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뒤집은 사상 첫 민영방송사 방송면허 갱신 거부 사건 전말

최창근
2021년 01월 4일 오후 4:32 업데이트: 2021년 01월 5일 오전 11:37

대만 친중 매체 논란의 화룡점정, ‘왕왕중국시보그룹’의 행적

2020년 11월 18일, 대만 국가통신전파위원회(國家通訊傳播委員會・NCC)는 왕왕중국시보그룹(旺旺中時媒體集團) 계열 뉴스 방송 채널 CTi(중톈신문대・中天新聞臺)의 방송 면허 갱신 거부를 발표했다.

대만 정부가 민영 방송 채널 면허 연장을 거부하며 방송 송출을 금지한 것은 초유의 사건이다. 2006년 출범한 국가통신전파위원회 역사상 처음 있는 방송사에 대한 최고 수준 규제이기 때문이다. CTi가 부여받은 방송 면허는 6년 주기로 갱신해야 하며, 12월 11일 자정이 만료 시점이었다. 방송 송출은 면허 만기일 자정을 기해 중단 됐고, CTi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방송하고 있다.

국가통신전파위원회가 ‘방송 면허 갱신 불허’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배경은 표면적으로 해당 방송사의 규제 위반, 여론을 수렴한 것이지만, ‘홍색매체(紅色媒體)’로 불리는 친중국・친중국공산당 매체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해석도 붙는다.

국가통신전파위원회는 천야오샹(陳耀祥) 주임위원을 포함한 위원 7인 만장일치로 CTi의 방송 면허 갱신 불허 결정을 내렸다. 천야오샹은 면허 갱신 연장 거부 배경을 다음과 같이밝혔다.

▲CTi의 방송법 규정 위반은 정황이 명확하고 구체적인 증거가 존재한다.

▲2016년 5월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 취임 이듬해인 2017년부터 올해까지 시청자들이 제기한 방송 관련 민원 중 CTi 관련 사항이 30% 이상이다.

▲CTi의 뉴스보도 게이트키핑 과정이 ‘외부 간섭’으로 왜곡 됐다.

▲방송 보도 게이트 키핑 과정에서 외부 간섭은 악의적인 혹은 고의적인 오보(誤報), 편파방송으로 이어졌다.

▲2018년부터 차이옌밍(蔡衍明) 회장 등 대주주가 방송 뉴스 제작・보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CTi 보도국장 공석이던 2018년 약 5개월 동안 왕왕중국시보그룹 추자위(邱佳瑜) 부사장이 뉴스 제작・보도에 직접 개입하여 신문・방송 독립 경영이라는 대만 미디어 관련법의 근본 취지를 훼손했다.

▲CTi의 잘못된 운영 시스템을 견제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청회 과정에서 Cti와 왕왕중국시보그룹이 제시한 ‘8가지 개선안’에 포함된 개선안 중 어떠한 것도 방송 뉴스 제작・보도에 있어 사주와 대주주의 간섭을 막지 못할 것이다.

국가통신전파위원회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CTi가 방송 심의 규정을 25차례 위반, 총 1153만 신대만달러(NTD)에 이르는 과징금이 부과됐다고 밝혔다. 2019년 기준 국가통신전파위원회에 접수된 CTi 관련 민원은 962건으로 전체 접수 민원의 31%를 차지한다고 구체적 사례도 적시했다.

최종 결정에 앞서 국가통신전파위원회는 2020년 10월 26일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에서 국가통신전파위원회는 CTi가 지난 6년간 방송법 위반 사항이 21건이 있었고 1000만 신대만달러가 넘는 벌금을 부과 받은 적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주 차이옌밍 회장이 뉴스 제작과정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점도 관련자 증언과 실제 보도 내용을 통해 밝혀졌다. 이에 대하여 CTi는 위반 사항 중 5건만 확인됐고, 나머지 16건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며 항변했다.

