통제하면 집무실을 이전하더라도 소통시대를 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2020년 회계연도 기준 경호처 예산은 969억 9600만 원에 달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통령경호처(경호처)의 과잉 경호 논란도 지속되어왔다. 2019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경호관이 소지한 기관단총이 노출되자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2020 10월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문 대통령이 사전 간담회를 열던 중에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조금 늦게 국회의장실에 입장하려하자 경호처 직원들이 몸수색을 시도해 야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대통령 경호 조직 축소, 경호 업무 경찰 이관이 논의되어 오고 있다.  1963년 설립 이후 ‘경호실’ 명칭은 2008년 조직 축소 개편으로 대통령실 소속 ‘경호처’로 변경됐고, 종전 장관급이던 경호실장도 차관급 경호처장으로 격하됐다. 이후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다시 경호실로 환원되고 실장 직급도 대통령 비서실장과 동급인 장관급으로 격상됐다.

지난 2017년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경호실 폐지, 경찰청 산하 대통령경호국 신설’을 공약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선진국 대부분은 대통령 직속 경호실이 없다” “권력의 상징이었던 청와대 경호실을 경찰청 산하 대통령경호국으로 위상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경호 업무 경찰 이관’ 공약은 보류되어 시행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과잉 경호의 배경으로 대통령 경호처가 대통령 직속 특별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문제 삼기도 한다. 요인 경호를 담당하는 조직은 경찰청, 국방부에도 존재하지만 오로지 경호 임무만을 전담하는 국가 기관은 대통령경호처가 유일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국가원수에 대한 경호는 경찰 조직이 담당한다.

입헌군주제하 의원 내각제 국가 영국은 수도  그레이터런던(Greater London)을 관할하는 런던 광역경찰청(Metropolitan Police Service, MPS)  보안경호부 산하 경호사령부에서 왕실 인사, 정계 요인 경호를 책임진다. 그중 왕실요인경호대(Royalty and Specialist Protection, RaSP)가 국왕과 왕실 인사,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 경호를 담당한다.

영국과 같은 정체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수도 도쿄도(東京都)를 관할하는 경시청(警視廳) 경비부 경호과가 요인 경호를 담당한다. 시큐리티 폴리스(Security Police)의 약칭 ‘SP’로 불리는 이들의 경호 대상은 내각 총리대신(총리), 국무대신(장관)을 포함한 정부 요인과 주일본 외교사절단 등이다. 국가원수인 일왕(천황) 경호는 중앙 경찰기관인 경찰청(警察廳) 산하 황궁경찰본부(皇宮警察本部) 소속 황궁호위대가 전담한다.

시큐리티 폴리스(Security Police)의 약칭 ‘SP’으로 불리는 일본 경시청(警視廳) 경비부 경호과 소속 경호 차량들. 일본은 수도 도쿄도(東京都)를 관할하는 경시청에서  총리, 각료 등 요인 경호를 담당한다.

형식상 국가원수 연방 대통령이 존재하고 국정운영은 행정 수반인 연방 총리가 담당하는 독일은 연방 내무부 산하 연방범죄수사청(BundesKriminalamt·BKA)에서 국가원수 대통령, 행정 수반 총리 경호를 담당하고 있다. 독일의 연방범죄수사청 인력은 약 4500명에 달하지만 경호 담당 인력은 550여 명 선에 그친다.

대통령제 국가 미국은 한국과 유사한 별도 경호 조직을 두고 있지만 이 역시 대통령 직속의 독립 기관 형태는 아니다. 미국은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DHS) 산하 비밀경호국(United States Secret Service)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 경호를 담당한다. 링컨 대통령이 창설한 재무부 비밀경호국은 원래 위조지폐 단속을 하는 조직이었으나 190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암살 후 요인경호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관할 부처도 2003년 재무부에서 국토안보부로 변경되었다. 비밀경호국장 직급은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정도이다.

야수(Beast)라는 별칭을 가진 미국 대통령 전용차와 경호원들. 미국은 국토안보부산하 비밀경호국(United States Secret Service)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 경호를 담당한다.

이 밖에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는 경찰 조직 내에서 국가원수나 행정 수반 경호를 담당한다.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과 총리 등 정부 요인 경호는 경찰 소속 요인경호대가 전담한다.

이 속에서 5월 10일 취임을 앞둔 윤석열 당선인은 모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경호를 지금처럼 (과하게) 할 것 없다.”고 밝혔다. “제왕적 대통령 이미지를 내려놓고 국민과 가까이 소통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에서 경호체계 개편도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대통령경호처가 지금처럼 대통령 직속의 독립 기관 형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단순히 헌법상 행정부 수반만이 아닌 국가원수와 국군통수권자의 권한을 지닌 이상 경호를 간소화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북한과 휴전 중인 상태로 국가안보 측면에서 다른 선진국가와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은 1968년, 1974년, 1983년 등 수차례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