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특집] “차기 대통령은 ‘교육 대통령’ 돼야”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제20대 대선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 ⑧

최창근
2022년 02월 21일 오후 8:09 업데이트: 2022년 03월 17일 오후 5:26

에포크타임스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대선 특집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향후 5년의 운명을 판가름할 차기 대통령이 제시해야 할 비전, 새로운 정부가 수행해야 할 국정과제를 각 분야 전문가의 고언과 해법을 통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 여덟 번째 순서로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만나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대표 분야인 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은 대표적인 ‘교육 혁신가(educational innovator)’이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교육정책과 개혁 연구에 천착해 오고 있으며 정부에 참여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기도 했다.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국민경제제도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1991~97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재직 시절 고(故)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등과 공동으로 교육개혁포럼을 창립했고 그 결과물은 ‘자율과 책무의 학교개혁: 평준화 논의를 넘어서(2002)’ ‘자율과 책무의 대학 개혁: 제2단계의 개혁(2004)’ 등 두 권의 보고서에 담겼다. 보고서는 정부 교육개혁의 지침서가 되기도 했다. 1998년 부터는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KDI School) 교수로 자리를 옮겨 교육정책 연구에 매진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돼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했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하며 ‘교육 정책 사령탑’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위원장,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를 거쳐 유엔(UN) 글로벌 교육재정위원회 위원, 울산대학교 이사, 케이정책플랫폼 이사장,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교육협회는 유엔 교육특사인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전 영국총리가 의장인 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Financing Global Educational Oppotunities)의 ‘아시아 허브’로 2020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차기 대통령은 교육 대통령이 돼야 하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의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역설하는 이주호 이사장과 인터뷰는 2월 16일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실에서 진행됐다.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대학교수, 국회의원, 대통령 수석비서관, 정부 각료 등으로 활동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교육정책 전문가이다.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은 파괴적 혁신 필요
하이터치 하이테크가 미래 교육 개혁의 핵심
차기 대통령은 교육을 국정 우선 순위에 둬야
교육부 장관은 교육 혁신의 촉진자 역할해야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교육 정책의 방향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요?

‘디지털 대전환’이 화두인 오늘날에 대해서 이주호 이사장은 ‘지식과 데이터 팽창의 시대’로 명명했다. 대학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위해 움직이지 않으면 미래를 위한 교육을 수행하지 못하는 곳으로 전락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급격한 시대 변화 발맞춰야 하는 교육의 역할이 그만큼 더 중요해졌습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칠까’가 교육 변화의 두 가지 핵심 키워드입니다.” 이어지는 이주호 이사장의 설명이다. “지식이 방대해지더라도 인공지능(AI)이 데이터를 축적하는 역할을 대신한다면 인간은 기본적인 지식 암기보다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교육 현장은 이에 따라 과감하게 암기 교육 비중을 줄여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기본 개념을 이해시켜준 다음에는 학생 개별 특성을 살린 능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주호 이사장이 제시한 인간의 주요 역량에는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가 자리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 리터러시가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산과 암기는 AI에게 맡기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능력 신장이 필수라는 말이죠.” 이주호 이사장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 ‘HTHT(High Touch, High Tech)’모델을 제시했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 개념 제시
한국 대학은 파괴적 혁신 없이 생존 불가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로서 동시대에 살았던 케인스와 함께 경제학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등을 개념 정립했다. 슘페터의 이론과 사상은 경제학, 경영학, 행정학, 정책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주호 이사장은 교육 분야에 이를 응용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학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필요하다 주장하였다.

‘HTHT’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HTHT’는 ‘HIGH TOUCH HIGH TECH(하이터치 하이테크)’의 줄임말입니다. 먼저 하이테크는 AI를 활용한 맞춤형 교육을 의미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반면 하이터치는 학생들의 감성과 창의성 부분을 교육하는 것으로, AI가 아닌 교사가 수행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교사가 데이터 러닝을 통해 개별 맞춤화된 학습지도, 능동적 학습경험, 멘토링, 사회정서학습을 실행하는 HT(High Touch)와 AI 기반 기술이 학생을 분석해 개별 학생의 수준과 니즈에 맞춰 교육을 제공하는 HT(High Tech)의 결합입니다. 요약하자면 교사는 학생의 창의성과 인성 배양에 초점을 맞추고 암기 등 학력은 AI가 책임지는 개념입니다.” 이주호 이사장은 코로나 19 시대를 맞이하여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발생한 ‘교육 격차’ 문제도 HTHT가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교사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주호 이사장은 “교사는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고 단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AI 개인 교사는 학생의 상태를 진단하고 맞춤형 분석을 해줄 수는 있지만 학생 간의 수평적 프로젝트를 통한 창의성 계발을 해주는 주체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습니다. HTHT를 통하여 교사는 학생별 멘토링을 통한 인성교육, 협력‧공동체성을 배울 수 있는 정서적 역량 교육 강화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HTHT에서 중요도를 따지자면 ‘High Touch’가 더 중요합니다. 한국 교사·교수 집단의 인적 수준은 뛰어납니다. 이들이 HTHT를 받아들여서 현장에 적용하는 데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실제 베트남에서는 ‘HTHT베트남 프로젝트’를 통해 수학교육 분야에서 HTHT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25개 대학이 HTHT 컨소시엄에 참여해 원격 교육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이 터치와 하이 테크가 결합한 HTHT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포스트 팬데믹 시대 교육의 역할은 어떻게 재정의 될까요?