CTi의 전신은 1994년 출범한 위성방송 CTN(전신방송・傳訊電視)이다. 1996년 4월 창립자 위핑하이(于品海)가 지분 일부를 허신그룹(和信企業團)에 매각했고, 2000년 1월 CTN의 뉴스전문 채널 중톈빈도(頻道)를 중톈신문대(中天新聞臺)로 개명하면서 오늘날 CTi라는 사명과 송출부호가 굳어졌다. 2002년 6월, 모기업 샹산그룹(象山集團)이 중국시보그룹에 경영권을 매각했고, 공식사명도 중톈텔레비전주식회사로 바뀌었다. 이후 2008년 11월, 왕왕그룹 회장 차이옌밍이 중국시보그룹을 인수하면서 CTi도 왕왕중국시보그룹 계열사의 하나가 됐다.

대만 언론계의 뜨거운 감자인 홍색매체, 즉 친중국・중국공산당 매체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은 CTi의 모기업 왕왕중국시보그룹(旺旺中時媒體集團)이다. 사명(社名)에서 알 수 있듯, 중화권 ‘국민 쌀과자’ 브랜드 왕왕(旺旺)과 『중국시보(中國時報)』가 합병해서 탄생한 종합미디어기업이다. 결과적으로 CTi 방송 면허 갱신 거부와 ‘사실상 방송 퇴출’ 조치는 대만 내 홍색매체 논란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기록됐다.

1962년 차이옌밍은 대만 이란(宜蘭)현에 이란식품공업주식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왕왕’ 브랜드로 쌀과자를 출시했고, 대만・중국 등에서 인기를 끌었다. 판매 호조에 힘입어 왕왕은 이른바 ‘과자재벌’이 됐다. 이에 힘입어 차이옌밍은 2000년대 『포브스(Forbes)』선정 대만 1위 부호에 오르기도 했다.

식품사업으로 성공한 차이옌밍은 미디어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2008년 11월 경영난에 빠진 『중국시보』와 자매 매체들을 인수했다. 이후 왕왕중국시보그룹을 기반으로 뉴미디어 분야로도 진출, 종합미디어그룹이 됐다. 차이옌밍은 대만의 루퍼트 머독(Keith Rupert Murdoch)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중국시보』의 모체는 1950년 위지중(余紀忠)이 창간한 『징신신문(徵信新聞)』이다. 주요 물가지수 보도 등 생활경제 정보 전문지였다. 1960년 『징신신문보(徵信新聞報)』를 거쳐, 1968년 현재 사명 『중국시보』로 개명했다.

국민당 권위주의 통치기 국민당 당영(黨營) 『중앙일보(中央日報)』, 민영 『연합보(聯合報)』와 더불어 이른바 3대 신문 체제를 형성했다. 1968년 아시아 최초로 컬러 윤전기를 도입하는 등 대만 매체 발전사에도 족적을 남겼다.

학자 출신 사주 위지중은 기본적으로 언론자유를 중시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여 편집권을 침해하지도 않았다. 이 속에서 1980년대 대만 민주화 시대 『중국시보』는 중도 보수 노선을 견지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1986년 미국 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s) 공인 발행부수 120만부를 기록했다. 이후 주간지, 도서출판, 방송, 여행 등 문화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다각화 했다.

2002년 창립자 위지중이 사망했다. 차남 위젠신(余建新), 장녀 위판잉(余範英)을 회장・부회장으로 하는 공동경영체제가 성립했고, 그해 방송시장에 진출했다. 1994년 출범한 CTN을 인수, 오늘날 CTi을 출범 시켰다. 이로써 신문・방송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미디어기업으로 거듭났다.

사업영역을 확장해 가던 중국시보그룹은 경영난에 봉착했다. 주원인은 활자 매체 쇠퇴라는 매체 환경 변화, 신생 『빈과일보(蘋果日報・Apple Daily)』의 도전이었다.

