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제1야당 국민당 부주석 중국 방문, 양안관계 긴장 풀리나?

최창근
2023년 02월 10일 오후 5:28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4:14

2016년 차이잉원 현 총통의 민진당 정부 출범 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양안관계에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대만 제1야당 국민당 고위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이는 당 대 당 교류 재개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은 1990년대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국민당 간 구두(口頭)합의인 ‘1992 컨센서스(九二共識)’을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 공산당과 접촉도 거부해 왔다.

국민당 소속 리덩후이 총통 재임기인 1992년 10월 28일, 대만 해협교류기금회(海峽交流基金會)와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係協會)가 양안관계 원칙에 대한 논의를 벌였다.

당시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는 다음의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해협 양안은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는 전제 아래 국가의 통일을 추구한다. ▲해협 양안의 실무적 협상을 함에 있어서는 ‘하나의 중국’의 정치적 의미를 건드리지 않는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양안의 협정서 작성 혹은 기타 협상 업무의 타협책을 찾는다.

대만 해협교류기금회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각자가 구두(口頭)로 표명하고,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사항들을 합의하자.”고 화답했고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사실은 대만 대륙위원회 주임위원 등을 역임한 쑤치(蘇起) 대만 단장대(淡江大) 교수의 공개로 알려졌다. 쑤치는 학자 출신 정치인으로 리덩후이 정부 시절 국민당 대륙공작위원회 부주임, 행정원 대륙위원회 부주임위원 등을 역임하며 양안관계 ‘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월 8일, 샤리옌(夏立言) 국민당 부주석을 대표로 하는 고위급 당(黨)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했다. 대표단에는 자오춘산(趙春山) 단장대 대륙연구소 명예교수, 린쭈자(林祖嘉) 국민당 대륙사무부 주임, 가오쓰보(高思博) 중화인권협회(中華人權協會) 이사장 등이 포함됐다.

국민당 방중(訪中) 대표단의 면면은 화려하다. 샤리옌 국민당 부주석은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주(駐)인도 대표, 국방부 부(副)부장, 행정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을 역임했다. 자오춘산 명예교수는 중국문제 전문가로 마잉주 정부 시절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재단법인양안교류원경기금회(財團法人兩岸交流遠景基金會) 이사장을 지냈다. 린쭈자도 학자 출신으로 행정원 정무위원, 대륙위원회 부주임위원 등을 역임한 이 분야 전문가이다. 국민당 싱크탱크 국가정책연구기금회(國家政策研究基金會) 이사로 활동 중인 가오쓰보도 교수 출신 정치인으로 입법위원(국회의원), 행정원 산하 몽골티베트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민당 대표단은 2월 17일까지 중국에 체류하며 베이징, 난징, 상하이, 우한, 충칭 등 주요 도시 5곳을 돌며 중국 각계 인사를 만날 예정이다. 주펑롄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대표단 방중에 대하여 “양안 각계 영역의 교류 협력 촉진과 양안 동포의 이익을 위한 방문이다.”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반면 국민당은 “중국에서 거주하는 대만 상인, 학생, 주민 등을 챙기고, 중국과 대만 농어업 종사자와 중소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밝혀 ‘실용’에 방점을 찍었다.

샤리옌 국민당 부주석의 방중 동안 예정된 일정 중 주목할 것은 쑹타오(宋涛) 중국 공산당 대만공작판공실 주임 회견이다. 쑹타오는 통일전선공작 전문가로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중국 공산당 대만 정책 책임자가 됐고, 정부에서도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위원을 겸하는 등 명실상부하게 당‧정 분야에서 대만 업무 사령탑에 올랐다.

샤리옌 부주석의 중국 방문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대만 정국(政局)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은 참패했고 그 책임으로 차이잉원 총통이 당 주석직을 사임했다. 후임 당 주석으로는 대중국 강경파로 알려진 라이칭더(賴清德) 부총통이 선출됐다.

차이잉원 정부는 선거 패배 수습 차원에서 개각을 단행했지만 대만 내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쑤전창(蘇貞昌) 전 행정원장을 비롯 행정원 각료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실제 개각은 ‘땜질’ ‘회전문’식으로 이뤄졌다고 대만 언론은 비판했다.

차이잉원 1기 정부(2016~2020년)에서 부총통을 지낸 천젠런(陳建仁)이 신임 행정원장(총리)으로 임명되는 일종의 강등(?) 인사가 단행됐다. 이어 외교부, 국방부, 대륙위원회 등 외교 안보 분야 각료 전원이 유임됐다. 특히 임기 중 6개 수교국이 단교 선언을 하여 외교부에 다시금 ‘단교부(斷交部)’라는 불명예를 안긴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 유임을 두고는 집중 비판이 제기됐다.

총통부 비서장(대통령 비서실장), 내정부(행정안전부) 부장 등 요직에는 선거 낙선 인사들이 임명되어 ‘보은 인사’라는 비판도 받았다. 이 속에서 내년 1월로 예정된 총통‧입법원 동시 선거에서 민진당이 패배하고 국민당이 8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를 두고서 블룸버그통신은 2월 8일 보도에서 “중국이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중국에 우호적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강경했던, 대만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재조정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중국은 내년 대만의 1월 총통‧입법원 동시 선거에서 국민당이 승리할 수 있도록 대만 내 반중(反中) 여론 관리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1월, 국민당이 지방선거에서 대승하고, 지난달 여론조사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상황에서 대만을 자극하면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대만에 우호적인 조치를 연달아 취하고 있다. 중국항공운수협회는 2월 1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축소됐던 양안 간 직항 항공편을 늘리자고 대만 정부에 제안했다. 대만을 담당하는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2월 5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게시한 홍보 영상에 대만의 대표적인 명주인 진먼고량주를 상징하는 ‘진먼주창’(金門酒廠) 문구가 새겨진 술잔으로 건배하는 장면을 담기도 했다.

다만 내년 집권이 유력시되는 제1야당 국민당 고위 대표단 방중이 효과를 낼지 역풍을 불러올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2020년 대선에서 이른바 ‘한류(韓流)’로 불리는 신드롬을 일으켰던 한궈위(韓國瑜)의 대선 참패 원인 중 하나로 지나친 친중 행보가 지적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