이주호 이사장은 교육의 ‘지각 변동’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교육계의 현실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칭찬했지만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한국 교육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바뀌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한국 교육을 부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라고 말한 이주호 이사장은 “지금은 오히려 해외 교육 전문가들이 왜 한국은 우수한 교사집단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임에도 교육 변화가 느린지에 대해서 의문점을 가진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난 10년간 글로벌 교육 환경 변화를 고찰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12년을 ‘무크(MOOC)의 해’로 규정하면서 미국 스탠퍼드대, MIT의 명강의를 모두가 무료로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는 교육 혁신에 열광했습니다. 이후 무크의 일방향 온라인 강의의 한계점이 드러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AI(인공지능) 튜터(개인 교사) 등 에듀테크(edutech) 투자 붐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중국도 이에 가세하면서 에듀테크는 차세대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교실에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습니다. 한편 뇌과학·인지과학 분야 연구 결과 주입식 시험 중심 교육의 문제점이 과학적으로 밝혀지면서 프로젝트 학습,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교사와 학생의 역할을 바꾸어 학생이 수업을 주도하는 교수학습법)’ 등 새로운 교수·학습 방식도 빠르게 확산 중입니다. 특히 미국 대학 중에서 연구와 교육에서 ‘수월성(excellence)’을 유지하면서도 훨씬 더 많은 학생에게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성공적으로 도입하는 ‘제5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하여 신산업 혁신생태계의 허브로서 대학의 역할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교육 지각 변동의 핵심에 대해서 이주호 이사장은 ‘100년도 더 된 낡은 교육 모델을 완전히 새로운 모델로 바꾸는 혁명적 변화’라고 정의했다. 지난날이 낡은 교육 모델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잠재력과 수요를 무시하고 표준화된 획일적 수업에 치중하는 대량 생산의 공장형 방식이자 상위 교육기관으로 올라갈 때마다 아이들을 솎아내는 선별 중심의 교육이었으며 많은 학생을 실패하게 하였던 선별 중심의 공장형 교육 모델이 퇴장하고 모두에게 맞춤교육을 제공하여 모두를 성공시키는 새로운 교육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선별 중심의 공장형 교육모델 퇴장
모두에게 맞춘교육을 제공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 등장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재임 시절 일선 초등학교 현장방문 중인 이주호 이사장. 그는 제17대 국회의원 시절 자신의 교육 철학과 정책 비전을 담은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실천적 한국교육정책론’을 출간했고 이 책은 이명박 정부 교육 정책의 청사진이 됐다.

교육 지각 변동 대응 방안에 대해 더 설명해 주세요.

“교육의 지각 변동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누가 무엇을 배울까’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900년대에는 지식의 양이 2배가 되는 데 100년 걸렸으나 현재 사물인터넷(IOT) 기반사회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는 단 12시간이면 2배가 됩니다. 단순 지식을 암기할 것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암기보다 핵심 개념의 이해 중심으로 지식 기반을 튼튼히 하고 그 토대 위에 데이터·공학·인문학 등을 포괄하는 고차원적 인지 역량을 키우고 창의력·비판적사고력·협력·소통 역량 등 창의성과 인성을 배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하느냐’에서도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AI 보조교사와 같은 첨단 에듀테크를 활용하여 모든 학생에게 맞춤학습 기회를 제공하면서 교사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교사는 인간적 연결을 강화하며 학생의 창의성과 인성을 키워주는 프로젝트 학습 등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교사의 주된 역할은 강의보다는 코칭·멘토링·학습디자인 등으로 대전환해야 합니다. 그동안 학생 평가가 학습과 분리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의 결과는 ‘입시 지옥’이라고 불릴 정도의 고통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AI 기술은 데이터 기반으로 학생에게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하고 교사에게는 큰 부담 없이 개별 학생의 성취를 학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악하거나 빈번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학습·평가의 통합으로 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높일 수 있게 되면 수학능력시험류의 고부담 시험은 10년 이내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대학이 평생학습과 혁신의 허브로 전환’하는 지각 변동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전혀 다른 기능들을 융합하는 하이브리드 조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대학의 평생교육 기능이 크게 강화되면서 종전의 고등교육과 평생교육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학의 연구·개발 (R&D) 기능과 혁신생태계(innovation ecosystem) 허브 기능 간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 연구의 리더인 캐나다 토론토대에서는 AI 연구에 필수적인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AI 기업 연구소들을 캠퍼스 안으로 유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교육이 강화되면서 사이버 대학과 일반 대학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누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하는가
대학의 평생 학습과 혁신 허브 전환