유명 의류브랜드 지오다노(Giordano) 창립자 라이즈잉(黎智英・Jimmy Lai)은 1990년 출판・인쇄기업 넥스트디지털(壹傳媒有限公司)을 설립한데 이어 1995년 홍콩『빈과일보』를 창간했다. 홍콩에서 사세를 확장해 가던 넥스트디지털은 2003년 대만에 진출, 『빈과일보』제호로 신문시장에 뛰어 들었다. 자본력과 인력을 갖춘 대만 『빈과일보』는 『연합보』・『중국시보』・자유시보(自由時報)』등 기성 3대 신문이 분점하고 있던 신문시장에서 급성장세를 이어갔다.

그중 『중국시보』를 밀어내며, 일약 새로운 3대 메이저 일간지로 자리매김했다. 『빈과일보』에게 시장 점유율을 빼앗긴 『중국시보』는 경영난이 가중됐다. 설상가상으로 방송 진출 등 사세 확장에 기인한 재정 압박도 있었다.

그러던 중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던 왕왕그룹 사주 차이옌밍은 2008년 204억 신대만달러(한화 8160억원)로 『중국시보』와 계열사 『공상시보(工商時報)』등 인쇄 매체, 방송사 CTi 등을 인수했다. 같은 해 1969년 설립된 지상파 방송 CTV(중국방송・中國電視) 민영화에도 참여,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듬해에는 중국뉴스 전문지 『왕보(旺報)』를 창간, 신문・잡지・지상파방송・케이블방송・출판을 아우르는 종합미디어기업 왕왕중국시보그룹이 공식 출범했다.

2008년 중국시보그룹 인수 후, 차이옌밍은 경영혁신 명목 하에 조직・지면 개편을 단행했다. 제작비 절감을 명분으로 발행면수를 매일 10면 내외로 줄였다. 인력 면에서는 전체 사원 수 1200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600명을 감원했다. 지방 지사 폐쇄도 이어졌다.

차이옌밍의 인수 후 『중국시보』와 계열 신문 논조에도 중대 변화가 발생했다. 모기업 왕왕그룹의 주 사업기만이 중국 본토였던 것에 기인하여, 보도에서 친중국 반대만독립 색채가 강화됐다. 이는 2009년 창간한 중국 뉴스 전문지『왕보(旺報)』에서 더욱 뚜렸해졌다. 지난날 중도보수 노선으로, 국민당정부 개혁을 주창하기도 했던 『중국시보』와 계열사의 논조 변화는 중국인 아닌 대만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젊은 독자층의 반발을 불렀다. 이는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왕왕그룹의 언론사 인수의 배후에는 중국 정부가 있다는 의혹제기도 있다. 2011년 대만 시사주간지 『천하(天下)』는 ‘주임에게 보고합니다. 우리가 (중국시보를) 사들였습니다’ 제하 기사에서 중국 정부와 차이옌밍 왕왕그룹 회장의 유착 관계를 집중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2010년 차이옌밍과 왕이(王毅) 당시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위원(현 국무원 외교부장)이 면담했다. 차이옌밍은 왕이에게 『중국시보』 인수 관련 상황을 보고하며, “인수 목적 중 하나가 (중국의 대만 침투를 위해) 매체를 빌리고자 하는 것이며, 양안관계 진일보한 발전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왕이는 “왕왕중국시보그룹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이 전적으로 지원하겠으며, 식품업 본업은 물론, 양안 간 미디어 교류에 있어서 협조를 부탁한다”고 화답했다. 실제 중국정부는 광고비 집행을 명분으로 왕왕중국시보그룹 계열사에 현금 지원을 했다. 이는 대만지역과 대륙지역 주민관계 조례・국가안전법 위반으로 대만 정부의 조사를 받고 벌금형을 부과 받는 결과를 낳았다.

2014년 이후 『중국시보』의 친중행보는 더욱 강화됐다. 그해 지면 개편을 단행하면서 내건 슬로건은 ‘중국을 동포로 인식하고, 진정으로 대만을 사랑하며, 최종적으로 통일을 이룬다(中國認同, 真愛臺灣, 終局統一)’였다. 중국 본토와 통일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입장을 찬성하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에 의한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지지하였다. 이에 젊은 대학생, 진보성향 지식인을 중심으로 『중국시보』 절독 운동이 벌어졌다.

