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포토] 30년 만에 깨어나는 진실…’톈안먼 사건’ 기록사진 공개④

2019년 06월 2일 오후 8:51 업데이트: 2022년 06월 2일 오후 2:47
베이징 학생들의 행진 대열이 톈안먼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베이징 학생들은 중국 공산당의 탄압에 항의하고 부패를 반대하고 민주를 요구하는 단식을 시작해 많은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류젠 제공)

1989년 봄, 수도 베이징에서 시작된 애국 학생 ‘민주화운동’이 중국 전역으로 번져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모든 과정에 참여한 베이징의 한 대학생이 이 역사적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학생과 시민들의 애국 열정 및 중국 공산당의 잔인한 ‘6.4 대학살’을 증명했다.

중국 정권은 지금까지도 진상을 봉쇄하고 학생들의 평화 시위를 ‘반혁명 폭란(暴亂)’으로 몰아붙이고 있으며, 계엄군의 총기 난사 사실도 부인하고 있다.

당시 19세 학생이었던 류젠은 “역사는 지울 수 없다! 어떤 정부도 역사를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중국인으로서, 또한 산증인으로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밝히고 후대에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고 했다. 몇 년 전 해외로 이주한 그는 최근에서야 자신이 중국 공산당에 세뇌됐음을 깨닫고 중국 공산당의 거짓말과 박해를 폭로하기로 결심했다.

최근 류젠은 30년 동안 묻어두었던 ‘톈안먼 사건’ 기록사진 2천 장을 공개하며, 그 발표 권한을 에포크타임스와 신탕런(NTD)에 위임했다. 다음은 그중 일부다.

이 ‘톈안먼 사건’ 관련 기사는 류젠의 진술에 근거해 썼으며, 톈안먼 사건을 직접 겪은 우런화(吳仁華)의 저서 <톈안먼사건대사기(天安門事件大事記)>에서 일부 가져왔다.

(3편에서 계속)

1989년 4.27 대행진은 베이징 각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약 100만 명의 학생과 시민이 참여했다. 이들의 항의 시위를 외지의 대학생들이 응원하고 해외 유학생이 지원함으로써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중국 공산당의 국무원 대변인 위안무(袁木)는 압력에 못 이겨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가오쯔롄(高自联‧베이징대학교자치연합회) 학생들을 소외시켰다. 가오쯔롄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겉치레 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베이징 대학생 대화단(團)을 별도로 구성해 정부에 탄원서를 보냈다.

이어 5월 4일에는 베이징 대학생 수만 명이 다시 한번 시위행진을 벌였고, 군경이 상징적으로 저지했으며, 민중 수십만 명이 연도에서 응원했다. 당시 전국 30개 도시에서 교사와 학생 9만 명이 시위행진을 벌였다.

당시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은 학생의 애국정신을 인정하면서 ‘민주와 법제의 궤도상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오쯔양은 또 덩샤오핑에게 학생운동을 ‘동란’으로 규정한 ‘4.26’ 사설을 거둬들이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리펑(李鹏)은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도 대학생 대화단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단식 시작, 학생 선서

5월 12일, 가오쯔롄은 단식 결행을 발표하면서 세 가지 요구를 제출했다. 1.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신문 발행 금지 조치를 취소할 것을 요구한다. 2. 정부와 학생의 대화를 촉구한다. 3. 민주화 진전을 촉구한다.

당시 이미 왕단(王丹), 우얼카이시(吾爾開希), 슝옌(熊焱) 등 근 100명이 단식 대자보에 서명했다.

학생들은 단식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수업을 거부한 채 벌이는 학생들의 항의 시위에 냉담하게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에 항의한다. 둘째, 정부가 베이징 대학생 대표단과의 대화를 지연시킨 데 대해 항의한다. 셋째, 학생들의 민주화 애국 운동을 ‘동란’으로 매도한 당국의 일련의 보도 행태에 항의한다.

5월 13일 10시 30분, 베이징대 학생 단식단 100여 명은 머리에 흰 끈을 두르고 단식 선서를 했다. “조국 민주화를 촉진하고 조국 번영을 위해 자의적으로 단식한다.”

베이징 학생들은 베이징대학교자치연합회(고자련)를 만들고 스스로 깃발을 만들었다. (류젠 제공)

13일 오후 1시경, 베이징대, 칭화대, 베이징사범대, 정법(政法)대, 베이징과기대, 베이징이공대, 베이징항공항천대, 베이징의대, 베이징농업대, 중앙민족대학, 베이징경제대학, 베이징기계공업관리대학, 중국청년정법학원 등 13개 대학의 단식 청원에 참가한 학생 300여 명이 베이징사범대에 모여 단식 결의를 다지며 맹세를 했다.

13일 오후 2시경, 학생들은 베이징사범대에서 출발했다.

사진=류젠 제공
사진=류젠 제공

13일 15시 25분, 단식 학생 300여 명과 상하이 7인 청원단 중 3명이 학생 2천여 명의 호위를 받으며 톈안먼 광장에 도착했다. 구경하는 민중이 삼사만 명에 이르렀다.

17시 40분, 단식에 참여한 학생들은 다시 한번 선서한 후 단식을 시작했다.

사진=류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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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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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젠 제공
사진=류젠 제공
사진=류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