문재인 정부 5년 교육정책 공과를 평가한다면요?

“문재인 정부 5년 임기 동안 교육 분야가 국정 우선 순위가 아니었다 판단합니다. 나는 신문 칼럼 등에서 줄곧 주장하는데 교육을 다시금 국정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합니다. 교육 정책이 타 분야 정책과 차별되는 점은 문제 해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근본 변화를 추진해야 하는데 변화에 대한 대통령과 내각 각료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요. 교육 정책의 핵심 부처가 교육부인 것은 맞으나 교육부 장관만이 변화를 추동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평가한 이주호 이사장은 자신의 각료 재직 경험을 들었다. “흔히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경제 대통령’이라 평가하는데 사실 ‘교육 대통령’이기도 했습니다. 정부 부처 중에서 기획재정부에 이어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서열 2번째 였고 기획재정부와 더불어 교육과학기술부가 국정 운영의 양대 핵심 부처였습니다. 자연 국정 운영에 있어서 교육의 비중이 높았고요. 문제는 오늘날 국정 운영의 중심에서 교육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주호 이사장은 더욱 대선주자들의 정책에서도 교육분야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덜해 보인다는 점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대선 주자들의 국가 비전에 교육이 소외됐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 정책 수립해야
단기적 시각에서 접근하면 심대한 문제 야기

대입 정시 비중 확대를 한 문재인 정부 교육 정책은 역진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 이후로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역대 정부에서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 강화, 시험에 의한 일률적 평가 지양 등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수학능력시험 성적에 입각한 대학 정시 비중 확대를 실시한 것은 큰 흐름에 역행한 것은 맞습니다. 입시 과열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결국 수시 입시의 공정성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 부분을 시정하기 위해서 정시 비중을 늘인다는 것인데 방법론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시 비중을 줄이고 정시 비중을 늘릴 것이 아니라 수시 입시에서 참고자료가 되는 교사의 학생 평가 방법을 개선해야 합니다. 수시 입시에서 학생 평가를 반영하려면 학습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든지 학습 주제로 토론을 해서 결과를 평가해서 입시에 반영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수학습 방법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학습 프로젝트나 토론에 교사가 ‘코치’ 혹은 ‘멘토’ 역할을 수행하면서 학생들의 인성과 창의성을 평가해야 하는것이죠. 문제는 정시 비중을 늘리니 프로젝트 수행이나 토론식 학습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수학능력시험 준비에 매진해야 하고 결국 시험 중심 교육제도로 역행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문제 진단을 한 이주호 이사장은 “교육은 먼 미래를 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당장 좁은 시각에서 눈 앞의 문제만 보고 해결하려 칼을 들이대면 장기적으로 심대한 문제를 수반합니다. 정부가 교육정책을 시행할 때는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결정해야 합니다. 아울러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미래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끼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주호 이사장은 2018년 ‘대한민국의 미래 교육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입제도 개편, 자율형사립고등학교 폐지 등에 대해 ‘역주행’ ‘단기처방’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주호 이사장은 “세계적으로 교육 대전환의 시기에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대혼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교육정책은 평준화와 획일화의 과거로 역주행하는 매우 우려스러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 평준화에 대한 대안으로 다양화를 추진했으나 다양화가 특목고·자사고·일반고 간의 수직적 차별화를 초래한다는 반발에 직면해 다시 평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자사고·특목고를 없애기보다는 평준화와 다양화를 넘어서 개별화로 교육계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는 이주호 이사장의 교육 지론이기도 하다.

2008년 3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인선 발표 기자회견장에 선 이주호 이사장.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역임 후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재임하며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사령탑 역할을 수행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폐지됐다 부활한 교육부총리제의 장단점에 대해서 평가한다면요.