이후로도『중국시보』의 친중행보는 지속됐다. 2020년 1월, 대선・총선을 앞둔 국면에서, 신문은 친중 성향의 국민당 후보 한궈위(韓國瑜)를 집중보도 하며, 이른바 ‘한궈위 신드롬’을 만들었다.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보도에서도 친중 편파보도는 지속됐다. 2019년 6월, 톈안먼 30주년 기념 보도에서 『중국시보』는 유혈 진압한 중국 인민해방군도 ‘피해자’라며, 사건 당시 시위대가 쏜 총에 맞은 인민해방군 병사들을 심층보도 했다. 보도에 대하여 중국정부의 외압설이 제기되자, 기사는 인터넷판에서 삭제되기도 했다.

앞서 20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개최된 ‘제1회 양안(兩岸) 뉴미디어산업 발전 세미나’에 『중국시보』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5월에는 경영진이 중국 베이징을 초청 방문, 왕양(汪洋)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겸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접견하기도 했다. 왕양은 중국의 대(對) 대만 민간협상기구인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을 지낸 왕다오한(汪道涵)의 조카다. 『중국시보』 관계자를 만난 왕양은 “중국의 대 대만 통일담론인 일국양제가 대만에서 실현되는 것에는 대만 언론의 노력이 있다”고 치하하여 논란이 일었다.

그 무렵 날로 격렬해 지던 홍콩민주화 시위 보도에서도 『중국시보』는 관련 보도를 축소하거나 ‘중립’을 가장하여 중국 측 입장을 대변하여 다시 한 번 비난을 받았다. 이는 2019년 6월 23일 타이베이에서 발생한 대대적인 반홍색매체 시위의 원인 제공을 했다.

2020년 들어서도 『중국시보』의 친중국 편향보도 논란은 지속됐다. 1월 한 전직『중국시보』기자가 왕왕그룹 인수 후 신문 논조 변화, 경영진의 편집・보도권 침해를 폭로했다.

폭로에 따르면 회사 경영진은 홍콩민주화 시위 보도에 있어서 “홍콩 시위의 본질은 폭동이며, 홍콩 시민은 폭민(暴民)이라는 입장에서 보도해야 한다” 강조했다. 양안관계 보도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일국양제 원칙을 준수하며, 대만을 지칭함에 있어서도 ‘국가’가 아닌 ‘지역’으로 표기하고, 중국은 가능한 한 ‘대륙’이라는 중화적 표현으로 대체하라는 보도 가이드라인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왕춰중(王绰中) 편집국장이 자리했다. 왕춰중은 외성인(外省人・중국 본토 출신) 후예로, 주 베이징특파원으로 중국에 장기 체류한 적이 있었다. 아울러 정치 보도에 있어서는 집권 민진당과 제1야당 국민당이 충돌할 경우, 국민당의 입장에 서서 보도해야 했다. 실례로 차이잉원 민진당 대선 후보와 한궈위 국민당 후보 보도에 있어서, 한궈위에 유리한 보도는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대서특필하고, 불리한 보도는 차이잉원 비판 기사로 대체하거나 보도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송 행태는 CTi도 대동소이했다.

『중국시보』와 중국정부의 유착관계에는 모기업 왕왕그룹이 자리한다. 2019년 대만『빈과일보』는 왕왕그룹 재무결산 보고서를 인용 보도하면서,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여 운영중인 왕왕그룹이 지난 11년 동안 보조금 형태로 받은 액수가 최소 167억 대만달러(한화 6257억 원)에 이른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지속 되는 친중 논란 속에서 홍색매체로 낙인 찍힌 『중국시보』의 매출, 구독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9년 하반기 대만 ABC의 신문시장 구독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시보』는 5.88%를 기록, 『자유시보』13.73%, 『연합보』7.84%, 『빈과일보』7.56%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어 2020년 CTi 방송 송출 중단은 또 다른 타격을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