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군인 동성애 무죄 판결…“부정적 파장 클 것” 전문가 우려

이윤정
2022년 04월 27일 오후 7:45 업데이트: 2022년 04월 27일 오후 7:45

유죄 선고한 1·2심 깨고 기존 판례도 뒤집어
김영길 소장 “헌재 기능 무력화, 보건적 측면 무시”
길원평 교수 “수직 관계인 軍 특수성 무시한 판결”

대법원이 사상 최초로 군인들의 동성애를 무죄 판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4월 21일 “군인의 근무 시간 외, 영외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뤄진 동성 간의 성관계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된 중위 A씨와 상사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11(무죄) 대 2(유죄)로 기존의 판례를 뒤집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군사법원 1·2심은 모두 유죄를 선고했었다.

이날 무죄 판결에 반대한 2명의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현행 규정이 가지는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넘어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어서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법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며 “이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유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 기존 판례를 뒤집은 최초의 무죄 판결이다. 지금까지는 남성군인 간 성추행 등의 행위가 적발되면 군형법 제92조 6항을 적용해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해 왔다.

4월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대법관들이 동성 군인 간 성행위에 따른 군형법상 성추행 여부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영길 바른군인권연구소 소장은 4월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대법원판결에 대해 “입법에 대한 과잉 해석”이라며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고 평가했다.

김영길 소장은 육군 특수부대 정보 병과에서 25년간 장교로 근무해 군 실상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부산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학원에서 국제관계 석사학위, 백석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인권 관련해 10여 년간 연구해온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난 1월 29일에는 ‘인권의 딜레마’ 책을 출간했다. 책에서 김 소장은 인권을 천부적 인권, 보편적 인권, 상대적 인권, 자의적 인권 등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김 소장은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라는 명목으로 헌법재판소의 법률 위헌 심사 기능을 앞질러 판단해 버린 것”이라며 “군대 내에서 동성애 행위를 금한다는 군형법 제92조의 6항은 국회가 공익을 위해 제정한 법인데 이러한 법질서를 대법원이 무시하고 내린 판결이라 과잉 해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번 판결이 향후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많은 걱정을 드러냈다.

그는 “동성애가 확산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군대 계급 질서가 무너지고 군 기강이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이 헌법재판소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만일 군형법 제92조 6항이 위헌 결정이 나서 법을 수정해야 하면 사실상 우리나라가 동성애를 합법화하게 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02년, 2011년, 2016년 해당 조항과 관련해 세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도 “동성애는 선량한 성도덕 관념에 위반된다”며 2008년, 2012년 두 번에 걸쳐 이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 소장은 또 “의학·보건적 측면을 완전히 무시한 판결”이라고 비판하며 “대법원은 판결에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을 내세웠지만,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성병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한숨지었다.

김영길 바른군인권연구소 소장(가운데). 사진은 2018년 8월, 국회 정론관에서 ‘대체복무제’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이다. | 연합뉴스

김 소장은 “성소수자 같은 사람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는 상대적 인권”이라며 “소수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들면 다수의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소수의 문제는 복지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이걸 인권의 논리로 접근하다 보니 소수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수의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이 침해되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는 1844년 마르크스가 주창한 ‘사회 구조 속에 존재하는 인권’ 즉 소수자 중심의 상대적 인권 논리에 따른 것”이라며 “상대적 인권은 사실상 공산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대법원 판결 내용에 포함된 ‘사적 공간’ ‘합의’ 등의 표현은 군대라는 현장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김 소장에 따르면 군대 내 간부들 숙소는 보통 울타리 밖에 설치한다. 국민들이 낸 공적 세금으로 지은 장소이고 필요시 지휘관들이 출입하는 곳이라 사적 공간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합의’라는 표현도 군대가 계급 사회라는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라며 “중위와 상사, 장교와 부사관 사이에 과연 합의가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길원평 한동대 석좌교수도 같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27일 통화에서 대법원판결을 두고 “군대의 특수성을 생각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군대는 수직 관계로 이뤄져 있어서 상호 ‘합의’라는 게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길 교수는 “상급자의 요구를 계급이 낮은 약자가 거부하기는 힘들다”면서 “이번 판결이 소수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군대 내 약자를 더 불리하게 만드는 판결”이라고 평했다.

덧붙여 “지금까지는 동성애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판결했지만 이번 판결로 동성애가 하나의 ‘성적 지향’이 돼 버리면 헌법재판소 판결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군형법 자체를 없앨 가능성도 있어서 굉장히 우려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