“‘교육 부총리제’ 제도 자체는 국가 전반적인 행정의 효율성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교육 부총리제가 도입돼 유관 분야 정책 조정 기능이 강화됐다면 의미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를 수행하지 못했다면 불필요한 ‘옥상옥(屋上屋)’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전제한 이주호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종전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합쳐져서 탄생했던 교육과학기술부 해체 문제를 예로 들었다. “정부 부처를 분리하거나 통합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시너지’ 문제입니다. 통합해서 시너지가 발생한다면 통합하는 게 맞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한 것은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판단이 있어서였습니다. 특히 대학이 단순 고등교육기관이 아닌 연구개발(R&D)의 중추 역할을 한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었죠. 더불어 유아·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과학 역량을 키우는 것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명박 정부는 ‘융합’에 방점을 찍고 유관 부처 통·폐합을 시행했습니다. 현행처럼 부처가 다시 나눠지면 조정 기능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교육 부총리가 과연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주호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가 해체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명했다. 4차 산업시대에 발맞춘 ‘AI 교육 혁명’을 위해서는 교육 부처와 과학기술 부처가 융합되어 일원화된 행정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취지이다. 그는 장관 퇴임 직전 차기 박근혜 정부에 “지난 5년 동안 교육과 과학 간 융합의 씨가 뿌려졌고 이 중 일부는 꽃을 피우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융합이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결과적으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돼 교육 부문과 과학기술 부문 부처 융합은 실현되지 못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체제가 그대로 유지됐으면 AI 교육 혁명이 더 빨리 이뤄졌을 것입니다. 부처가 분리되니 행정 비용이 더 발생합니다. 부처 이기주의도 무시할 수 없고요.” 이주호 이사장은 기본적으로 행정관료가 과학기술 정책을 관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자율’ ‘창의’가 핵심인 분야에 ‘규제’를 우선시하는 정부 부처가 개입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어지는 이주호 이사장의 말이다. “미국이나 유럽국가에서 기본적으로 과학기술부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래부’라는 별칭의 연방교육연구부가 있는 독일 정도만 예외로 하고요. 특히 영미권 국가에서 과학기술 분야는 기본적으로 자율에 맡깁니다. 미국의 경우 상무부 산하에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NSF)이라는 별도 재단법인을 두고 과학기술 정책을 관장하게 하죠. 국가 혁신을 선도하는 대학과 과학기술 분야를 교육부가 통제하는 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앞으로는 지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교육정책은 통제 중심에서 자율 개방 포용적 혁신 지원 등 3가지 원칙에 입각해 대전환해야
교육부 고등교육 정책 부문 분리해 국무총리 산하로 이관 필요

‘교육부 무용론’ 혹은 ‘교육부 폐지론이 지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교육기구 개편은 어떻게 돼야 할까요?

이주호 이사장은 “AI 교육혁명을 추진하지 위해서는 그동안 규제·통제 중심이었던 교육정책을 ‘자율’ ‘개방’ ‘포용적 혁신 지원’ 등 3가지 원칙에 입각해 대전환해야 한다”며 교육부의 위상과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먼저 ‘자율’ 원칙에 입각해 본다면 기존 교육 행정은 획일적인 규제 일변도로 가면서 현장의 자율이 지나치게 제한되어서 변화의 동력을 꺼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 교육 부문은 아예 교육부 산하에서 독립시키고, 초중등 교육은 각 학교의 운영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방’에 있어서 유아·초중등 교육 과정의 경우 가정의 역할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반면 대학·평생교육은 기업과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죠. 그동안 패쇄적이었던 교육 분야를 경제사회 부문과 긴밀히 연계하는 교육 개방을 추진해야 합니다. ‘포용적 혁신지원’은 교육 지각변동 시기에 AI 교육혁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교육 기관에 대한 재정지원을 포용적 교육혁신을 위한 생태계 조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 이주호 이사장은 현행 교육부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고등교육(대학) 부문을 교육부로부터 분리하여 국무총리실 산하로 편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을 혁신 주체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더불어 전략기획 기능 강화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교육부의 통제를 받는 구조에서는 대학의 자율성 확보가 어려워집니다.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등에 소속된 정부출연연구기관처럼 국무총리실에서 최소한의 규제와 조정 업무만 담당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지원도 교육부의 통제중심 정책에서 탈피하여 ‘혁신전략부(가칭)’를 신설하여 혁신생태계 조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디자인해야 하고요.” 이주호 장관은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보건복지부 유관 부문 통합도 필요하다 강조했다. “대학 업무가 분리되면 교육부는 유아·초중등 교육에 집중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 교육의 시작은 가족이기 때문에 여성가족부의 가족 기능과 복지부의 보육 기능을 흡수·통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명박 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시절 이주호 이사장. 장관 재임 시절 대학 입시 제도 다원화, 교원 평가 제도 강화, 국립대학 법인화 등 교육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교육 행정 체제 개편에 있어서 고(故)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설립 이사장은 2016년 10년 임기의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도입을 제안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교육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고 박세일 이사장이 주장한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도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이주호 이사장은 “2022년 7월 공식 출범 예정인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에 대부분 반영 됐다 판단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본적으로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좌우하는 장기적인 교육 정책 총괄 기능은 교육부 밖에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4차산업 혁명시대에는 장기적 차원의 교육정책을 마련하는 중립적 기관이 필요하다고요. 위원 임기를 보장해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하고 정치색도 배제해야 합니다.” 2021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올해 7월 출범할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는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운영된다. 교육위원은 대통령 지명 5명(상임위원 1명 포함), 국회 추천 9명(상임위원 2명 포함)을 반영하고 사회 각계각층 인사(학생․청년, 학부모 등) 포함하여 총 21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과 국회 추천을 제외하면 교원단체 추천 2명, 한국대학교육협의회·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각 1명 씩 2명, 광역지방자치단체 추천 1명, 교육부 차관(당연직)과 시도교육감협의회 대표 2명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상임위원장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며 위원장은 장관급, 2명의 상임위원은 차관급 예우를 받는다. 위원은 기본적으로 정당 가입을 금지하여 정치적 중립성도 보장한다. 위원회 업무는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국가교육과정 수립, 국민의견 수렴 및 조정 등 3대 분야이다. 구체적으로 학제, 교원정책, 대학입학정책, 학급당 적정 학생 수 등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국가교육과정 기준을 수립하게 된다.

