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인신매매·장기적출 사건 배후엔 중국 ‘일대일로’

한동훈
2022년 08월 31일 오후 9:43 업데이트: 2022년 08월 31일 오후 9:43

일대일로 프로젝트 따라 폭력조직 대거 진출
취업비자 없이 수만명 입국…다수가 조직원
캄보디아 정부, 중국 공산당 투자에 상황 외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대만과 홍콩 청년 수천 명이 취업 사기로 인신매매를 당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중국어와 컴퓨터를 할 줄 알면 월 1800달러(약 24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범죄조직의 꼬임에 넘어가 해외 취업에 응했고 캄보디아 등지에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들은 감금당한 채 폭행을 당하고 있으며 나가고 싶으면 거액의 몸값을 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장기 매매 조직에 넘겨져 장기적출까지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직범죄단이 대규모 인신매매 범행 장소로 캄보디아를 선택한 것은 ‘범죄 천국’이 됐기 때문이다.

대만 업미디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언론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중국 공산당의 일대일로 정책 참여 이후 중국 사업가와 폭력조직이 몰려들면서 치안이 급속히 악화됐다.

중국 사업가들이 일대일로를 따라 캄보디아에 진출해 호텔, 카지노, 리조트를 세우면서 캄보디아 남부에 위치한 도시 시아누크빌은 지난 수년 사이 카지노만 100여 개 들어섰다.

유흥지가 형성되자 폭력조직들도 뒤이어 캄보디아에 들어와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당국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1분기 체포된 외국인 범죄 용의자 341명 중 241명이 중국인이었다.

취업비자 없이 입국한 중국인만 약 8만 명으로 이들 상당수가 폭력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캄보디아 내무부는 추산했다.

국제 인신매매 전초기지가 된 캄보디아

캄보디아 주재 미국 대사관이 올해 발간한 캄보디아 인신매매 실태를 담은 보고서에는 캄보디아가 ‘정부 차원에서 범죄와 사기, 인신매매, 부패를 조장하는 나라’로 묘사됐다.

이 보고서는 “캄보디아 정부는 도주한 인신매매범에 대해 체포영장조차 발부하는 일이 거의 없다”며 인권단체 등 국제 비정부기구(NGO)가 직접 추적하고 체포에 개입해야 움직인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또한 정부 차원에서 만연한 부패로 인해 NGO 단체들이 현지 경찰이나 공무원들의 협조를 얻는 데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캄보디아 정부의 나태와 무능을 지적했다.

아울러 캄보디아 판사와 검찰이 공소 전 검사의 불기소, 재판 단계에서의 무죄, 형량 감경 등의 대가로 뇌물을 받는 일이 빈번하다며 사법 체계마저 부패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캄보디아의 직무 태만, 뇌물 수수, 부패는 인신매매 피해자 구조 자체를 막거나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며 “정부 관료와 정치적, 범죄적, 경제적 유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유죄로 판결하는 일은 캄보디아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캄보디아 주재 미국 대사관이 올해 발간한 캄보디아 인신매매 실태를 담은 보고서 표지 | 화면캡처

캄보디아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중국 폭력조직이 캄보디아를 급속히 잠식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공산당의 투자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총리 훈 센은 수도 프놈펜에서 중국 외교부장 왕이를 접견했다.

센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대일로 구상이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큰 축복’을 가져다줬다”며 중국 공산당에 찬사를 보내며 양자 간 우정을 재확인했다.

CNN은 올해 초 캄보디아 내 중국 투자에 관한 보도에서 “한때 배낭 여행객들이 즐겨 찾던 조용한 해변 시아누크빌은 중국 개발업자들에 의해 도시 전체가 공사장이 됐다”고 전했다.

개발업자들은 자재와 인부도 모두 중국에서 들여왔고, 이곳은 중국인 관광객이 이용하는 차이나타운이 됐다. 한때 아름다웠던 해변은 시끄럽고 요란한 환락가가 됐다.

그로 인해 서구권 여행객들은 발길을 끊었고, 관광업에 의존해 살던 캄보디아 현지인들은 수입과 직업 그리고 집마저 잃으면서 생활고에 빠졌다.

스웨덴 룬드대학의 동남아 연구 전문가인 아스트리드 노렌-닐소난 교수는 “시아누크빌의 기업과 부동산 약 90%가 중국 본토 자본 소유가 됐다고 CNN에 말했다.

2018년에는 캄보디아와 중국 공산당 간 교류 증진을 위한 비즈니스 포럼이 개최됐다. 이 포럼에서는 캄보디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2016년 36억 달러(약 4조 6천억원)에서 2017년 63억 달러(약 8조 2천억원)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발표했다.

캄보디아개발회의(CDC)는 2018년 ‘시아누크빌 경제특구(SSEZ)’에 약 2400만 달러(약 312억원)에 달하는 4개의 투자 계획을 승인했는데 모두 중국 기업의 현지 법인이 제출한 계획이었다.

현재 캄보디아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대외 채무 절반 이상이 중국에 진 빚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제 발전이라는 이유로 중국 자본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대만과의 지리적 접근성도 작용

캄보디아 4번 국도와 가까운 시아누크빌 경제특구는 항구와 철도, 공항을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에 있다. 이는 베트남, 태국, 홍콩 등 인접한 국가·지역과의 높은 연결성을 제공한다.

당초 이 지역은 황폐한 불모지였으나 지난 10년 동안 중국 공산당과 홍콩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로 개발사업을 진행하며 인프라를 구축해 이곳을 교통의 요충지로 탈바꿈시켰다.

캄보디아는 투자금 유치를 위해 대규모 개발 사업을 완전히 비과세로 진행할 수 있게 하는 엄청난 특혜를 제공했다. 건축 자재나 장비는 전부 무관세로 중국에서 수입됐다.

시아누크빌 경제특구에 진출하는 중국 기업은 6~9년의 비과세 혜택을 누리고 수출세와 부가가치세도 내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의 일대일로 정책은 이 지역을 중국의 제조업 중심도시인 제2의 선전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이 지역에서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인신매매단이 중국어(표준 중국어)나 광둥어, 영어를 할 수 있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알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취업사기를 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 싱크탱크 ‘범죄조직, 일대일로 따라 확장’

미국 싱크탱크인 제임스타운재단은 지난 3월 발간된 중국 전문지인 ‘차이나 브리프’에서 캄보디아에서 벌어지는 범죄조직의 활동상을 특집 기사로 다뤘다.

이 기사에서는 범죄조직들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이용해 범죄활동을 정상적인 사업으로 위장해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범죄조직들이 아시아 전역을 활동무대로 온라인 피싱, 다단계 사기, 온라인 불법 도박, 마약이나 동물 밀수 같은 범죄에 관여하며 강제노동이나 매춘을 위한 인신매매도 벌인다고 전했다.

이번 대만 청년 취업사기 인신매매에서는 장기적출도 벌어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앞서 홍콩 TVB는 이들 인신매매범들이 납치한 인질을 팔 수 없을 때 살해하며, 살해하기 전에 장기를 적출한다는 생존자의 인터뷰를 보도한 바 있다.

또한 국제 인권단체들은 중국 공산당이 양심수들의 장기를 적출한다며 파룬궁 수련자들이 주된 피해자라고 비판해왔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에도 중국 공산당은 동남아와 아프리카에 집중된 일대일로 인프라 건설사업을 세계 나머지 지역으로 확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이틀간 ‘일대일로 정상회의 포럼’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