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례식서 아리랑 불러달라”… 룩셈부르크 참전용사의 유언이었다

연유선
2023년 05월 10일 오후 3:50 업데이트: 2023년 05월 10일 오후 3:50

‘아리랑, 아리랑…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8일(현지시간) 오후 룩셈부르크 레미히 지역에 있는 한 작은 성당 장례미사에서 ‘아리랑’ 노래가 울려 퍼졌다.

지난달 24일 향년 90세 일기로 별세한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질베르 호펠스 씨의 명복을 비는 추모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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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펠스 씨가 생전 남겨둔 유언장에 ‘장례미사에서 아리랑을 불러달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을 고인의 조카가 발견했고, 조카는 이를 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에게 알렸다. 고인은 생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남달랐다고 한다.

호펠스 씨는 1951년 입대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전 참전에 자원했다. 백마고지 전투에는 일등병이자 기관총 사수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에서 생존한 그는 1953년 1월 룩셈부르크로 복귀했다.

그는 당시 치열하고 위태로웠던 순간을 일기로 기록했고, 이는 현재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에 사료로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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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은 “(고인이)당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조차 몰랐고, 2차 대전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부모님은 지원을 반대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침략당한 나라의 자유를 되찾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겠다는 마음에서 참전했다고 생전 말씀하셨다”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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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2019년 한국전쟁유업재단(KWLF)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1975년 한국을 재방문했을 때를 회상하며 “여전히 가난한 아이들과 새로 들어선 많은 건물에 감명을 받았다.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룩셈부르크는 22개 참전국 중 인구 대비 최다 파병국으로 기록돼 있다. 호펠스 씨가 고인이 되면서 룩셈부르크 내 남은 생존자는 2명으로 줄었다.