이승만-박정희-이명박 계보를 잇는 ‘교육 대통령’ 나와야
교육부 장관은 고충만큼 보람도 큰 자리

교육 분야에서 차기 대통령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나요?

“차기 대통령은 ‘교육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를 돌이켜 볼 때 이승만-박정희-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른바 교육 대통령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전 국민 6년 의무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국가 재정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예산의 10% 이상을 교육 분야에 투입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의 역군인 전문기술인 양성을 위하여 직업교육에 힘을 쏟았습니다. 금오공업고등학교 등 기술고등학교 설립이 대표적입니다. 고등학교 하나에 어지간한 대학에 맞먹는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교육에 역점을 뒀습니다. 마이스터고등학교(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 설립이 대표적인 업적입니다. 산업에서 어떠한 인재를 요구하냐에 주안점을 두고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을 만든 것이죠. 차기 대통령도 전임자의 뒤를 잇는 교육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시절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주제로한 학부모 간담회에 참석한 이주호 이사장.

후배 교육부 장관에게 조언한다면요.

“교육 분야에서 근본적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변기에 점진적 변화는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시대 변화에 역행할 소지가 있습니다. 교육부 수장은 각 분야 ‘교육 혁신가(educational innovator)’들을 발굴하고 힘을 실어 주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촉진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교육 혁신가는 대학 총장·학장, 각급학교 교장, 교사, 교육사업가를 망라합니다. 교육은 변화가 느린 대표적인 분야로 지목받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는 변화를 갈망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이명박 정부 교육 개혁 설계자·전도사로 불렸던 이주호 이사장은 교육부 장·차관 재임 시절 각종 교육 개혁 정책을 추진하다 저항에 부딪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양대 교원단체, 학부모 단체는 물론 언론까지 ‘이주호 경질’을 요구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사이에서도 ‘이주호를 잘라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설거지를 하다 보면 접시를 깨트리기 마련이다’며 끝까지 믿고 신임해 줘서 이명박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교육 개혁을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개혁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저항’을 헤쳐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이주호 이사장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개혁에 대한 저항은 늘 존재하지만 반대로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도 항상 있습니다. 개혁을 추진할 때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고 변화를 원하는 우군(友軍)은 확보하고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대통령과 장관의 힘만으로는 개혁을 할 수 없습니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을 동참시켜 나가야 개혁의 추진 동력이 생깁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면 단기적인 이견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교육 정책은 찬·반 의견이 교차하는 대표적인 분야인데 단기적으로는 이해관계가 상충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정책이 많기도 합니다.” 이주호 이사장은 교육부 수장은 고충이 크지만 보람도 많은 자리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체내에는 ‘교육 DNA’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DNA는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요. 특히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그 연장선상에서 교육정책 개편, 교육 시스템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열정을 개혁의 원동력으로 활용한다면 교육부 장관은 굉장히 어려운 자리이지만 한편 보람도 큰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