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친대만 성향 파라과이 대통령 당선에 안도했으나 날아들 ‘청구서’ 걱정

최창근
2023년 05월 3일 오후 2:34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38

지난 4월 30일 치러진 파라과이 대선에서 ‘대만과 국교 유지’를 주장해 온 집권 콜로라도당(공화국민연합당·ANR) 소속 산티아고 페냐 후보가 승리했다. 이로써 대만은 남은 13개 수교국 중 남미 유일 수교국 파라과이를 당분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5월 1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파라과이 새 정부와 대만의 지속적인 협력 및 교류 심화를 기대한다.”고 썼다. 대만 총통부도 “동맹국이 민주 선거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한즈정(韓志正) 주(駐)파라과이 대만대사도 차이잉원 총통과 라이칭더(賴清德) 부총통을 대리하여 축하의 뜻을 전했다. 대만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자유, 민주주의를 비롯하여 양국 간의 전통적인 유대라는 공통적 가치를 바탕으로 양자 협력 및 교류를 강화하여 양국 국민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8월 15일 파라과이 대통령 취임식에 차이잉원 총통을 대신하여 집권 민진당 주석인 라이칭더 부총통을 대표로 하는 축하 사절단을 파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만으로서는 파라과이 대선 결과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대만과 국교 유지를 천명한 페냐 후보가 당선됐지만, ‘불확실성’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만 ‘연합보(聯合報)’는 5월 2일 보도에서 “대만 외교가는 파라과이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의 승리로 단교에 대한 경고가 일시적으로 해제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해설했다.

정계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나온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천이신(陳以信) 국민당 입법위원(국회의원)은 “파라과이 여당이 집권을 이어간다고 해서 대만과의 관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파라과이 신임 대통령 축하 사절단의 ‘격(格)’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이신 입법위원은 라이칭더 부총통을 축하사절단 대표로 보내기로 한 계획에 대하여 “파라과이 대통령 취임식에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원수인 총통이 참석하지 않을 경우 파라과이 측에서 대만과의 관계가 격하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올해 단교한 온두라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온두라스 대통령 취임식에는 차이잉원 총통을 대리하여 라이칭더 부총통이 참석했다.

8월 15일 대통령에 취임할 페냐 당선인이 경제 전문가라는 점도 대만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페냐 당선인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아순시온가톨릭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이후 파라과이 재무부 장관,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등으로 활동했다. 이번 선거 공약도 ‘경제’에 방점이 찍혔다. 일자리 50만 개 창출, 무료 유치원, 기름값 인하, 치안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농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진 파라과이 자체 문제도 있다. 파라과이는 세계 10대 쇠고기 수출국이자 4대 대두(大豆) 수출국이다. 다만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하여 중국과는 공식 외교관계를 맺을 수 없고 중국 시장 접근도 제한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쇠고기, 대두 시장이다. 아르헨티나 등 대부분 남미 국가는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 쇠고기와 대두를 수출하고 있으나 중국의 거부로 인해 파라과이는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두고서 지난 파라과이 대선 과정에서 야당 정통급진자유당(PLRA·급진자유당)의 에프라인 알레그레 후보는 “파라과이가 대만과 오랜 동맹을 유지해온 탓에 발전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하며 당선되면 중국과 수교하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시장 중국에 주력 농산품을 수출하지 못해 경제적 손해를 보면서까지 대만과 국교를 유지하지는 않겠다는 논리였다.

대만과 국교 유지를 천명한 콜로라도당은 자국이 대만과 국교를 유지함으로써 입는 경제적 손해를 대만이 보상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지난해 9월,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대만과의 협력을 언급하면서 “대만이 비수교국에 60억 달러(약 8조 5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면서 (대만이) 파라과이에는 1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대만과 외교관계는 유지하겠지만 ‘대가’는 치러야 한다는 취지였다. 베니테스 대통령은 지난 2월에도 5일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하여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다.

대만에서도 파라과이와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데 따르는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5월 2일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는 “대만이 파라과이와의 외교 관계 강화를 위해 더 큰 비용을 내야 할 처지에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연합보’도 “페냐 당선자의 재임 기간에 대만 단교가 현실화하지는 않겠지만 쇠고기, 대두 등 자국산 농산품의 중국 수출을 원하는 파라과이 내부의 여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금전 지원을 무기로 대만 수교국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3월, 전격 단교한 온두라스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만이 파라과이와의 관계를 잘 풀어가지 못할 경우 유사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파라과이의 경제 지원 요청을 거절하기 힘든 형편이다.

‘중국시보’는 온두라스가 외교관계 유지를 위해 현행 5천만 달러(약 653억원) 수준인 대만의 연간 지원금을 2배로 늘리고, 6억 달러 규모의 부채를 재조정해달라고 주문했으나 대만이 수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은 온두라스의 숙원인 노바 파투카 수력 발전소 건립을 위해 3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82년간 국교를 유지해 온 중미 온두라스는 지난 3월 14일, 시오마라 카스트로 대통령이 직접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추진을 발표했다. 같은 달 25일 대만과 단교를 선언했다.

대만과의 단교 배경에는 금전 지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다. 온두라스는 노바 파투카 수력발전소 건립을 위한 3억 달러를 지원해 달라고 대만에 요청했으나 대만 측이 거절하자 단교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도 “온두라스가 대규모 자금을 요구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돈이었다.”라고 밝혔다.

차이잉원 총통 집권 7년 동안 상투메 프린시페,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엘살바도르,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 9개국이 대만과 단교했다. 남은 수교국은 파라과이를 비롯한 13개국뿐이다.

“금전 지원으로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대만 국민 여론도 부담이다. 지난 3월, 온두라스 단교 사태에서 대만 국민 90%가 “온두라스에 금전 지원을 하여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금전 지원을 해서라도 온두라스와 외교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10%에 그쳤다.

이 속에서 대만 정부는 파라과이로부터 날아든 ‘청구서’를 지혜롭게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